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드디어 임계점을 지나다.
올 한 해는 시작부터 기운이 좋아요. 추워서 움츠려 포기했던 아침 등산을 12월 말부터 다시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사랑하는 아들이 일어나기 전에 따뜻한 물 한잔과 집안에 머무는 제가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는 책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답니다. 1 챕터만요. 그럼 15분이면 미션을 완성할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올 1월에는 브런치북 '괜찮아 혼자만 그런게 아니야.'에 글을 3개나 완성해서 정말 뿌듯했어요. 그 글들은 호흡이 긴 편이라 완성하기까지 며칠이 소요되기에 1월 한 달 동안 저의 생활은 아침 독서, 아들 등원, 아침 산책, 청소, 점심, 글 쓰기와 같이 단조롭지만 단단한 생활이었답니다.
아들이 걷기 사작할무렵부터 시작되었던 경력에 대한 고민부터, 적은 가계소득, 아파트(부동산), 가족들의 실직 등 정리되지 않은 사건과 정보들이 마구 엉켜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했어요. 거의 5년이란 시간 동안 우울감과 이런저런 노력들의 반복으로 여기까지 왔거든요. 그런데 이제야 임계점을 지나는 걸까요? 요즘 정말 가슴 속 저 밑에서부터 새로운 기운이 오고 있음을 느껴요.
저의 또 다른 매거진 '괜찮아 혼자만 그런게 아니야'를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제 글의 중심엔 늘 가난과 열등감이 있었어요. 5년 동안 심리학과 뇌과학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어떻게 관계하고 있는지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제 삶의 기본이 되는 문장들은
첫째, 우리는 달라질 수 있다.
둘째, 결단을 먼저 하라. 그럼 나머지는 뇌가 방법을 찾을 것이다.
셋째, 의미 있는 의사결정을 위해 최대한 삶을 단순화하라.
넷째, 매일 독서와 매일 운동을 하라.
너무 흔하게 봤던 글들이라 아마도 실망하셨을 겁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이렇게 시시한 문장이 내 인생 문장이라니...
유전과 환경이라는 케케묵은 이론을 떠나 뇌과학 분야에서 보여준 다양한 데이터와 실험을 통해 뇌의 가소성이 결국 우리의 희망임을 알게 되었답니다. 혹시 여러분 가타카라는 영화 기억하시나요? 주인공인 에단 호크가 연기했던 빈센트는 자연의 섭리대로 태어난 아이였어요. 하지만 유전자 선택으로 태어난 동생과 달리 유전자의 한계를 뛰어넘어 자신의 꿈꾸던 일을 하게 되거든요. 열성 유전자 때문에 비록 청소부로 시작했지만 결국 원하는 우주비행사가 된답니다. 그의 진심 어린 열정에 많은 조력자들을 만나게 되거든요.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학습과 그것의 의한 시냅스의 결과물, 그리고 기억은 한 인간이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퍼스낼러티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학습과 기억이 없다면 퍼스낼러티란 단지 황량하고 텅 빈 유전자 구조의 껍데기일 뿐이다. 학습 덕분에 우리는 유전자들을 뛰어넘는다.
조지프 루드 -시냅스와 자아(Synaptic Self)
결국 저의 가난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려면 눈에 보이는 현금흐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변화의 물고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저뿐이라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니 행동이 변하기 시작했어요. 먼저 동네에서 지원 가능한 시급제 아르바이트에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한 곳도 우선 시간과 조건이 맞으면 넣었습니다. 그렇게 한 발 앞으로 나가니 동네 보세 옷가게에서 시작해 유니클로를 지나 드디어 어제는 에르메스에 이력서를 넣었답니다.
저는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 본 기억이 별로 없을 만큼 거의 대부분 인터넷에서 비브랜드 제품을 소비하던 사람이었기에 저에게 명품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곳은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라서 시작도 하기 전에 주눅이 들어 미리 포기했던 것 같아요.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처럼요. 그래서 전 적당히 트렌디하며 가성비 좋은 자라를 좋아했나봅니다. 그런데 마흔두 살에 명품 중의 명품인 에르메스에 원서를 넣었답니다. 자소서에 진심을 다해서요. 급하게 하루 만에 넣는 거라 사진도 집에서 찍은 사진이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엔 최선을 다 했던 하루였답니다.
난 3만 원짜리 원피스에도 빛이 난다고.
전 늘 제가 얼마나 물건을 싸게 잘 쌌는지, 제가 가지고 있는 저렴한 물건에도 나 충분히 멋지지, 이런 마음으로 살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돌아보니 이것도 제 가난에 대한 르상티망이었어요. 안목도 있는데 여유도 있는 경우를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이죠.
고백하자면 제 취향은 가성비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성비가 취향이라니 좀 서글퍼지지 않나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 에르메스에 원서를 넣으면서 하나 결심했답니다. 앞으로 가성비를 뛰어넘는 취향을 가지겠다고요. 미리 스스로의 가능성을 재단하지 않겠다고요.
에르메스를 꿈꾸지 않는데 어떻게 에르메스가 될 수 있을까요. 기왕 되는 거 앞으로는 에르메스가 되어 보려고 합니다.
인생에 중요한 건 결심과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이니까요.
그나저나 정말 면접을 보게 되면 어쩌죠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