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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하 Dec 12. 2023

교토에서 절대미를 짓다

금각사(金閣)

남편은 젊은 시절에 교토에서 살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어디론가 떠나야 했을 때 일본을 떠올렸고 미시마 유키오가 쓴 소설 금각사가 너무 좋아 그 앞에 살고 싶었다 했다. 남편은 소원대로 금각사 앞에서 3개월을 지냈다. 그 뒤로 그는 젊은 날의 자신을 만들어준 곳 중 하나로 교토 유학시절을 꼽는다. 교토에 갔을 때 나는 금각사에 너무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젊은 날의 남편이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금각사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그저 사진으로 많이 보았던 모습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남편의 꿈이 담긴 곳에서 아무것도 못 느꼈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그곳에서 나는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기억나는 것은 금각사 앞에서 먹은 녹차 아이스크림의 맛이 정말 꿀맛이었다는 것뿐.


그 뒤로 금각사에 가게 된 것은 결혼을 한 후였다. 공개하지 않던 나의 삶을 벼르고 별러서 공개하게 된 날, 나는 교토에 있었다. 오후부터 출장 일정이 있어서 전 날부터 교토에 머무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금각사에 가고 싶었다. 그곳에 가면 뭔가 다를 것 같았다. 그래서 금각사의 문이 열리자마자 사리전으로 향했다. 이제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후련함이 사리전에 투영되어 비치는 느낌이었다. 새로운 마음으로 사리전 앞에 서니  그저 사진 속에 존재했던 금각사는 사라져 있고 이제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금각사가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소설 금각사는 주인공이 절대미를 가진 금각사를 파멸시키겠다며 방화하는 내용이다. 세상에 ‘절대’로 지켜야 할 것들이 있을까. 내 삶도 그중 하나인 것 같다. 사람들은 흔히 ‘평범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그들이 꿈꾸는 평범한 삶이라는 것은 30평대 이상의 자신의 집이 있고 좋은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자식들을 대학 보내는데 어렵지 않은 것들이다. 사람 사는 세상의 평범함이 언제부턴가 ‘물질의 풍요’로 바뀐 것 인지.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내 삶에 대해 왈가왈부한다. 정작 본인이 더 괴로운 삶 속에 던져져 있으면서 말이다.


금각사의 주인공은 금각의 절대미를 파괴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에 방해되는 것을 없앤다. 두 번째 금각사를 보던 날의 나도 세상에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용기를 많이 얻었다. 앞으로의 바람이 있다면 내 삶도 매우 평범하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금각사는 나에게 새로운 삶을 제시해 준 기쁨이었다.

다시 한번 금각사를 찾았을 때는 아이들과 함께였다. 사리전이 예뻤는지 딸이 우리도 금으로 집을 짓자고 했다. 너무 비싸서 지을 수 없다 했더니 그럼 은으로 지을까라고 묻는다. 은으로 지으면 색깔이 빨리 변해서 안된다고 답했다. 그럼 돈을 많이 벌어서 금으로 짓자고 한다. 

아이들이 지쳐 보여서 금각사 앞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피로 끝에 먹어서 그런 것인지 아이들이 좋아서 난리다. 수다쟁이 딸이 말한다. 이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본 다음에 한국에 가서 팔자고 말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너무 맛있어서 계속계속 찾아올거고 우린 부자가 돼서 금으로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왜 그렇게 금으로 집을 짓고 싶냐고 했더니 엄마랑 같이 좋은 집에서 오래오래 살려고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렇게 남편의 금각사, 나의 금각사, 아이의 금각사가 완성된 것 같다. 꼭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 우리 마음에 꿈, 인생, 엄마라는 금각을 각자 지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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