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에서 사망보험금을 몇 푼 받은 여자는 살던 곳을 떠나 작은 포구에 자리 잡았단다. 남편과 살던 집에 선 죽어도 살 수 없어 연고도 없는 곳으로 무작정 이사를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어려서부터 바다를 보고 살아 바다는 엄마 품처럼 포근하게 품어줬다고 했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음 고향 근처로 갔을 거라며... 침을 한번 카악 뱉고는 말을 이어갔다.
사십이 되도록 해 본 거라곤 쉐터공장에서 일 한 경험밖에 없고, 장사를 하기엔 엄두가 안 나고, 있는 돈은 까먹기 시작하고.
가장 단순하고 그나마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 시작한 게 다방이었단다. 커피 한 스푼, 프리마 두 스푼, 설탕 두 스푼 넣어 휘이휘이 저어주면 오천 원이고 배달이라도 가면 만 원 +@를 받았다고 했다.
커피믹스 한 봉은 100원밖에 안 했지만 아가씨들이 놀아주니 그 정도 받는 건 비싸지 않다고 했다.
"작은 포구지만 뱃 사람들이 들어오면 시끌벅적한 데다 힘든 일을 해서 그런지 뱃사람들은 기마이도 좋았지."
"껄떡거리는 인간도 있지만 까짓 거 죽으면 없어질 몸뚱인데 적당히 안겨주면 돈이 생기는데 뭐. 과부라 걸리적거릴 것도 없고 때론 외롭기도 한데 시간이 갈수록 내겐 딱 맞는 일인 거 같았어."
"첨엔 적응이 안 돼서 손이 불쑥 들어오면 움찔했는데 이 아재들은 그게 더 좋았나 봐.
더 짓궂게 움켜쥐는데 아프다고 뿌리치면 더 해... 암튼 남자란 놈들은 나이를 먹으나 안 먹으나 다 똑같아.
생긴 거 하고는 달리 샌님처럼 생긴 것들이 더 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더 파고든다니까."
"아이고오. 어린 학생도 있는데 아줌마 주책이지?" 하다가도 금방 19금으로 돌아섰다.
"사람으로 보지 말고 돈으로 보자 했는데 팁을 줘도 싫은 인간이 있고, 팁을 안 줘도 은근히 끌리는 사람이 있더라니까.
어떤 놈들은 돈 몇 푼을 주는데 꼭 가슴 안에다 넣어주는 지저분한 것들도 있어."
" 참. 모르지? 마담은 홀복이 한복이고 레지들은 사복을 입었는데, 내 옷고름은 남아낼 새가 없었어. 툭하면 뜯어지고 툭하면 끌러지고... 그 얘긴 그래도 호시절이었다는 거야. 덕분에 수입은 짭짤했거든.
애들 중에는 독하게 맘먹고 몇 년 만에 가게 하나 얻을 정도로 벌어 나가는 애들도 있었어. 배달을 나가서 위를 더듬으면 5천 원, 아래는 기본이 만원이 암묵적이었고, 거기서 5분 이내로 엄마놀이를 하면 5만 원 이상은 받았거든.
돈푼깨나 있는 사람과 하루 놀다 오면 30~40만 원이었어. 데이트를 가든 연애를 하든 우린 빠진 시간만큼 돈을 챙겨 받음 끝이었고. 나간 애는 얼마를 받는지 연애를 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게 그 바닥이야.
그 돈을 살뜰히 모아 타지방으로 가서 옷가게를 하며 신분세탁해서 보통 남자하고 결혼하는 게 애들의 로망이었어. 나야 40이 넘어 그렇게 할 확률도 떨어져 지박령처럼 이 타령으로 지냈지만 말이야."
"알아? 우리한테도 지조가 있다는 거?
몸은 함부로 해도 입술만큼은 허락하지 않아. 그건 정이 있는 사람한테만 허락하거든. 왜 그런지는 몰라. 암튼 그건 나도 싫더라고."
"에휴~~ 아가씨. 미안한데 나 맥주 한 병만 갖다 줄 수 있어?"
목이 탄다며 베란다로 나오려는 여자에게 술을 부탁하곤 숨도 안 쉬고 벌컥벌컥 마셨다.
옆에 있던 할머니가 "그렇게 마시면 못 써. 큰일 난다고~~"
그러자 여자는 "할매 우린 이미 죽었어요~~"하며 낄낄댔다.
순간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묘한 웃음들이 튀어나왔다.
시골 포구에서 거친 인간의 삶을 엿보고 자신에게도 열정적인 붉은 피가 흐른다는 걸 알게 되었나 보다.
오ㆍ육 년을 포구에서 살던 여자는 뱃사람 중에서도 젊잖아 보이는 홀아비와 살림을 합치기로 했단다.
그를 따라 근처에서 가장 크다는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섬으로 들어갔단다.
날씨 좋은 날은 함께 배를 타서 고기를 잡고, 집뒤 텃밭에는 애호박이며 섬초와 상추를 심어 큰 욕심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
자식을 낳지 않았지만 남자에게 연년생 딸 둘이 있어 살갑게 대해줬단다. 엄마를 죽음으로 보내서인지 흔한 새엄마증후군에도 걸리지 않았다니, 어른들이 사별한 집으론 가도 이혼한 사람에 가지 말라고 한 것을 조금은 이해가 갔다.
좁은 바닥이라 다방을 했다고 색안경을 쓰고 볼만도 한데 그런 것은 없었다고 했다.
여자가 귀해 50~60대도 홀아비로 늙어가는 사람이 많았고, 화교(그 당시에 많았단다.) 아내와 결혼하는 일이 비일비재해서 다방을 했다고 차별하지 않아 편했다고 했다.
없는 살림이지만 이제야 제대로 살림하는 것 같았다며 좋아했단다.
그리곤 말문을 닫더니 애먼 담배만 연신 피워댔다.
사람들은 그래서?라고 묻지도 않았다. 왠지 여기서 질문은 실례라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난 늦가을 한기를 더 참지 못하고 쟈켓을 가지러 안으로 들어왔다.
커피와 설탕을 듬뿍 넣은 머그잔을 들고나가려는데 여자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밖이 넘 추우니 따듯한 안에서 남은 얘기들을 하자며.
난 속으로 ' 엥~죽은 사람도 추위를 타나?' 하지만 좀 전 추워서 들어온 내 생각은 하지 못하고... 벌써 치매가 왔나 보다.
성인들의 얘기라 불편한 내용이 있을 수 있으니 양해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