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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ky Aug 25. 2021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내가

 인천공항에서 가족들과 눈물의 이별을 하고 나서, 뉴욕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그리고 마침에 JFK 공항에 내렸을 때까지 일관되게 하던 생각이 있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가족들 떠나서 미국에 온 거지?"

 한국에서 쭉 자라고 의대까지 마친 내가 미국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2년 전 의대 졸업 직후였다. 다른 동기들과 함께 인턴, 레지던트를 하는 것도 결코 나쁜 선택지는 아니었지만 굳이 미국에 가기로 결심했던 이유는 우습게도 미국병 때문이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더 좋은 게 있을 것만 같고, 수련 환경도 더 편하다고 하고,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고 싶고...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게 이유라고? 싶지만 단순하게 생각했기에 힘든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2년 동안 두 번에 걸친 미국 의사 필기시험과 한 번의 필기시험, 그리고 여러 병원과의 인터뷰를 거쳐 결국에 나는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한 대학 병원에 합격했다.

 병원이 결정되고 난 뒤, 본격적으로 계약서를 쓰고 비자를 받기 위해서 인터뷰를 할 때에도 몇 달 뒤면 내가 고향에서 몇 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일하면서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마인드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미국에 가는 것도 쉽진 않겠지만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큰 오산이었지만.

 미국에 가는 게 두 달 뒤, 한 달 뒤, 2주 뒤... 점점 현실로 다가오자 걱정과 불안이 엄습하게 시작했다. 아, 내가 정말 큰 일을 저질렀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냥 한국에 있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힘들에 얻어낸 기회 건만,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니. 내가 계획한 대로 삶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그 과정에서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을 못 보는 것이 정말 힘들 수 있겠다는 것이 슬슬 실감되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벌써 여기까지 와버린 것을. 복잡한 감정을 접어두고 병원 근처에 살 집을 구하고, 비행기 표도 끊고 어찌어찌 준비를 했지만 출발 전날은 오로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아, 진짜 가기 싫다..."

 누가 미국 가라고 등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싫을 수가 있다니. 다들 가고 싶어 하는 미국인데. 결국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는 없어진 지 오래, 혼자서 어떻게 낯선 환경에서 지낼지에 대한 걱정만이 가득한 채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해서 마주한 현실은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공항에서 렌트한 아파트까지 한인 택시를 탔는데, 택시 기사분이 브루클린의 집 앞에 짐을 내려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어휴 이런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요..."였다. 치안과 동네 환경을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눈에는 익스트림해보이는 동네였나 보다. 나는 다소 착잡한 마음으로 "직장이 바로 근처라서요... 하하"라고 답했다.

 용감하게 미국에서 일하겠다고 왔지만 뉴욕이라고는 맨해튼의 빌딩 숲 밖에 모르던 내가 하루아침에 으슥한 골목들이 가득한 브루클린의 한 동네에 살게 되니 처음에는 정말로 적응 장애 비슷한 게 왔던 것 같다. 집 밖에 나가기도 싫고, 매일 밤 한국 생각에 눈물짓고... "미국에서 레지던트 하기"라고 단순하고 추상적인 목표만 위해서 노력하다가 왔지만 낯선 공기, 사람들, 음식 등 하나하나에 적응하는 게 생각보다 너무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결국에는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하고, 때로는 감내하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타지에서 외국인으로 사는 게 쉽지 않다." 이 단순한 진리를 굳이 겪어 봐야 실감하는 나 스스로를 원망할 때가 많지만, 이미 택한 길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한번 버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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