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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Nov 04. 2022

#132 알고사

# 132 알고사


오랜만에 자리에 앉습니다. 자리에 앉는 것을 틱낫한 스님은 <How to sit 앉기 명상> 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앉음 자체가 지금 이 순간으로의 도착이 되도록 그렇게 앉는 겁니다. 도착을 즐기십시오. 이미 도착했다는 것은 너무도 멋집니다. 집에 왔다고 느끼는 것, 나의 참 고향이 ‘지금 여기’임을 느끼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요즘 그 고향에 머물지 못했습니다. 다른 것들에 몸과 마음이 뺏겨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건 핑계이고 나의 천성적 게으름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일어났던 일들로 인해 복잡해진 감정을 가라앉혀 보려고 자리에 앉습니다. 떠난 집에 돌아옵니다. 참 오랜만이지요.


앉아서 명상을 할 때 어떤 틀을 가지려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념무상 상태가 되어야 하겠지만 저는 그런 상태가 되지 못합니다. 저는 명상이라고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흔들리는 마음을 잡을 제 나름대로 틀을 만듭니다. 하수의 방식이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게 저인데.


몇 년 전 명상을 배우러 경주에 내려갔던 적이 있습니다. 짧지 않은 기간이라 휴가를 내고 갔기에 그만큼 기대도 컸지요. 이 기간이 지나면 ‘나도 명상을 제대로 할 수 있겠지’라는 헛된 꿈을 꾸었습니다. 맞습니다. 헛된 꿈이었습니다. 첫날이니 특별한 호흡법이나 자세라도 가르쳐 줄 줄 알았는데 그냥 앉아 있으라 하더군요. 그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저 같이 우둔한 이에게 그것은 지겨움과 동의어가 될 수 있지요. ‘왜 이렇게 시간이 안가나. 다른 사람은 잘하고 있나.’ 실눈을 뜨고 곁눈질로 다른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사람들은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앉아 있지 못하는 수준이라  나름대로 어떤 것을 정해 놓고 명상을 합니다. 엉터리 명상이지만  마음을 닦는데 그것이 낫더군요. 저처럼 명상은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는지 모르시겠다는 분들에게  경험과 방식을 나눕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틀을 짜봤습니다. ‘청촉후’ ‘차원 확장’ ‘알바사’ ‘‘   이름도 붙여 보았지요. 오늘은 ‘알고사 관해 나눌까 합니다. 우선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쉬어보지요.  


알아차림

알아차림은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알고사에서 알아차림은 나의 몸을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숨을 들이쉬며 몸이 제대로 자리 잡고 있는지 살펴보지요. 몸의 자세를 바로 하기 위해 주의를 기울여야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엉치뼈가 제대로  있는지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엉치뼈는 허리  아랫부분 거꾸로  삼각형 모양의 편평한 뼈이지요. 꼬리뼈 윗부분입니다. 엉치뼈는 척추를 지탱하는 반석과 같아서 엉치뼈를 바로 세우면  위에 올려져 있는 몸은 편안하게 바로 서는 것을 느끼실 겁니다. 숨을 들이쉬며 엉치뼈가 제대로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며 몸을 알아차리지요.


고요히

숨을 충분히 들이쉬고 잠시 머뭅니다. 들숨과 날숨 사이, 그 공간에 고요히 머무는 것이지요. 숨조차 쉬지 않는 순간, 그 움직임이 없는 상태, 고요함만을 느낍니다. 숨을 멈추었으니 가슴이나 배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고 눈동자로 움직이지 않겠지요. 눈을 감고 있지만, 눈동자는 우리의 생각이 닿는 곳으로 움직이곤 합니다. 눈동자를 굴리지 않으면 생각도 굴러가지 않고 잠시 멈춥니다. 이 순간에 저는 멈추어 있음을 고요히 느낍니다. 살아있음은 움직임일지 모르지만, 죽음은 멈추어 있는 것이지요.


김상옥 교수는 물리학을 공부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지요. 흙이나 돌, 바닷물 모두 과학의 개념으로는 죽어 있는 상태입니다. 이처럼 원자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죽은 상태로 있다가 (이유는 모르지만) 어느 날 갑자기 모여서 살아 있는 상태, 생명으로 된다고 그는 이야기하지요.


생명이 있기 전의 상태. 고요. 멈추어진 죽음은 생명이 끝난 후가 아니고 생명의 기원일지 모르지요. 그 기원의 고요에 머뭅니다.  


사라짐

숨을 내쉬며 나의 경계를 지웁니다. 나의 경계를 지우면서 내가 사라지는 것을 느껴봅니다. 나의 경계는 어디일까요. 여러 가지로 나의 경계를 규정할 수 있겠지만, 생물학적 나의 경계는 나의 피부이지요. 나의 피부를 살피며 그 경계가 사라짐을 느껴보세요. 그 경계를 지워보세요. 경계가 사라지면 나와 밖의 경계가 사라집니다. 나와 밖의 세상이 하나가 되지요. 경계가 사라진 상태에 잠시 머뭅니다.


제가 하는 ‘알고사’는 이런 방식입니다. 눈을 감고 이 글을 씁니다. 명상도 오랜만에 하지만, 눈 감고 글을 쓴 것도 참 오랜만입니다. 이 오랜만이 자주 있기를 바랍니다. ‘알고사’에도 자주 머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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