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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Nov 09. 2022

#133 대나무처럼

#133 대나무처럼 


머릿속이 복잡하지요. 머릿속은 왜 복잡할까요? 아니 복잡한 것이 당연하지요. 왜냐구요? 우리가 낮 동안 눈을 뜨고 찍는 촬영 분량이 얼마나 크겠어요. 동영상 파일로 치면 굉장할걸요. 하루 24시간 중 잠을 자는 8시간 정도를 제외하고 온종일 우리는 눈을 뜨고 살아갑니다. 매일매일 바라보는 것은 핸드폰으로 촬영하지 않아도 눈을 통해 우리 뇌에 촬영되지요.


무언가를 소리 듣고 살아갑니다. 그 소리가 의미 있는 말인지, 아니면 듣기 좋은 음악인지, 혹은 그냥 소음인지를 떠나 어떤 소리가 우리 몸속에 들어옵니다. 다른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도 있겠지만,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는 엄청난 영상 파일과 소리 파일을 매일 접하고 처리하며 살아가지요. 그러니 머릿속이 복잡해지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것이 의미 있는 정보일 수도 있고 단순한 노이즈일 수도 있지요. 그중에는 취할 것과 버릴 것들이 있을 거예요. 사람은 그 작업을 언제 할까요. 그 작업은 자면서 이루어진다고 하지요. 자면서 일어나는 렘수면 중 우리의 눈은 빠르게 움직입니다. 저는 그 렘수면 중 우리의 눈이 움직이는 것은 낮 동안 보았던 촬영분을 편집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곤 해요. 그 순간 우리는 삶을 편집하는 방송국 PD가 되는 것이지요.


나영석은 우리나라 가장 유명한 예능 프로그램 PD이지요. 그는 1박 2일, 꽃보다 할배, 삼시세끼, 윤식당 등 여러 히트작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그 방식을 보면 대본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출연진들에게 일어나는 하루하루를 그냥 촬영하지요. 하루 촬영분은 엄청날 겁니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닌 여러 대의 카메라로 찍은 것을 나 PD는 제작진과 함께 밤새 편집하겠지요. 사전 자세한 대본을 만드는 일은 하지 않아서 PD나 출연진은 편하게 시작할지 모르지만, 사후 편집 작업은 엄청난 작업이 되겠지요. 필요한 것은 취하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는 고단한 편집 끝에 카메라 몇 대가 수십 시간 촬영한 분량을 한 시간 정도의 녹화 분으로 편집합니다. 나 PD의 프로그램은 출연진의 연기력보다 제작진의 편집력의 힘이 더 큰 것 같아요.


우리 삶의 촬영분도 자면서 렘수면 동안 방송국 제작진처럼 편집 활동을 합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지요. 우리 뇌는 자면서도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요. 나 PD의 밤샘 편집 작업처럼.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던 중이지요. 맞아요. 복잡하게 뒤죽박죽되어버린 머릿속을 어떻게 좀 말끔히 정리하며 살아갈 수 있겠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요.


기록 전문가 명지대 김익한 교수는 독서법을 강의하며 이런 말을 합니다. “두 페이지를 읽은 후 책에서 눈을 떼라” 맞는 말이지요. 책을 그냥 주욱 읽다 보면 독서 진도가 나가서 뿌듯할지는 모르지만 다 읽고 나서 별로 남는 것이 없지요.


저는 그래서 제안하고 싶습니다. 대나무처럼 살자. 삶의 마디를 주는 것이지요. 머릿속이 복잡하다는 것은 여러 정보가 쌓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우리가 성장하는 영양분이 될 수도 있지만, 정리되지 않은 정보는 소음이나 쓰레기에 불과하지요. 그러니 틈틈이 마디를 주어 보세요. 대나무가 그렇게 높게 올라갈 수 있는 것은 마디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마디를 줄까요. 삶의 중간중간마다 눈을 감아보세요. 굳이 명상이나 다른 복잡한 방식이 아니더라도 그냥 눈을 잠시 감는 것을 삶의 중간중간 넣는 것이지요. 대나무의 마디처럼 잠시 눈을 감는 시간이 삶의 마디가 될 겁니다.


대나무의 마디는 우리에게 눈감기입니다. 낮이라고 온종일 눈을 뜨고 살 필요는 없지요. 눈을 혹사해서 눈이 무거울 때도, 머리가 복잡할 때도, 아니 그냥 아무 때나 가끔 눈을 감고 잠시 그 빈 공간을 느껴보셔요. 가끔 눈을 감으면서 삶의 마디를 만들면 우리 머릿속도 조금씩 정리되며 나아갈 거예요. 마디를 만들며 자라는 대나무처럼.


엉킨 넝쿨처럼 살지 말고, 마디마디 대나무처럼 사세요.


다 읽으셨어요?

그러면 눈을 감아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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