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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Dec 14. 2022

#134 투명인간이 된다면

#134 투명인간이 된다면


며칠 전 '명상이 무엇인지' 물어본 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명상에 관해 잘 모르니 뭐라고 대답할지 잘 모르겠더군요.


혹시 오늘 그가 다시 저에게 '명상이 무엇인지' 물어본다면

저는 '명상은 투명인간'이라 말해볼까요.


투명인간이 되려면 '알바사'에 들르세요.


알바사?


알아차리고

바라보고

사라지기


(5년 전 오늘 쓴 글을 다시 읽어봅니다.)


만약 투명인간이 된다면 어떠실 것 같아요. 내 몸이 사라져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인 투명인간. 그런 상태가 되면 그동안 못했던 것을 해보겠다는 엉뚱하고 기발한 대답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중고등학교 남학생에게 이 질문은 여탕에 가보고 싶다는 흑심도 드러날 것이고, 중요한 시험을 앞둔 젊은이는 시험 전날 시험 출제 장소에 가서 시험지를 보고 싶다는 대답도 나올 수 있겠군요. 사업 실패로 절망에 빠진 중년 아저씨는 은행 금고에 가고 싶다는 어두운 욕망도 있을 겁니다. 어째 그리 좋은 대답은 안 나오는군요. 아마도 평소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 중 하고 싶은 욕구가 우리의 깊은 곳에 숨어 있기 때문일지 모르지요.


투명인간을 저는 다른 측면으로 접근해 보고 싶어요. 어느 날 명상을 한답시고, 자리에 앉아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투명인간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명상과 투명인간. 명상이란 무엇일까? 명상은 투명인간이 되는 것. 명상은 나와 세상의 경계를 지우는 것, 그리고 세상의 여러 점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명상과 투명인간에 대한 이런 엉뚱한 생각을 조금 더 들어보시겠어요. 나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주제이지만, 쉽게 정의할 수도 있지요. 나는 피부 안의 존재입니다. 피부가 경계선이지요. 피부를 경계로 나와 밖의 세상이 나누어집니다. ‘피부 자아’라 할 수 있지요. 높이 2m도 안 되는 작은 공간인데, 나는 그 ‘나’라는 피부 안 공간을 지키기 위해 무척 애를 씁니다.


숨을 들이쉬면서 그 피부 안 공간을 느껴보세요. 공기가 들어오면서 피부 안 경계에 구석구석 닿는 것을 생각하며 피부 안 내 공간을 느끼는 것이지요. 그 공간에 나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허리가 조금 휘었군요. 자세도 바로잡아볼까요. 발끝에 감각이 약간 이상하게 느껴진다고요. 그곳에도 집중해 보지요. 그렇게 내 피부 안 공간을 온전히 알아차리는 것이지요.


숨을 들이쉬면서 충분히 알아차림을 했으면,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몸의 흔들림도 없는 고요한 멈춤의 시간이지요. 그 고요함 속에 나의 내부를 바라보기도 하고, 나의 밖을 바라보기도 하지요. 하지만 눈동자 굴리면서 여기저기 바라보지 말고, 한 호흡에 한 곳만을 바라보면 고요함 속에 마음의 안정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렇다고 숨을 참고 있지는 마세요. 그저 잠시 바라보세요.


이제 숨을 내쉬면서 투명인간이 되어 보세요. 무슨 말이냐고요. 자아라는 피부 경계를 서서히 지워보세요. 숨을 내쉬면서 자신을 내려놓으며 자아 피부 경계를 지우는 것이지요. 경계가 사라지면 나와 세상의 구분도 사라지겠지요.


물리학적으로 우리 몸을 보아도 피부라는 경계는 꽉 막힌 장벽이 아니지요. 피부 세포벽도 확대해 들여다보면 원자핵 주위로 전자가 회전한다고 보든, 작은 입자나 파동으로 보든 뻥 뚫린 공간이지요. 나의 피부는 물은 통과하지 못하는 방수벽으로 보이지만, 사실 더 작은 입자는 그 벽을 자유로이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있지요. (사실 수분도 피부를 어느 정도는 통과하겠군요.) 굳건한 벽으로 여겼던 피부도 구멍이 뻥뻥 뚫린 공간이라면 나를 피부 안에 굳이 가두어 놓지 말고 피부 벽으로 스스로 닫아 놓은 자아를 나의 밖 공간에 열어놓아 보는 것이지요.

다시 숨을 들이쉬면서 내 안의 공간과 그 공간을 구성하는 경계를 알아차리고, 잠시 머물러 바라보다가 숨을 내쉬면서 내 밖의 공간과 나를 구분 짓는 경계를 지우면서 열어놓는 것, 즉 투명인간을 경험해 보는 것이 명상이 아닐까요.


세상과 내가 하나가 되는 투명인간이 되어 보세요. 어쩌면 세상과 나는 피부라는 경계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점 한 점 연결된 하나의 큰 존재일지도 모르지요.


명상은 들숨을 통해 온전한 자신을 들여다보고, 날숨을 통해 그 자신을 내려놓고 경계를 지워서 공간과 하나 됨을 느끼는 시간, 투명인간이 잠시 되어 보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자기 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 숨을 내쉬면서 나의 경계를 지우는 투명인간이 가끔 되어 보세요. 나는 피부 안 작은 존재가 아니고 피부 밖 큰 공간과 통하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혹시 느끼게 된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문제는 아주 작은 문제일지 모르지요.


저도 글을 여기에서 멈추고 잠시 투명인간이 되어 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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