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영리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꽤 논란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누군가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미루어 놓았던 기부생태계의 속살을 다루었다고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문제의 본질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개인적으로는 책내용 중 60% 정도 동의, 25~30% 정도는 논의할 필요가 있음, 10~15% 정도는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
- 저자가 책을 집필한, 그리고 이 이슈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구호단체가 홍보했던 내용과 실제 후원금의 사용처가 현장에서 다르게 쓰이는 상황을 알게 된 경험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관행이었겠으나, 저자에게는 중요한 이슈였고,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기부단체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일이었다.
- 평상시에는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다가, 도덕적 논란이 되는 개인/단체의 행동과 이어질 경우 언론에서 주목하는 뉴스로 보도되고, 그 경우 일정기간 몇몇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전체 기부 트렌드(기부시장, 기부금액 등에 표현도 생각했는데, 우선은 이 언어를 사용했다) 에 결정적인 변화를 주는 정도는 아니기에, 기부단체들은 이 부분의 본질적인 이슈에 대응하기보다는 다른 활동(커뮤니케이션 메시지의 다양화, 임팩트 강조)에 좀 더 집중하였고, 결과적으로 매년 대한민국의 기부금 규모는 증가하고 있다.
- 책은 다양한 사례와 용어에 대한 설명을 통해, 선의를 가졌지만 정보는 많지 않은 상당수의 기부자(내가 기부한 금액이 필요한 사람에게 최대한 많이 갔으면 좋겠어!!) 와, 사회문제해결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비영리단체(보다 필요한 누군가에게 더 많은 효과를 주기 위해서는, 중간에 이러이러한 노력들이 필요해!!)를 연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특별히 운영비의 개념을 잘 정리해 줘서,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른 범위로 얘기하고 있기에 불신과 오해를 가졌던 주체들이 공통의 접점을 찾아가는데 도움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행과정의 투명성'의 범위와 필요성과 영향력에 대해서는 분명 차이가 있을 듯하다.
- 저자가 원하는 기부과정의 투명성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현재 단계에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더 중요한 문제 해결을 위해 쏟아야 하는 시간과 인력과 역량을 이 분야에 투입하는 게 낭비처럼 여길지 모른다. 그래서 기부과정의 투명성이 비영리/기부 생태계에서 확실한 우선순위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쉽게 예스라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그만큼 더 나은 기부를 위해서는 필요한 활동들이 많다. 그래서 저절로 책에서 요구하는 수준이 과하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 하지만 동시에, 위의 논리가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하는(ex : 특정 개인에 대한 동정심) 홍보를 통해 모금된 금액이 기부자의 이해와 다른 활동에 쓰이고, 사회에서 희망하는 만큼의 투명성을 향한 개선을 게을리해도 되는 변명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기부에 프로세스에 대해 이해하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 기부할 수 있는 선택권을 적절한 수준으로 주고, 더 좋은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업계의 특수성과 내부논리를 완전히 무시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활동특성상 구호단체와 사회단체와 중간지원기관의 홍보/모금/커뮤니케이션 방식의 차이가 필요함애도 동의한다. 하지만 그 특수성과 내부논리 중 (최소한 일부는) 변화하지 않기 위한 변명이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견디지 못할 속도로 기존 관행과 결별을 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레버리지와 운영비 등 중간비용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하도록 노력하지 않고, 적절히 둘러대도 괜찮다는 면죄부를 주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 과정의 투명성보다는 임팩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최근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한 축구협회 국가대표 감독선임과정을 참고해 보았으면 좋겠다. 과정의 투명성에 대한 신뢰를 잃을 겨우, 결과가 엄청난 임팩트(ex: 국가대표 감독으로 클롭이나 펩을 불러왔으면 모를까)를 내는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관계된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사적제재가 국가권력의 빈 부분을 채워준다고 많은 사람들에게 응원을 받던 유튜버이, 과정의 불투명성과 사리사욕이 밝혀지자 호의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도 사이버렉카로, 쓰레기로 보여지는 상황도 괜찮은 참고사례이다.
물론 비영리/기부생태계는 위의 예시와 비교할 수 없다고, 훨씬 도덕적이고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나 역시도 상당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리고 어떤 측면에서는 비슷해 보이는 부분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업계에 오래 머물다 보면, 밖에서 바라보는 입장은 다를 수도 있음을 잊고 지낼 때가 있다.
- (지금은 많이 변화했을 수도 있지만) 사업을 위해 관계된 단체에서 특정항목으로 지원금 등이 내려오면, 예산을 잘 섞어서 유연하게(?) 사용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던 나의 과거 직간접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기도 하다. 물론 예산이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사업진행처의 취향에 맞게 비효율적으로 책정되는 사례를 자주 만날 수 있지만, 그게 예산을 돌려 막는 것의 정당성을 변호해 주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 물론 투명성으로 가는 과정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은 특정영역으로만 후원이 몰릴 가능성도 높고, 작은 단체가 투명성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는 노력이 과연 효율적 일지 의문도 들며(영수증 붙이기에 실제 일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는 푸념을 자주 들었듯이), 현장의 급작스런 변화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기에 더욱, 그렇게 노력하는 개인/단체들에 대한 더 따뜻한 시선, 넘치는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단체가 투명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후원금/기부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기에, 그런 노력을 하는 단체들의 빈 틈을 채워주는 지원금 등을 제공하는 중간기관이 있었으면 좋겠다. 투명성을 높이는데 투입되는 공수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IT기술이 사용자에 편리하게 개발되고 적용되었으면 좋겠다.
- 책에 나온 예시처럼 사업모델 개발과정을 공유하는 방식, 굿굿즈 등의 활용, 직관적인 설명과 현장에 필요에 대한 안내 등을 통해 '개인이 단체를 통해 더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방법'을 이해하는 후원자가 되도록 돕기를 바란다. 기부와 관련하여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경험과 욕구에 있음을 인정하고, 모두에게 감사하되, '나의 욕구'보다는 '생태계의 변화'를 하는 후원/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더 많은 단체들이, 그리고 생태계가 노력하길.
- 나의 경우 아무래도 넓게 보면 업계 관계자(?)이기도 하고, 단체들이 운영되는 상황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 보니 가능한 사업비가 아닌 단체의 인건비/운영비에 기부하고 있다. 나와 같은 방식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단체를 응원하고 이해할 수 있으니, 투명성과 임팩트가 제로섬 게임이 아님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 비영리 생태계 내에서도 개인과 단체가 당연히 다른 방향으로 접근할 수 있다. 서로 입장이 다를 때 논쟁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접근법의 차이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름을 너무 쉽게 틀림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서로에 대한 오해로 선의와 진정성을 미숙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부생태계 전체에 신뢰가 점점 쌓여가면서, 다른 부분을 그냥 담아두거나 무시하지 않고, 솔직한 존중 가운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개인과 단체와 생태계와 후원자와 사회에게 더 나은 방식을 찾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