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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pd Aug 10. 2016

인도네시아 첫인상

 공항에서

 2010년 3월 인도네시아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이곳은 나에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비행기를 빠져나와서 출구까지 거리가 꽤 길었다. 몇 년 동안 살 곳이라고 작정하고 왔기에 등에 메고, 양쪽 어깨에 걸쳐서 메고, 두 손에 가득 짐을 들고 이 긴 거리를 걸어갔다. 입국심사대 앞에 줄이 꽤 길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한 30분은 기다렸던 듯하다. 그리고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는데 나를 힐끔 보던 직원이 아무 이유 없이 맨 뒤로 가라고 한다. 단호하고 완강한 태도에 나는 뭐라고 항변도 못하고 다시 맨 뒤로 밀려났다. 그 사이 새로 도착한 비행기에서 쏟아진 사람들에 줄은 길어졌고 나는 그 맨에서 다시 기다렸다. 그렇게 또 한 30분 지나고... 이런 짓을 한 번 더 반복한 뒤에야 그는 내 여권을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 그 사이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고 이전과는 다르게 한적해졌다. 그가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너 왜 인도네시아에 입국하려고 하느냐 따져 묻는다. 난 일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돌아가는 리턴 티켓을 보여달라고 한다. 당시 나는 1년 기한에 최장 5년까지 연장이 되는 취업비자를 받고 왔기 때문에 돌아가는 티켓을 따로 구입하지 않고 편도로 입국을 했다. 회사에서도 그렇게 하자고 알려준 대로 한 것이었다. 나는 1년짜리 비자라 휴가나 기타 등등 한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이 확실하지 않아 편도로 했다고 설명을 했지만 그는 계속 문제가 많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그렇게 옥신각신 한 10여분이 지났다. 그가 본론을 꺼낸다.


"너 주머니에 돈은 얼마 있냐?"


 그제야 번뜩 깨달았다. '아, 이 녀석이 바란 것이 그거였구나' 갑자기 무거운 짐을 들고 서 있었던 내 고생이 떠오르며 울화가 치밀었지만 침착하려고 애썼다. 당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잔돈을 포함해서 100달러 정도를 미리 바꿔서 갖고 있었다. 분위기 파악을 한 뒤라 금액을 정확하게 말하지는 않고 조금 있다고만 대답했다. 얼마가 있는지 다시 추궁한다. 그냥 조금 있다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물었다.


"얼마를 받고 싶냐?"


그 녀석이 대답한다.


"50달러?"


 내가 아무리 인도네시아에 대한 감이 없다고는 하지만 50달러는 너무 많은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완고하게 굴었다.


"안 돼"


 그 정도 됐을 때는, 별다른 이유 없이 사람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이 녀석도 슬슬 난감해지기 시작할 때였다. 주변의 동료들이 지나가면서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하고 우리 쪽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녀석의 상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내가 서있던 심사대 근처를 지나갔다. 이 부분이 참 재미있었는데, 갑자기 나에게 다 됐으니 그냥 가라고 하는 거다. 한 손으로 '저리 가' 하는 시늉을 하면서 가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잠깐 어리둥절 했지만 여권을 챙겨서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이 녀석이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여권을 꼭 쥐고 있었다. 말하자면 곤란한 사람이 지나가니 할리우드 액션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멀어지니 바로 여권을 펴서 그 위에 돈을 올려놓으라고 한다. 결국은 20달러로 합의(?)를 하고 나는 여권에 빳빳한 20달러 지폐를 고이 올려놓고, 놈은 태연하게 여권 속 돈을 빼갔다.

 결국에 든 생각은 20달러가 아깝다기보다 긴 시간 무거운 짐을 들고 기다린 고생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처음부터 빨리 달라고 했으면 됐을 것을 그 고생을 시키다니...

 나중에 안 것이지만 이민국 직원들은 나름의 촉으로 나 같은 초짜를 귀신같이 알아본다고 한다. 초짜에, 장시간 고생해서 지친 데다가, 성미 급한 한국 사람은 그냥 콱 줘버리고 말아하면서 넘기는 일이 많이 때문에 나는 아주 좋은 먹잇감 이었던 거다.

 무슨 복선처럼, 그 이후 일종의 기시감처럼 꼭 위의 사례처럼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문화 차이에서 오는 크고 작은 충돌, 황당한 사례들은 계속 일어난다. 이것은 극복하기엔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문화 차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과 정말 그건 아니다 라고 결단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의 판단 기준을 정하기가 어렵다. 생활의 아주 작은 미묘한 부분에서도 불쑥 치고 들어와 난감할 때가 있다. 그리고 '아 내가 이제 인도네시아를 좀 알 만하다'라고 여길 때 여지없이 '나는 한국인, 여긴 인도네시아'를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적어본다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런 이야기를 적어 보려고 한다.



자카르타 수카르노 하따 공항 출국장, 이민국 사진은 찍을 수가 없어서 이것으로 대체했다. 사실은 저 공항 직원이 딴짓을 하고 있어서 찍은 것인데 이렇게 사용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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