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enna Vark Oct 25. 2021

성격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획득적 자아

인터넷 뱅킹이 익숙하지 않은 엄마는 종종 나에게 부탁을 하시곤 한다. 나에겐 오빠가 있긴 하지만 대대분의 심부름은 대한민국 모든 집들이 그러하듯 딸인 나에게 수렴된다. 엄마의 부탁 중에 필요한 물건을 대신 구매하는 것처럼 기쁜 마음에 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세금과 금융에 관련된 일이나 병원 관련 일, 혹은 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it 관련 일들은 사실 부탁을 받을 때면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내가 유능한 부분이 아닐 뿐만 아니라 성격상 누구한테 물어보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남들에겐 에너지 레벨 3이 필요한 일이 나의 관심사가 아닐 경우엔 10의 에너지를 요구한다.


 번은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딸을 가지신 분과 친구가 되셨는데  집은 딸이 통장도 관리해주고 투자나 재테크와 같이 돈과 관련된 일련의 일을 딸이 대신해준다며 부러운  이야기하셨다. 이야기를 통해 들어보니 사위가 작은 사업을 하고 있으며 딸이 경리 일을 보고 있는 듯했다. 아마도 숫자에 눈이 밝은 분에 틀림이 없다. MBTI비교해보자면 NP형인 나와 정반대에 있는 SJ형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누군가는 혈액형만큼 의미가 없는 MBTI라고 하지만 사람의 성격엔 몇 가지 대표적인 기질적 특징들이 있다. 예를 들어 똑같은 INFP라도 각각의 성향의 정도가 다르니(내향성을 구분하는 I가 55인 사람과 I가 99가 다른 것처럼) 같은 유형일지라도 수천 가지의 경우가 나올 만큼 획일적으로 동일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 그룹으로 묶어 생각할 만큼의 유사성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될 수 없는 타입의 사람은 분명 존재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나는 월중고사보다 모의고사 성적이 좋았다. 이유는 첫째, 운이 좋게도 20년 전 수능 과목이었던 언어, 수학, 사탐, 과탐, 영어는 좋아하는 과목들이었고 둘째 모의고사는 전날 하루 공부한다고 혹은 하지 않는다고 성적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반면 월중 고사의 경우 한문, 일본어와 같이 몇몇 과목은 정말 외우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했으며 가끔은 시험기간만 되면 공부가 너무 하기 싫어 가방을 만들거나 하루 종일 음악을 듣는 것처럼 딴짓을 했기 때문이다.


대학교의 경우는 프로젝트나 포트폴리오의 마감 기간 문제가 되었다. 퀄리티가 마음에 들 때까지 하다 보면 마감기간을 넘겨 프레젠테이션의 반응이 좋아도 최고점이 아니라 A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투입하는 시간과 학점의 관계를 계산해서 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성격상 한번 필을 받으면 며칠 밤을 새우며 과제를 하고 있었다. 머리로는 마감 기간을 맞춰 퀄리티를 조율하는 것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는 것과 나의 행동을 컨트롤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나의 성향과는 다르지만 생존을 위해 획득하는 성격적 특징들을 익히게 된다. 결혼한 후 우리 집에 온 아빠는 결혼 전엔 자기 방도 치우지 않던 내가 정리정돈을 하고 사는 것을 무척 신기해하셨다. 그리고 친구들은 내가 가계부를 쓴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물론 이 모든 행동의 형식은 타고난 사고판단형인 SJ형과는 많이 다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은 루틴 덕분이다. NP형의 가장 큰 단점은 일을 펼쳐놓고 마무리하는 것에 서툴며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못한다는 점이다. 또한 처음 접하는 것을 파악하는 데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경우의 수를 시물레이션 해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할 때 남들보다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며 당장에는 진전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충분히 파악한 후 본인만의 최상을 답을 찾기만 하면 누구보다 잘 해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정리정돈을 잘하거나 가계부 쓰는 것에 유능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일상이 정리되지 않으면 나의 소중한 시간이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로 채워지지 때문에 의식적으로 루틴을 만들었다. 정리정돈의 기본은 분류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N형들이 좀 더 창의적으로 카테고리를 만드는 능력이 있어 보편적인 방법보다 좀 더 맞춤에 가까운 답을 찾는 경우가 있다. 청소는 쉬운데 물건 정리가 어렵다는 사람이 많은데 나의 경우 직관적으로 그것이 정리가 되었다. 정리정돈의 기본은 모든 물건을 쓰임이나 쓰이는 장소에 따라 잘 구분 짓고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쓸고 닦는 건 정해진 시간에 하면 된다. 나의 경우 월요일은 대청소하는 날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물건의 자리를 다시 정리하고 화장실을 닦고 침구나 옷가지의 자리도 다시 정리하면 다른 요일엔 쓸고 닦기만 해도 제법 깔끔한 집을 유지할 수 있었다.


가계부의 경우에도 단순히 얼마를 어디에 쓴 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카테고리별 지출 패턴과 같이 의미 있는 수치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카테고리란 각자가 정하기 나름이다. 나의 경우 수기가 편해서 수기로 하고 있어 10원짜리 단위까지 기록하지 않지만 카테고리별 지출 현황을 한눈에 알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있다. 고정비를 제외하고 식비/ 외식비(배달)/ 생필품(집+남편)/ 아들(의복, 도서, 장난감)/ 나(의복, 도서, 개인지출)/ 주말 가족 나들이/ 경조사(특별지출 포함)의 카테고리로 우리 집 가처분소득 부분을 관리하고 있다.


돈과 공간을 어느 정도 정리해 놓으면 그다음은 시간이다. 크게 시간은 가사, 운동, 독서(공부)로 나눌 수 있는데 아침에 아들을 유치원에 데려다 주곤 바로 근처 산에 간다. 코로나 전엔 아파트 헬스장을 주로 사용했지만 거리두기 단계에 따라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다 보니 운동의 흐름이 끊어져 요즘엔 가볍게 동네 뒷산에 다녀온다. 2시간 정도 걷고 오는데 집에 도착하면 11시 반쯤 된다. 집에 도착해 점심을 챙겨 먹고 청소를 시작하면 2시면 해야 할 일이 정리가 된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시간을 할애하는 데 얼마 전까진 토익시험을 준비했었고 현재엔 읽고 싶은 책을 읽는다. 아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나의 시간을 가지고 아들이 돌아오면 다시 주부 모드로 들어간다.


그리고 나의 경우 패션을 전공했을 만큼 옷을 좋아하고 그날의 옷에 따라 제법 무드에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 이 부분도 미리 정리해 두었다. 덕분에 나의 생각 에너지와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아들 등원할 때 운동복, 집에 돌아와선 잠옷 겸 실내복인 흰색티셔츠와 트레닝복 바지를 입고, 마트에 가거나 아들을 픽업하러 갈 때엔 몇 가지 버전의 등하원복을 정해 놓아 뭘 입을까에 대한 스트레스를 줄였다. 또한 온라인을 이용해 물건을 살 때 예전엔 지구 최저가를 찾고 있나 싶을 만큼 이곳저곳을 찾아봤다면 지금은 정해진 사이트에서 바로 구매한다. 모든 쇼핑몰의 푸시 알람을 껐으며 특가를 찾아 돌아보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싸게 사는 것보다 계획에 없는 지출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나의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하루에도 수만 가지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아무리 단순한 선택이라도 선택을 위해 심리적 에너지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NP형의 경우 불필요한 상상력을 현실에 붙잡아 놓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미리 정해놓는 것이 유리하다. 과거의 나와 비교해보면 훨씬 규칙적이고 효율적으로 생활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극과 극을 오가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나의 성향이 달라졌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아니다고 말할 수 있다.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할 때면 온 세상 자료를 다 찾아보듯 정보를 수집한다. 물론 그것이 리스트화가 되거나 쓸만한 자료로 바로 정리가 되면 좋은데 나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충분히 정보를 넣다 보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정리가 되는 식이다. 무엇보다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여전히 우유부단하며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지면 밤을 새우기도 한다.


사람들은 본인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나 역시도 나와 다르게 이성적이고 계획적이며 현실적인 사람이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가 단점을 극복하려 보완에 힘쓰는 것은 마이너스를 줄이는 방법이지 결코 플러스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결국 나의 가치를 만들어 주는 것은 나의 뾰족한 부분일 것이다.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미친 듯이 집중할 수 있는 의지력과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는 나의 예민함이 나를 특정한 상황에서 강점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나만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엄마는 금융지식이 풍부한 딸을 가진 친구분이 부러웠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엄마의 예쁜 헤어와 스타일을 완성시켜준 딸이 있는 엄마가 부러울지도 모르니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