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50년전쯤 수표교 건너 관수동에 있는청소년 회관에 매주 화요일 방과후에 모여 니체를 읽고 빨간 피이터의 고백을 연습하고 토론하며 각자의 생각을 논하던 것이 생각 납니다
그당시 남여 혼합 클럽은 불법이고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사항이었지만 우리학교 내 장학생 모임을 중심으로 국어선생님을 지도교사로 모시고 교장 선생님의 묵인하에(?) 공식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입회절차가 까다롭고 엄격했지만 장학생이 아닌 제가 입회한 이유는 엉뚱한데다 만화부터 시작해 고전까지 모든분야를 읽은 잡독으로 인한 엄격한 선배들과의 면담에 망설임없고 거침없이 답한 똘끼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솔직히 저는 문학이란 흥미보다는 같이 모이는 여학생들에 더 흥미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저뿐 아니라 모든 선후배가 저와 똑같은 생각으로 매주 모이고 오가 빵집이나 안동장에서 이것 저것 먹으며 추억을 만들고 그랬을것 같습니다
그시절에 만났던 친구들을 여자 남자를 떠나 지금 다 늙어가는 황혼에 다시 만난 이야기를 그린적도 있고 또 생각이 나는 까닭은 아마도 그시절 추억이 제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겠지요
(제 선배들과 후배들중 실제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룬 커플들이 많고 모교에서 교펜을 잡은 선배 후배들이 많을걸보면 이것 역시 같을것 같습니다)
세월이 변하듯 모교에서 교펜을 잡던 선배가 정년퇴임하면서 40년을 이어오던 모임도 오로지 좋은 대학 좋은과에 매달리는 후배들의 관심 밖으로 벗어나 니체는 흥미를 잃어 잊혀졌지만요)
50년이 지난 중국집은 낮설었습니다
이층을 오르는 계단을 지나니 예전에는 그리 넓던 공간이 좁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렴픗이 구석 자리에 앉아 짬뽕 국물에 몰래 먹던 소주 냄새가 나는것을보니 세월이 지나도 변치않는 것도 확실히 있는것 같았습니다
친구들은 안동장만큼 많이들 변해 있었습니다
처음 제 생각 속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서먹함도 어색함도 있을것이고 서로 각자 먹은 세월만큼 고집도 자기 주장도 엄청날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 부딛쳐보고 이해해보고 말해보고 난후에 제가 겪어보지 못한 또 다른 삶의 일부를 보아도 좋을것 같다는 그리고 어쩌면 같은 동시대를 살고 있으니 그들도 저처럼 외롭고 뭔가 허전한 느낌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애써 생각을 한거지요
작은 소 모임이라 녀석들은 몇명되지 않았으나 변한것은 세월뿐이었습니다
다들 은퇴했지만 금전적인 부를 축적해 여유있는 놈 후학들을 가르치다 은퇴후 백수로 살고 있다는 놈 아직 시장에서 장사하는놈 이혼하고 여행이나 다니는 놈 프리랜서로 아직도 현역에서 그림 그려 먹고 사는놈 대학 선생질하다 지 가마 사 가지고 도자기 구워 먹고 산다는 놈(제게 준다고 부부잔을 만들어 왔습니다)
다 다르지만 한두잔 하다보니 변한건 없었습니다
단지 굳이 다른게 있다면 여유가 있고 없고의 차이 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50년전 먹던 짬뽕과 짜장면을 굳이 고집을 부려 시켜 먹어 보았습니다
맛이 달랐습니다
오히려 짜장보다 팔보채와 굴짬뽕이 탕수육보다 고기 튀김이 제게는 더 맛이 있었습니다
아마 제 혀가 간사해진 탓이겠지요
시장에서 아직 일해야 한다고 장사한다는 영식이가 제가 오피스텔 관리 소장을 하고 있다 하니까 술이 몇순배 돌고나자 갑자기 그러더라고요
일 하는데 힘든건 없느냐고 그러면서 자기는 늙으나 젊으나 진상들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끓었던 담배를 태울때가 많고 정 아니다 싶으면 속상하지만 따질것 따지고 나가라 내쫒는다고요
아직까진 좋은 청춘들이나 황혼들이 더 많은데도적지만 의외로 많은 진상들엔황혼보다 청춘들이 더 많고 늙은 진상들이야 똑같이 대해버리면 되는데 젊은 청춘들은 뭘 그리 많이 알고 배웠는지 어리다고 보기에는 지밖에 모르는 어설픈 어리광이 도를 넘어서 광기같이 보인다고 울분을 토하는 겁니다
말하다보니 지풀에 화가 나 흥분한거지요
(맛난 음식이 다 식어가고 궁합이 맞는 친구들이 따로 따로 입을 맞춰가고 있기도해서 같이 술잔을 기울여 가며 마주앉아 들어보았습니다
사실 저도 그런 경우가 많고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조금만 불편한게 생기면 안면을 바꾸고 무대뽀로 컴플레인을 본사에 넣는 경우가 많고 아니면 말고 하는 인간들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세대와 우리 윗세대가 뭘 그리 잘 못 했는지 잘 못 살았는지 모르겠다고요
잘못한게 있다면 우리가 그렇고 우리 부모 세대가 그렇듯이 내 새끼 우리처럼 배고프고 힘들게 살지 말라고 배 곯으며 악착같이 가르치고 자식 새끼들 먹이고 사느라 삶이란게 힘들고 자신만을 위해 그 어느 누구도 해주고 도와 주는 사람 없는 힘들고 고달픈게 삶이니까 불평하지 말고 주어진 조건에서 책임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치지 못한것 밖에 없다고 말입니다
지금 내새끼를 포함해 늙은 꼰데라고 한꺼번에 몰아 폄훼하는 그들이 누리고 있는 전쟁과 독재로부터 얻은 자유와 물질적 풍요로움을 위해 무엇하나 한게 없으면서 책임은 없고 조금만 불편하고 손해인것 같으면 없는 권리도 만들어 내 뭐든 더 해달라 투정 부릴것은 아니라고요
진짜 누구말대로 이제라도 나나 잘하며 살아야 겠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식은 짬뽕국물에서 옛날 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안동장 주변에서 포장마차를 하시던 용우 엄마의 얼굴이 악다구니 쓰며 건달들에게 달겨들던 친구 어머니가 생각나기 시작했습니다
다 엎어지고 패대기 쳐져도 오지말라고 손짓하며 우리를 키워 주시던 엄마의 악다구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뒷정리를 하면서도 우동 한그릇을 말아 주시던 어머니 국물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그때 이런 청춘들 같이 살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노란 단무지가 예전 닥광처럼 눈 찌프리게 시겁지 않았지만 닥광을 생각하며 깨물어 보았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각자 놀던 옆의 다른 친구들도 한 목소리로 그러더라고요
요즘은 자식새끼들 다 내놓았으니 이제는 궁색하게 살고 싶지않아 자신들도 있는거 가진거 잘 쓰면서 살거라고요
어차피 죽어지면 지고 갈것도 아니고 돈이 명예고 권력인 세상이라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일도 아니고 자식에게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노력들은 하고 있다고 말입니다
알고보니 치열하게 살아온 자신에게 상을 주는것은 저뿐만이 아니었던것같습니다
돈이 명예고 권력이 다는 아는지만 돈이 명예고 권력이라면 이제라도 그 돈으로 늙은 진상 꼰데든 젊은 진상 철딱서니들을 적어도 이제부터라도 아닌것은 아니라고 할소리하면서 예전처럼 적어도 내 주변부터하나씩 제대로 말해 가르치고 마땅한 대우를 해줄건해주고 또 받을건 받으며 살아야 한다는 친구의 말이 부럽기도 했고 고맙기도 한 이유는 아마 저와 비슷한 색갈이었기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제가 걸어온 삶이 제가 이루고 지켜온 터전과 가족이 여식들이 감사해졌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 짜장면인줄 알았던 그 짜장면을 아직도 먹을수 있어서 감사해졌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지 않아도 반납일 걱정없이 아직도 정기적으로 한권의 책을 주문해 읽을수 있는 우리 가족이 감사해 졌습니다
비록 내새끼들도 수많은 청춘들처럼 내일을 위해서 자신들을 위해서 저금을 하지만 가진것은 오직 권리뿐인 의외로 많은 비겁한 청춘들이 아니라서 감사해졌습니다
내일을 생각하며 청춘들같이 밝고 당당했던 용우 엄마의 우동한그릇처럼 짜장면 한그릇을 소중하게 먹을줄 아는 주변 친구들이 감사해졌습니다
늙어가는 황혼인 우리는 우리의 남은 삶인 지금을 위해 저금을 할수있고쓸수 있고 한권의 책을 살 돈과 친구들과 화려하지는 않고 넉넉하지는 않아도 서로 눈치 보지않고 서로 사겠다는 넉넉함이 감사해 졌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은 짜장면이라는 생각을 다시 확인한 오늘이 감사해졌습니다
약간 흥분했던 말들을 많이 들었으니 목을 씼어야 할 다음은 제차례인것같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줄 알았던 짜장면은 먹었으니 이번엔 2차 세상에서 제일 맛잇는 고기인줄 알았던 삼겹살 먹으러 같이 갔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