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한창 《한겨레21》 창간특집 인터뷰를 준비할 때였다. 그간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혹은 과제를 위한 인터뷰는 여러 번 해봤어도 이런 공식적이고도 중요한 지면에 글을 싣는 건 처음이었다. 준비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무엇보다 어찌어찌 인터뷰를 마친들 이걸 어떻게 다듬어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다. 혼자 속만 끓이느니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게 좋겠다싶어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담당자, 구둘래 기자님께 카톡을 보냈다. 언제나처럼 짧고 굵게, 딱 한 줄로 답장이 왔다. “김종철 선배”의 인터뷰를 참고하라는 것이었다.
“토요판 김종철 선배의 인터뷰가 제일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달을 끝으로 《한겨레》를 정년퇴임한 김종철의 인터뷰는 따뜻하고 웅숭깊은 내용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고 변희수 하사나 독립연구자 정태인 인터뷰는 SNS에서 많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런 김종철의 인터뷰를 배운다고 따라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뭐라도 붙잡고 싶은 절박함에 정태인 인터뷰를 한글파일로 인쇄해 밑줄까지 쳐가며 공부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강명관 인터뷰는 인터뷰어의 에고가 덕지덕지 묻어난, ‘인터뷰’라기보다는 ‘비평’에 가까운 글이 되어버렸다.
이번에 나온 김종철의 인터뷰 모음집 『각별한 당신』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종철의 인터뷰는 결코 ‘모범’이 될 수 없다. 그를 제외하곤 누구도 이런 인터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종철은 스스로를 완전히 내려놓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독특한, 아무도 따라할 수 없는 방식으로 타인을 읽어낸다. 아니, 어쩌면 “읽어낸다”는 표현조차 적절치 않을지도 모른다. 김종철의 인터뷰는 ‘읽음’보다는 ‘받아들임’의 과정이며, 그렇기에 결코 ‘읽기’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경이감과 복잡함을 동시에 안긴다.
김종철의 『각별한 당신』
(야매) 글쟁이로서 내가 가진 강점은 소위 ‘야마’를 잘 잡는다는 것이다. 글이든 사람이든 가만히 읽거나 듣다보면 이게 어떤 이야긴지 대충 감이 온다. 이렇게 잡은 야마를 얼개로 본문을 해체-재구성해 날렵하고 요령 있게 정리하는 것. 문장이 유려하지도, 어휘가 풍부하지도, 사유가 단단하지도 않은 내가 연재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많은 분들의 호의와 배려 덕분이겠지만) 바로 이 야마 잡는 능력 덕분일 것이다.
(야매) 글쟁이로서 내가 가진 강점은 소위 ‘야마’를 잘 잡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야마를 ‘잡는’ 게 아니라 야마에 ‘잡힐’ 때 일어난다. 미리 구상해둔 얼개에서 벗어나는 사실이나 발언이 튀어나오면 억지로 욱여넣으려 들거나, 아예 모른 척 넘어가버리기도 한다. 내가 잡은 야마에 내가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지난 번 강명관 인터뷰를 공유하며 “딱딱 떨어지는 명쾌함보다는 복잡함과 머뭇거림을 더 많이 담고 싶었”노라 적었지만, 이 복잡함과 머뭇거림조차 잘 짜인 기획의 산물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던 건 그래서다. 기획된 애매함이라니, 그건 그냥 형용모순이 아닐까.
반면 김종철의 인터뷰엔 야마란 게 없다. 그는 그저 가만히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끔씩 정말로 궁금해 보이는 점만을 질문할 뿐이다. 인터뷰 어디에도 김종철의 에고가 드러난 대목은 찾을 수 없다. 기자 생활 34년에 《한겨레》에서 정치부장에 선임기자, 신문부문장까지 지낸 김종철이 야마를 잡을 줄 몰라서 안 잡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그저 참은 것이다.
김종철이 야마를 못 잡은 게 아니라 안 잡았다는 건 그의 촘촘한 취재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겨레21》 전 편집장이자 현 콘텐츠총괄인 정은주에 따르면, 김종철은 역사학과 출신답게 (이 얘길 들었을 때 역사학도로서 정말 찔렸다!) 인터뷰를 준비할 때 인터뷰이와 관련된 모든 자료를 꼼꼼히 읽고 정리한다고 한다. 실제로 김종철은 56년 만에 부당한 판결의 재심을 신청한 최말자를 인터뷰하며 사건 발생 24년 뒤인 1988년, 최말자와 같은 죄목으로 기소된 여성이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까지 찾아낼 정도로 취재에 열심이다.
김종철은 인터뷰와 연관된 모든 사건을 조사할 정도로 촘촘하게 취재한다.
보통 이 정도로 촘촘하게 취재를 하면 인물에 대한 어떤 상(像)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연히 여기에 맞춰 인물을 그려내고픈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올 법도 한데, 김종철은 그러지 않는다. 대신 그는 묵묵히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나 신기하게도 김종철과 마주앉은 사람들은 모두 말이 많아진다.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애초에 수다스런 사람만 인터뷰어로 점찍었나 싶을 정도다. 물론 이는 “되게 깊이 묻네요. 이렇게까지 심층적인 인터뷰는 처음 해봤어요.”(p.219.)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자세한 김종철의 질문 덕분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김종철은 꼼꼼히 읽고, 가만히 듣고, 깊이 물음으로써 한 인물을 통째로, 오롯이 전해준다. 그의 인터뷰를 읽다보면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 이야기하는, 사람이 온다는 일의 어마어마함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된다. 인터뷰이도, 그리고 어쩌면 인터뷰어도 의도하지 않았을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고 변희수, 신순애, 이준원, 임현정, 강수돌, 최말자, 달시 파켓, 김수억, 이동현, 김정남, 정재민, 김선희, 김덕수, 심재명·이은, 조영학, 윤선애, 이병곤, 송경동, 홍순관, 정태인. 나이도, 성별도, 직업도, 인생도 다 다르지만 저마다의 자리에서 ‘자기다움’을 지켜온 스무 사람의 인터뷰가 각별하게 읽히는 건 그래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누군가를 잘 읽어주고 싶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잘 담아내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내가 가진 무수한 욕심들 중 그나마 덜 숭하고, 어쩌면 조금은 이로울 수도 있는 바람이다. 그런 내게 『각별한 당신』은 어쩌면 지금껏 야마를 이야기로 착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부끄러움을 안긴다. 다시 정현종의 시를 빌리자면, 환대란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을 바람처럼 더듬어보는 일이다. 그러한 환대로서의 인터뷰를 너무나 따뜻하게 보여준 이 책 앞에서 나는 과연 야마 없이 누군가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사람이 온다는 어마어마한 일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되물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