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하려고 했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모르겠지만 봄의 초입에 갑자기 오일 파스타를 만들고 싶어졌다. 주변에 요리 잘하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 오일 파스타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다. 유튜브에서 오일 파스타 관련 영상도 세 편 정도 봤다. 마늘을 편으로 자르고, 올리브 오일에 마늘향을 우려내고, 냉동 새우도 익히고, 면수도 부었다. 그날 저녁 두 시간 가량을 투자해 해물 오일 파스타를 만들고 먹고 설거지 했다.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니 밀려드는 이 충만한 기분. 뭐지? 왜 뿌듯하지? 내 몸뚱아리를 유지할 밥 한 끼 챙겨먹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쓸모있는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지?
그날을 시작으로 나는 요리를 전보다 자주 했다. 원래는 한 달에 두 번 정도였다면, 그 이후로는 일주일에 세 번 정도랄까? 시금치무침부터 수육, 강된장, 두부조림, 스크램블 에그, 각종 파스타, 황태 콩나물국, 소시지 볶음, 비빔국수, 달래된장국 등. 고급요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나름 영양소도(띠용?) 플레이팅도(띠용?) 고려한 그 음식들은 평소에 술을 먹으면서 보내던 저녁 시간을 넘치도록 채워주었다.
문득 밥하고 누워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밥도 못하면서 대체 인생에서 뭘 하려고 했지? 생각해보면 희한한 일이었다. 밥도 못하면서 사랑을? 밥도 못하면서 성공을? 밥도 못하면서 행복을? 밥도 못하면서 인생을? 자취, '손수 밥을 지어먹으며 생활함.' 아무튼간, 나는 10년 간의 자취 생활을 하며, 최근에서야 진정한 자취를 해본 셈이었다.
설이나 추석이 끝나면 엄마는 상경하는 나의 손에 과일과 반찬통을 넘치게 쥐어주고서도, 캐리어의 남는 자리에 사과 한 알을 욱여넣곤 했다. '먹는 것을 잘 챙겨먹으라'는 부모님의 잔소리를 거의 평생 들었지만, 한 알의 사과가 뭉클하기보다는 부담으로 다가왔던 나는, 한 번도 그 말을 알아 들은 적이 없었다. 냉장고에 썩어 쪼글거렸던 사과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버렸다. 대신 안주 겸 저녁외식, 혹은 배달 음식은 나에게 떼놓을 수 없는 삶의 동반자였는데, 다 먹고난 배달 음식의 일회용 팩을 정리하는 일 혹은 반주를 명목으로 시작한 폭음에 삶의 시름을 느끼지 않았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었다. 그 시름에 자주 위가 더부룩했으니.
단순한 진리를 아는게 두려울 때가 있다. 예를 들어, 결국 살을 빼는 진리는 '안 먹고 운동하는 것'을 알고 싶지 않은 것처럼. 단순한 정답을 찾으면 그 답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밖에 남지 않으니까, 단순해지는 게 두려울 때가 있다. 그런데 고작 한 달가량 밥 해먹으니, 소화가, 건강이, 기분이 나아졌다. 밥도 안해보고서 참 많은 것을 바랐네, 싶었다.
최근 모 방송사에서 유명세를 탄 한 무당이 개운법으로 이런 방법을 말했다. '설거지거리를 쌓아놓지 말고 바로바로 청소해라.' 알음알음 찾아가 복채를 낼 그 곳에서 할 말도 결국, '운이 좋아지고 싶으면 생활을 성실하게 하라'는 소리였다. 마치 우리 엄마가 할 말처럼. 나는 사과 몇 알을 썩히고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인진 모르겠지만, 엄마가 이런 말도 했다. '결국 인간은 다 자기가 경험해봐야 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