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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na Vark Jan 05. 2022

너도 부잣집에서나 필요한 딸이지.

가족리스크, 완벽한 가족에 대한 환상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나


육아를 하며 한동안 지독한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의식은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였지만 나의 무의식은 괜찮지 않다는 걸 알아주길 바랬던 것일까. 이상한 타이밍에 눈물이 나오는 일이 많아졌고, 생리주기에 따라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소화되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는 분노로 곪아 나의 일상을 좀먹었다. 그리고 그 끝은 죄책감이다.


어느 날 아들을 재우고 거실에 나와 신랑과 친정 오빠와 함께 치맥을 하다 눈물이 새어 나왔다. 육아를 하며 세상과 단절된 나에게 유일한 끈은 남편과 친정가족뿐인데 그 시절 그들도 나처럼 방전되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그때 그랬다. 신랑의 실직, 형편없는 나의 구직활동, 아픈 친정아버지까지 더 이상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내 삶이 초라하고 구질구질하게 느껴졌다. 내 능력으로 번 돈을 다리미 삼아 반질반질하게 가족의 구김살을 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가족의 불행은 서로 공명하고 있었다.







다단계의 늪


서울로 이직해 패션 대기업에서 MD로 일을 시작할 때였다. 평소엔 연락도 하지 않던 친정 오빠가 요즘 엄마가 이상하다며 다단계에 빠진 것 같다며 연락을 해왔다. 놀란 마음에 오빠의 전화를 끊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회사가 아니라며 걱정이 되면 나보고 한번 알아보라며 당당히 화사의 이름을 알려주셨다. 나는 네이버에서 회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물어보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한 가지 맘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어쨌든 다단계 회사라는 점이다.


다단계와의 악연은 내가 결혼을 위해 신랑 화사가 있는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되었다. 엄마는 이런저런 구실을 찾아 그 다단계 회사로 나를 안내하려고 했다. 어느 날 엄마는 본인이 진급을 하게 되었으니 가족인 내가 꽃다발을 준비해주면 좋겠다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다단계 회사 행사에 내가 와줬으면 했다. 당일 아침, 내키지 않아 가지 않겠다고 했더니 평소 지적이고 교양이 넘치시는 엄마가 처음으로 불같이 화를 내셨다. 행사만 다녀오면 된다는 순진한 내 생각과 달리 그들의 그물은 제법 촘촘하게 계획되어 있었다.


나는 가족이 다단계 사업을 하지 않으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단계 사업을 한다고 무 자르듯 가족을 잘라낼 수 있은 용기가 나에게는 없었다. 모두가 꿈꾸는 화목한 가족은 나의 꿈이기도 했으니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올라와 한동안 내 마음은 지옥이었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거대해졌만 갔다. 회피했지만 이 불편한 감정이 소화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 이야기를 다시 입 밖으로 꺼내기까지 6년이 걸렸다. 내가 패션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 했던 노력들을 뒤로하고 경력의 분기점인 이직의 순간에 다단계라는 선택이 나의 경력에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사과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면 내 마음속에 있는 원망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라고 무심히 말씀하셨다. 아마도 엄마는 내가 하는 일이 옷 따위나 만들고 파는 일이라 생각하신 것 같다. 같은 회사에 근무했던 나의 동료들이 그 옷 따위나 만들고 파는 일을 하기 위해 어떤 교육과 지원을 받았는지는 상상도 못 하시겠지. 그리곤 “의사도 하는 일인데 네가 하는 일이 뭐가 대단하다고.”라며 흘릴 듯 말씀하셨다. 진심으로 그 일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딸의 성공을 위해 권했다면 누가 엄마를 비난할 수 있을까.





여상이나 나와서
경리나 하다
적당히 돈 벌어 시집이나 가지.




어린 시절 나를 가장 슬프게 했던 말은 아버지의 말이었다. 이 클리셰 봐라. 우리의 인생은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서 보면 클리셰의 범벅이다. 사람을 억압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작은 세계관에 가두는 것이라고 했던가. 당신의 삶의 무게에 치여 인생을 입체적으로 볼 수 없었던 부모님의 한정된 세계관 속에서 나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성장해야 했다. 내게 허락된 세상은 코딱지만 했다. 나는 그것이 내 삶의 가장 큰 결핍이었다고 생각한다.


여상에 가기엔 아까운 나의 중3 모의 고사성적표 (전국 상위 5프로)







돈으로 살 수 없는 문화적 유산, 헤리티지


내가 유일하게 부러워했던 유형의 사람들은 문화적 유산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우리 인생엔 내가 아무리 열심히 돈을 벌고 지식을 쌓는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경험이 있다. 스토리가 더해지면 그만큼 매력적인 것이 없지 않은가. 그것이 브랜드의 시작이자 끝이며 사람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내가 좋아하던 선배에겐 건축가 아버지가 물려주신 수동카메라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카메라로 넘어가던 순간에도 선배의 손에 들린 니콘 FM2 카메라는 그 어떤 오브제보다 빛이 났다. 패션을 전공하는 나에겐 건축가라는 직업에서 오는 아우라는 부정할 수 없는 욕망의 대상이 되었기에 선배의 카메라는 보통의 수동카메라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싶었던 가족의 전통을 담은 나의 욕망을 투영하는 전사지였다.


월급쟁이 부모님을 가진 친구가 부러웠다는 남편의 이야기 속에 경제적으로 고단했던 삶이 묻어나는 것처럼 나의 욕망엔 나의 결핍이 묻어 있다. 나는 가끔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타인의 불행을 마주 하면서 어른이 되었지만 우리 모두의 가슴속엔 여전히 치유되지 않은 과거의 내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누구에게도 완벽한 세상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 각자의 삶이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맛있는 브라우니 한 조각이 불러온 불행배틀 영화 노팅힐 중



가족 이야기는 어렵다. 첫째, 누워서 침 뱉기처럼 내가 형편없는 가정의 출생이라는 점을 시인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며 둘째, 본인의 삶을 본인의 방식대로 열심히 살아오신 부모님의 삶을 내가 마음대로 재단하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핍의 첫 에피소드로 부모님의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것이 나다움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이유는 쓸 때 없이 의미를 부여한 서사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우리 부모님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엔 어떤 응과응보가 있어서가 아니다. 1981년 내가 태어난 해에 태어난 우리나라 인구가 80만 명인 것처럼 나의 존재엔 특별함이 없다. 나라는 존재가 정성을 다해 신경 써서 살펴야 할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고생 좀 해봐라고 내 인생에 슈팅스타의 팝핑캔디처럼 고난을 섞어 놓은 것도 아니다. 태어나보니 우리 집이고 그들이 내 부모님일 뿐이다. 우연에 가까운 확률로 존재할 뿐이다. 이 얼마나 심플한가.







스스로 다시 만드는 가족의 전통


정반합의 과정처럼 칭찬이 인색했던 부모님 덕분에 아들의 작은 성공에도 손뼉을 치며 응원하는 엄마가 되었고, 어린 시절 냉소적이고 상막했던 우리 집과 다르게 기념일이 되면 소소하게라도 축하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또한 합리성을 강조해 감정적인 결핍을 초래했던 나의 부모님과 달리 덜 합리적이라도 그 순간의 아들의 정서가 어떤지를 먼저 살피는 엄마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주말마다 이곳저곳 다니며 가족의 이야깃거리를 만들었고 가끔은 자본의 향기가 폴폴 나는 곳도 무리해서 경험해보기도 했다. 부모로서 함께 한 아들과의 새로운 시간 속에서 거짓말처럼 어린 시절의 내가 위로받고 치유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부모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우리의 삶이지만 남루해도 나에겐 유일하게 주어진 삶이기에 시작부터 포기하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자신의 인생을 타인의 값싼 동정의 대상으로 만들지는 말자. 중요한 것은 무엇이 되었든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이다. 거기가 어디든 시작하면 된다. 자기 연민에 빠진다면 탈출할 기회는 사라진다.


다단계에 잡혀가고 정신만 차리면 빠져나올  있다고 했던가. 누구나 인생에  번은 권유받는 다단계 사업이니 나는 엄마를 통해 다단계 백신을 맞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모범생이었던 딸을 평생 동안 여상 나온 옆집 딸과 비교하며 평가절하하고 자존감에 상처 입히는 말만 하는 사람의 삶의 기준과 나의 기준을 분리하기로 했다. 스스로의 가장 밑바닥을 보게 만드는 사람이 부모라니…  정도면  인생의 가장  리스크는 우리 부모님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어딘가 엉성하고 불완전하지만 나는 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왜냐하면 바꿀  없는 대상에 힘을 써봤자 나의 불행만 커지기 때문이다. 그들은  삶의 많은 변수들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보면  세상 어딘가엔 엄마와 함께 다단계 사업을 하며 성공한 딸도 존재할  있으며 아버지의 기준처럼 투자 대비 가성비를 따진다면 현재 백수인  삶은 낙제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가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꿈꾸는 삶의 모습이 다를 뿐이다. 그들에게 나 역시 이해가 되지 않은 이상한 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그들의 삶에선 부잣집 딸도 아닌데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내가 리스크였을지도 모르니깐. 나도 부잣집에서나 필요한 딸이지. 누구에게나 좋은 딸은 아닐 수도 있으니 억울해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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