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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탁 Jul 22. 2021

오타가 발견됐다

후회보다 책임에 가까워지기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체감한 자신의 변화를 뽑으면, 생각보다 많은, 사사로운 것에도 민감해졌다는 점일 것 같아요. 사소한 오타 하나는 160페이지짜리 인쇄물을 생각하면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오타가 사람 이름이라던가, 제품명이라던가 누군가의 연락처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이제 막 출력이 끝난 매거진을 검수하다가 광고(주님) 지면의 타이틀에서 오타라도 발견되면 그날은 가만히 있어도 밀려오는 멀미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죠. (유감스럽게도 이는 경험담입니다)


비슷한 직종에 있는 분들은 이미 잘 아시겠지만, 그렇기에 교정은 매우 중요한 과정입니다. 커피 한 잔을 만드는 과정과 비교하면 수많은 커피콩 중에서 상태가 좋지 못한 결점두를 솎아내는 작업이랄까요. 얼핏 봐서는 티도 잘 나지 않는 그 결점두 하나가 포함된 상태로 커피를 추출하면 그 정도가 미미할지라도 하여튼 뭔가 미심쩍은 커피가 만들어지는 것이죠. 감각이 무딘 고객들은 이 커피로도 충분히 만족하거나, 어떤 차이도 느끼지 못할 수 있으나 일부 민감한 고객은 맛이나 향에서 미묘한 불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커핑(cupping)을 전문으로 하는 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죠.

그만큼 교정작업은 잡지사에게 있어 콘텐츠를 만드는 것과 동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과정입니다. 애써 기획하고 취재하여 디자인까지 마무리한 콘텐츠에서 오타 하나라도 나오면, 누군가에게는 그 내용이 얼마나 훌륭하고, 시사적이던 결국 '오타가 있었던 기사'라는 타이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죠. '뭐 그렇게까지 집착하나?'라고 생각하는 분들의 생각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직접 제작한 콘텐츠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면 그 정도에 상관없이 정말 끔찍한 기분입니다. 심지어 오롯이 자신의 실수일 때의 기분은 좋아하는 드라마가 종영하거나, 애정하던 캐릭터가 죽어서 퇴장했을 때보다 더 참담해요.


그런 기분을 모르지 않기에, 에디터들은 하나같이 교정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일단 사람 이름이나 업체명 같은 고유명사가 잘못 나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어색한 문장이나 지나치게 주관적인 어투 혹은 정치적이거나 과격한 표현도 과감하게 도려냅니다.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보다야 시간이나 머리를 덜 소모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심적인 갈등이나 부담은 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작업이죠. 그래도 이렇게 수고와 노력을 갈아넣어서 깔끔하고 번듯한 책이나 잡지가 발행이 되면 매달 하는 짓이지만 나름의 뿌듯함도 느끼곤 합니다. 마감기간에 임박하면 항상 '때려치운다 때려치운다'를 되뇌이면서도 마감이 끝나고 다음호를 준비하면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또 챗바퀴에 올라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오늘은 제가 담당한 원고에서 오타를 발견한 날입니다.(급전개, 예정되어 있던 클리셰) 어떤 기계의 작동에 따른 온도, 압력 그리고 유량 등의 변화를 기록한 그래프 이미지에서 문제가 발견됐는데, x축 하단에 있어야 하는 지표가 삭제된 것이죠. 그러니까 이 그래프가 온도, 압력, 유량의 변화를 표현한 그래프인데. 각각의 선이이 무엇을 나타내는지는 알 수 없는 그래프인 셈이죠.


분명 최종 교정지나 데이터 상으로는 포함된 상태로 반영이 되어 있었는데 왜 사라진 것인지 편집 디자인 담당자에게 문의했고, 연재자가 기존 그래프 이미지의 화질이 좋지 않아 새롭게 보내준 이미지로 대치하는 과정에서 문제의 지표가 좀 길어서 삭제를 했다는 것이었죠. (아 그랬구나) 인쇄소에서는 이미 해당 부분의 인쇄가 끝났다는 답변을 받았고, 논의 결과 다시 찍자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인쇄 특성상 한 페이지의 일부, 마침표 하나만 잘못되어도 그 한 라인을 다시 찍어야 하기에 그만큼 비용이 더 들어갑니다. 점 하나 때문에 십수페이지를 재인쇄해야하고, 당연히 종이도 발주를 다시 해야하죠. 이마저도 인쇄만 진행됐을 경우고, 다른 작업이라도 진행됐으면 비용은 그만큼 더 발생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피해는 소박한 월급쟁이에게는 상당히 치명적인 수준이죠. 그리고 편집 담당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올려둔 파일을 원고 담당인 제가 다시 확인을 하지 않았다고 억울해하는 모습인데... 교체하기 전의 그래프 이미지와 새로운 그래프 이미지는 동일했고, 단순히 대치만 하는 작업이라 생각했기에 넘어간 부분이 발목을 잡아버렸네요.


마감이 끝나고 잡지가 발행되기 직전에는 데이터를 정리하고, 다른 채널 업로드를 위해 가공도 해야하기 때문에 무척 바쁠 때이지만 일이 잡히지 않아 이렇게 브런치에 오늘을 옮기고 있어요. 책으로 받아보기 전에 발견해서, 원고를 보내 준 연재자가 이에 진노(?)를 하기 전에 고칠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지만, 비교적 최근에는 이런 일이 없었던 터라 퍽 심란한 마음을 풀어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스크롤을 올려보니 구질구질하게도 적은 것 같네요. 


그래도 후회나 원망 또는 자책같은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이 상황 자체를 피드백으로 삼아보려 합니다. 이 간단한 프로세스조차도 신뢰하지 말자고 다짐하는 자신은 조금 딱하게까지 느껴지지만, 후회보다는 책임에 좀 더 가까워져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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