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하 May 08. 2024

엄마가 해주는 국수가 제일 맛있어

“나는 엄마가 해주는 국수가 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딸이 애정 넘치는 말투로 나에게 말했다. 고명도 없는 국수가 뭐 그리 좋다는 걸까. 멸칫국물에 국간장, 맛소금 조금 넣은 국물에 소면 넣은 국수가 그리도 맛있는 걸까. 나는 딸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완벽히 만들어낸 국수는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든다. 양념도 다 사 온 것들이고 소면도 삶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딸의 국수사랑은 세 살부터였다. 어린이집에서 잔치국수를 먹고 온 이후로 “엄마, 국수가 먹고 싶어요. 국수 주떼요~”를 남발했다. 매번 밥과 국, 반찬을 바꿔주기도 귀찮았는데 국수라니 이게 무슨 횡재인가 싶었다. 문제는 내가 국수를 만들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괜찮다. 인터넷에 검색해서 만들면 되니까 말이다. 그렇게 나는 국수를 글로 배웠다. 처음엔 멸치를 통째로 투하해서 국물을 내는 바람에 둥둥 떠다니는 멸치 비늘과 뼈들을 거르느냐 애를 먹었다. 우연히 장을 보다가 멸치 거름망이 있는 걸 알고부터는 그런 수고를 덜었고 시간이 더 흘러 멸칫국물 팩을 판매한다는 것을 알고는 더 쉽게 국수 국물 내기에 도전할 수 있었다. 소면 삶기도 그렇다. 처음엔 국물 속에 넣고 삶아서 그대로 줬다. 문제는 뭐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국물도 흐리멍덩해지고 뭔가 깔끔한 맛이 안 났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소면을 삶은 뒤 찬물에 한 번 헹구라고 한다. 아, 이런 비법이! 그 뒤로 우리 집 소면은 맑은 멸칫국물 속에서 탱글탱글함을 유지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나도 어릴 때 국수를 참 좋아했다. 초등학교에 다닐 땐 일이 늦게 끝나는 엄마를 기다려 포장마차에서 잔치국수를 먹는 것이 인생의 묘미였다. 국수 한 그릇, 떡볶이 한 접시를 엄마와 나눠 먹으며 그날의 피로를 풀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포장마차가 거의 끝날 때 즈음 우리는 국수를 먹으러 갔고 주인아주머니는 어묵을 다 판 뒤 국물 통을 정리하려는 듯이 보였다. 엄마는 국물 통에 있는 무를 자신에게 주면 안 되냐고 했다. 더는 손님을 받을 것 같지 않아서 쉽게 내줄 줄 알았던 무는 아주머니의 완강한 거부에 부딪혔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차피 팔지도 않을 거 자신에게 달라고 여러 번 졸랐고 엄마는 결국 무를 얻어냈다. 이 무는 원래 내주는 게 아니라는 아주머니의 말이 분주한 포장마차 골목을 가로질렀다. 그땐 그런 엄마가 너무 창피했다. 무가 뭐라고 싫다는 아주머니에게 그리 달라고 했을까. 며칠 전에 딸아이에게 국수를 만들어주기 위해 국물을 내는데 그 당시 무를 달라고 했던 엄마와 주지 않으려던 아주머니의 모습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리곤 깨달았다. 아, 국물은 무가 중요하구나. 그러고 보니 네모난 어묵 통을 둥둥 떠다니던 다시마도 중요한 것 같다. 나는 그 뒤로 멸치로만 국물을 내지 않고 다시마와 무도 들어있는 국물 팩을 사게 됐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내가 좋아한 국수는 국물이 없는 국수가 됐다. 일명 간장 국수! 엄마가 일자리를 옮겼기에 포장마차의 잔치국수를 먹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출출해 보이면 소면을 삶아 소금과 간장, 들기름으로 버무린 국수를 해주셨다. 그 위에 김 가루를 올려 먹으면 어찌나 맛있던지 그 어떤 고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가끔 너무 배고픈데 엄마가 집에 없으면 내가 간장 국수를 해 먹기도 했다. 만들기 간편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배달음식이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엔 최고의 음식이었다. 나는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해서 멸칫국물 위에 화려한 고명을 넣을 수 없다고 생각하며 간장 국수를 먹곤 했다. 그래서 간장 국수는 남들이 모르는 우리 집 가난의 상징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출출할 때 먹는 별미라며 간장 국수를 소개하는 블로그 포스팅을 보게 됐다. 우리 집만 먹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집도 간장 국수를 먹고 있었다니. 그 뒤로 간장 국수는 가난의 상징에서 입맛 돋우는 음식으로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명절이 다가올 때 즈음이었나. 소면이 나무 상자 속에 잔뜩 담겨서 선물로 들어왔다. 남편이 말하길 맛있는 소면이라고 누가 챙겨줬다는 것이다. 그날부터 우리 집은 그 소면을 해치우기 위해 아침마다 잔치국수를 먹어댔다. 입맛이 없는 아침에 멸칫국물 속 소면은 간편식으로 알맞았다. 딸은 역시나 고명 없는 국수를 고집했고 나는 묵은지를 꺼내 잘라서 설탕, 고추장, 들기름과 비벼댄 후, 남편의 국수 위에 올려줬다. 그렇게 한 달은 국수를 먹은 것 같다. 상자 속 소면이 거의 다 비워져 갈 때 즈음 뭔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옛날에 먹던 그 맛이 아닌 느낌이었다. 좋은 소면이라고 했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다음에 우리 집엔 또 다른 소면 선물이 도착했다. 딸이 국수를 좋아한다는 말에 나의 일본인 친구가 색깔이 조금씩 섞인 국수 소면을 보내왔다. 초록 소면, 노란 소면, 붉은 소면이 조금씩 있어서 딸아이는 신기해했지만, 맛이 달랐다. 예쁜 것 같았지만 확실히 우리가 사랑했던 국수 맛이 아니었다. 그렇게 일본에서 날아온 소면을 다 먹어치운 뒤 새롭게 소면을 사면서 알게 됐다. 우리 집에서 먹는 소면은 노란 띠가 있는 포장지에 담겨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부터 우리 집 국수의 맛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래, 이거야 이거. 이 맛이었어!


20년 전, 엄마가 간장 국수를 해줬던 그 소면은 내가 시집오면서도 자연스럽게 우리 집의 한 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엄마가 나에게 영향을 준 것이 크게 없는 줄 알았더니 수박을 네모 깍두기로 썰어서 보관하는 습관, 가을이 되면 묵은지를 꺼내 만두를 빚는 익숙함처럼 특정 소면을 사는 버릇도 나에게 물들여놨던 것이다. 우리 딸도 크면 노란색이 절반은 차지해 보이는 소면 제품을 고를까. 문뜩 궁금해지는 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