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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말고이응 Dec 05. 2018

터널을 빠져나오며

 생활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식욕이 떨어졌다.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갑자기 이유 없이 눈물이 났다. 방이 지저분했다. 주변 사람들이 미워졌다. 가끔 겪는 슬럼프일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도무지 잠들 수가 없었다. 여섯 달 가까이 세 시간 이상 연달아 수면하지 못했다. 심한 불면증을 견디지 못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과에 갔다. 1년 전, 의사는 나를 중등도 우울증이라고 진단했다.    

  

 속초에 가기 위해 인제양양터널을 통과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가장 긴 터널이라고 했다. 우울증은 인제양양터널 같았다. 약 11km에 달하는 답답한 이 터널에는 졸음과 과속을 방지하기 위한 장치들이 있다. 터널 천장에 가짜 구름이 그려져 있을 땐 일시적으로 환해진 하늘에 즐거웠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 고함 소리, 사이렌 소리가 들리면 깜짝 놀랐다. 덕분에 정속으로 꾸준히 달리다보니 밖이었다.     


 나 또한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게 달리려 노력했다. 1년간 터널을 잘 지나올수록 도와준 장치가 네 가지 있었다. 수용과 포기를 구분하기, 혼자서도 해결하고 남에게도 의지하기, 스스로의 호오를 존중하기, 적절한 사람과 적절한 상황에 기대하기. 이 네 가지는 때로는 갑갑함을 잊는 가짜 구름을 그려주기도 했고, 포기하고 잠들려는 나를 깨웠다.



 수용과 포기를 구분하기

  인생에는 노력해도 크게 뒤집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 외모, 경제적 배경, 운. 이 요소들의 수준, 그리고 그 수준이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수용이다. 반면, 인생에는 노력하는 만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체력, 인성, 주변의 사람. 이것들은 자신이 원하면 어느 정도 수준을 상승시킬 수 있다. 이 요소들의 수준 또한 인생의 많은 부분을 결정한다. 이것들을 있는 상태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포기다. 나는 수용하지 못해서 고민이 많았고, 포기해서 무기력했다. 수용하면 불행의 요소들을 잊을 수 있고, 포기하지 않으면 행복을 최대로 만들 가능성을 얻는다.


 혼자서도 해결하고 남에게도 의지하기

 함께 하거나, 혼자 하거나, 이 둘은 배타적인 선택지가 아님에도 나는 문제상황에서 하나의 태도만을 정하려 했다. 세상에는 전부 혼자서만 해결해야하는 일 혹은 전부 남에게 의지해서 해결해야하는 일 둘 다 많지 않다. 일정부분은 도움 받고 일정부분은 혼자 노력해서 해결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하나의 태도를 고집하는 것은 상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조급함만 몸에 배이게 만들고, 해결을 늦춘다. 사건이 벌어지면 잘 살펴보고 어떤 부분은 혼자 해결할지, 어떤 부분은 함께 해결할지 천천히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의 호오를 존중하기

 아무나, 아무거나, 아무데나, 아무렇게나라는 단어를 스스로에게 사용하는 빈도를 줄였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음악 장르, 좋아하는 동네,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만들었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 아무렇게나 보내자고 하면 성의가 부족해 보인다. 스스로에게도 언제나 정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건강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사물(영화, 음식, 장소, 액티비티)에 대한 싫어함은 만들지 않았다. 다만 싫어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에 대해서는 나름의 기준을 세워 꽤 철저하게 거리를 뒀다. 


 적절한 사람과 적절한 상황에 기대하기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는 태도는 분명 필요하다. 사람은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사람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문장의 더 정확한 형태는, ‘적절하지 않은 사람과 적절하지 않은 상황에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은 시험이 통과하기를 바라거나, 그렇게 가깝지도 않은 사람에게 심금을 울리는 따뜻한 위로를 원하는 것은 판타지에 가깝다. 스스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상황에 더 집중하면, 보통 기대감에 부응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렇지 않더라도 내 기대감이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상처를 납득할 수 있다.




 최근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내리는데 상쾌한 바깥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내 마음을 그늘지게 한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책을 읽으며 돌아오는 보통의 퇴근길은 분명 터널의 밖이었다. '이제 괜찮다', '다 해결됐다', '잘 지낸다'는 말을 습관처럼 할 때도 사실은 내가 어디쯤을 달리고 있는지, 터널 안인지 터널 밖인지 잘 몰랐다. 끝내려는 노력을 아무리 해도 확신이 없었는데 마지막은 아무렇지 않게 다가왔다. 끝났다. 모두에게 그렇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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