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녜 Nov 05. 2022

출발 전.

2015년 6월 22일

난생처음 등산배낭을 메본 날이기도 하다. 내 머리 위로 사람 머리통 하나 정도 더 올라오는 높이의 배낭이 가득 찼다.

별생각 없이 계절을 고른 탓에, 마지막 방학이라는 조급함에, 비행기표를 끊는 순간까지도 내가 가는 곳의 날씨가 정 반대의 날씨라는 걸, 그리고 잔뜩 걸어 다녀야 할 테니 캐리어가 아닌 배낭을 메고 다녀야 한다는 걸 생각지 못했다. 여름에 힘들게 구한 겨울 옷과, 부피를 줄이고자 선택한 세면도구 샘플 잔뜩은 생각보다 더 무거웠고 커다랬다. 어깨에 얹어놓고 보니 내가 들고 다니지 못할 건 둘째치고 수화물 허용 무게 리밋을 넘길까 걱정됐다.


마침 집에 있는 체중계는 고장이 났다. 온전히 아빠의 전완근 감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내게 허용된 무게는 21킬로였던가. 아빠는 간당간당할 것 같다고 했다. 여차하면 공항에서 몇 개 버리고 가서 사지 뭐.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엄마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는 여행이었다.


남미를 가겠다고 했을 때도 탐탁지 않아했지만, 이주 전, 사실은 혼자 가는 여행이라는 게 발각되었을 때는 정말 난리가 났다.

처음부터 거짓말할 속셈이었던 건 아니었다. 실제로 친구랑 같이 가려고 했었고, 그러다가 친구의 마음이 바뀌었고, 내 마음은 바뀌지 않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도 분명 알고 있었다. 이 상황을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걸 말이다. 그래서 그저 사실에 대한 업데이트를 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사실이 발각된 건 출발 이주 전 저녁 시간 때였다.

“그래서 J랑은 공항에서 몇 시에 만나기로 했어?”

빠르게 머리를 굴려봤지만 딱히 이때까지 거짓말을 하기엔 불리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만약 엄마 아빠가 공항에 나를 데려다준다면, 그리고 친구를 만날 때까지 함께 대기하고 싶어 한다면… 같은 시나리오를 머리로 그려보다 보니, 그때 발각되느니 일찍 실토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어.. J는 안 가게 됐어”


그때부터 열띤 토론의 시작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묻던 엄마 아빠는 여러 전략으로 나를 옭아매려 했다. 하지만 나도 절대 질 마음이 없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너 그래서 돈은 뭘로 갈 건데?”

“내가 인턴 해서 모은 돈으로 갈 거야”

“그래서 지금 너 돈으로 가니까 신경 끄라는 거야?”

“그게 아니라 가서 안전하게 다닐 거고 계획도 꼼꼼히 짰는데 왜 안되냐는 거지”

“차라리 결혼하고 가라”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가서 사고 나면 아빠 책임인데 결혼하고 가면 남편 책임이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가서 사고 나면 내 책임이지 그게 왜 남의 책임이야”


이런 비논리와 논리를 넘나드는 싸움 속에도 서로 알고 있었던 건, 어찌 됐건 결심한 나를 꺾을 방도가 그들에겐 없다는 것이었다.

드라마에서처럼 머리를 삭발시키고 방에 감금시킬 노릇도 아니었으니, 그저 며칠의 냉전 후에 자주 연락할 것, 또 자주 연락할 것, 조심할 것, 그리고 또 조심할 것 을 당부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주 편한 마음으로 떠나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 2주 사이에 업데이트된 것이 있다면 J가 다시 한번 마음을 바꿨다는 거였다.

J도 다시 오고 싶어 졌다고, 대신 자기는 좀 짧게 갈 테니 여정 중간에 만나자고 했다.

전체 두 달 치 여행 중에 2주는 친구와 함께 보내는 여행이 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