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섬:1933~2019> 관람기
제3자적 입장에서, 세상의 모순이나 누군가의 편견과 잘못을 지적할 때는 통쾌함을 느낀다. 어쩌면 최근 사적제재 유튜버의 폭로가 많은 관심을 끄는 것도, 캔슬컬처가 유행하는 것도 그래서 일지도 모른다. 정의로운 내가, 누군가의 잘못을 단죄한다는 기분을 가질 수 있도록 해 준다.
하지만 내가 피해자 혹은 피해자의 지지자의 정체성을 가질 뿐만 아니라, 가해자 혹은 가해자의 방관자일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의도치 않게 듣게 된다면 지금까지 가졌던 당당함의 균열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러지 않냐고, 평범한 나는 특별히 차별하거나 악감정을 품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누군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할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이 비난했던 많은 대상들도, 여러분과 비슷하게 이야기했다고.
‘선한 영향력’을 전달하고자 우리 주변 소중하지만 잘 알려져있지 않은 누군가를 알리고자 하는 목소리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 <섬 1933:2019>는, 그래서 ‘누군가의 삶을 통해 감동과 교훈을 얻는다’ 정도로 그칠 수 없는 작품이다. 작품을 만든 발단은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고 함께 시간을 보낸 마가렛/마리안느 수녀의 스토리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조망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고, 제목처럼 시간적 배경을 확장시켜 과거/미래의 이야기를 통해 차별과 배제와 슬픔의 역사를 지금 우리도 만들고 있지 않느냐고 묻는다. 특정한 한 명을 돌출시켜 보여주기보다는, 누군가에 대한 이미지를 고착화시키보다는, 그 시대와 어올리는 음악 그리고 상징적인 의상과 안무를 통해, 우리가 만들고 있는 섬에 대해 생각하게 해 본다. 내가 그 섬 밖에 있느냐, 안에 있느냐, 혹은 안과 밖을 연결하고 있느냐에 따라서 섬에 대한 감정은 달라질 수도 있지만.
창작진이 의도했는지 잘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몇몇 장면은 과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소록도를 갈 때 즐거워하는 모습 - 그 후의 비극을 더욱 대비해서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하였는지 - 는 설마 저 정도였을까 생각이 들기도 하였고, 후반부 2017년 강서구 특수학교 토론회와 연관된 모습은 너무 직접적이지 않나하여 긴장된 상태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평범한 시민이 그럴 수도 있다’를 보여주려는 의도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특정 대상을 향한 낙인찍기로 다가올 수 있을 듯하여 말이다.
그럼에도 적당히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지 않고,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우리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질문을 내놓은 창작진과 배우들의 용기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소록도와 한센병에서 일어났던 불평등과 모순을 보며 야만의 시대라고 부른다면,
수십년 후 누군가가 지금 우리가 누군가에게 하고 있는 행동을 바라보며 동일한 언어로 호명하지 않도록, 익숙함에서 벗어나 고민하고 실천하는 계기로 ‘섬’ 그리고 목소리 프로젝트가 자리잡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