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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N Aug 11. 2023

한 점 하늘,
그리고 L’art reste

김환기 회고전과 뮤지컬 라흐헤스트

숨 막히게 뜨거운 8월 한낮에 호암미술관을 찾은 것은 김환기의 그림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우리나라 화가 그림 중 가장 비싸다고 알려진 1971년 작 5-IV-71 #200(a.k.a. 우주),

그리고 우리나라에 가장 처음으로 소개된 김환기의 뉴욕시대 작품인 1970년 작 16-V-70 #166(a.k.a.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백자 덕후였던 국내 작가 시절의 한국적 정서가 묻어나는 두툼하고 질박한 질감의 초중기 작품들도 매력적이지만, 파리를 거쳐 뉴욕에서 완성한 수많은 점들로 이루어진 그의 후기 작품들은 그만의 고독과 수많은 고민, 성장을 거쳐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그가 오롯이 걸어간 길에서 만난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그를 알아보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주고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작은 언덕이 되어준 소중한 여인, 

김.향.안.


한 점 하늘에서 김환기를 만나고,

그다음 날

그의 뮤즈이자 동반자였던 그녀의 이야기를 대학로 뮤지컬 라흐헤스트에서 만났다.


변동림이었고 또 김향안이었던 사람

시인 이상의 반려였고, 화가 김환기의 동반자였던 사람

두 명의 위대한 예술가를 품은 독립적이고 진취적이며 용감한 사람

그녀를  재평가하는 다큐멘터리와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2022년 대학로에서 창작 뮤지컬 초연으로 만나고는 홀딱 반할 수밖에...


잘 만들어진 뮤지컬 라흐헤스트의 모든 넘버들이 좋지만,

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와 뮤지컬 라흐헤스트의 교점이 된 건 바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낸 시인 김광섭의 '저녁에'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바로 여기에서 김환기는 한 점, 한 점에 그리운 사람들을 꾹꾹 눌러 담았고,

그 점들이 모여 밤하늘의 별이 되고,

그렇게 켜켜이 쌓여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16-V-70 #166, 1970

저녁에

                                  김광섭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뮤지컬 라흐헤스트는 문학소녀 변동림이 시인 이상과 만나 설렘을 느끼고 그와 결혼하여 4개월만에 갑작스럽게 남편을 하늘로 보내야했던 파란만장한 초년의 이야기와 화가 김환기가 마지막까지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든든한 반려의 모습에서 둘이 처음 만나던 순간으로 역행하는 중년에서 말년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된다. 진취적이고 단단해 보이는 마음 뒤로 자신 만의 세계가 확고한 두 명의 예술가와 함께 살며 필연적으로 혼자 삭혀야 했던 외로움을 변동림에서 김향안이 되어서까지 그녀의 내밀한 친구가 되어준 노트를 통해서 과거의 동림과 미래의 향안이 서로를 보듬고 웅원하는 모습에서 흐르는 넘버인 '예술가와 함께 산다는 건'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관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예술가와 함께 산다는 건] 스페셜 뮤직 클립 https://youtu.be/EiEfH0pqvKI



  잘 정제된 서정적인 가사와 촉촉하게 마음을 적시는 멜로디가 아름다운 넘버들은 물론,

시간이 교차되며 어우러지는 배우들의 하모니도 멋지다. 

무대 역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무대 벽면은 김환기의 백자 사랑과 소용돌이 치는 '우주'가 떠오르는 원형의 패턴으로 심플하지만 세련되게 구성하였고, 그 앞으로 비스듬한 두 개의 길이 교차하도록 하여 변동림과 이상이 만나고, 김향안과 김환기가 만나며, 또한 과거의 동림과 미래의 향안이 만나는 이야기가 잘 어우러질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미디어아트를 활용한 조명과 오케스트라 역시 흠잡을 데 없이 공연의 감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다만 같은 인물을 두 명의 배우가 연기하고,

둘이 한 인물이라는 힌트들이 다회차 관람에서나 눈에 보이기에 이상의 아내였던 변동림과 김환기의 아내였던 김향안이 동일인이라는 스토리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관객들에게는 

어쩌면 조금은 불친절한 공연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의 제목이자 주제인 다음의 문장은 공연장을 나와 이 글을 끄적이는 지금까지도 내내 마음에 닿는다.


Les gens partent mais l’art reste.
사람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



[더뮤지컬] 뮤지컬 '라흐 헤스트' 2022 초연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1

https://youtu.be/v_ZGCNVGkxk

7:49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더뮤지컬] 뮤지컬 '라흐 헤스트' 2022 초연 프레스콜 하이라이트 2

https://youtu.be/hKAfW1DbCq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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