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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탁 Jul 25. 2021

에디터 3년차, 수백 명을 만났지만

이번 연말에 연하장을 쓰려는 이유

매거진 에디터 3년차는 매거진의 성격이나 주제에 따라 다르겠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단순히 업무상의 협조, 미팅, 촬영장에서 몇마디 요청사항을 주고 받기만 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앞선 상황보다는 직접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이 상대방을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편입니다. 당장 어투나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부터,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내면에 품고 있는 인사이트나 주제에 대한 생각 등이 짐작되기도 하고요.


얕고 깊은 만남, 그 안에서 깨달은 것들의 누적

지금까지는 조금, 아니 많이 아쉽게도 저는 만났던 이들에게 대해 딱히 어떤 기록을 해오지 않았습니다. 매거진에 들어갈 콘텐츠로만 생각했고, 그 자체를 결과물로 여겨서 따로 이를 남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거죠. 하지만 최근 계속해서 새로운 이들과 만나고, 과거 만났었던 이들과 다시 만나면서 이 수많은 관계를 너무 허무하게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남 자체가 불편했던 적도 있었지만, 짧은 대화 속에서도 새로운 것을 깨닫고 즐거웠던 적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죠. 


단순히 언제 누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눴고, 결과는 이러했다는 식의 6하 원칙 기록은 앞으로의 업무에라도 도움이 됐을 겁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의 만남, 대화를 통해 자신의 인사이트가 채워지는, 나아가 확장되었던 순간의 기록은 그때는 물론이고, 시간이 지나 다시 들여다 봤을 때도 상당히 인상적인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를 정리한 자료가 후임 에디터나 인간관계에서 헤매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됐을 수도 있고요.

익숙하고 편한 방식이지만, 사실 별로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예요.


인풋과 인사이트의 타임라인

지나치게 딱딱하거나 협찬 물품 리스트를 만드는 것처럼 정리할 필요는 없겠지만, 적당히 깔끔한 나름의 기준에 맞춰 기록해두었다면, 무엇을 배우거나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면 조금 더 생생하게 기록해두는 것이죠. 그랬다면 3년이 지난 지금은 꽤나 의미있는 저만의 인풋(Input), 인사이트(Insight)를 확인할 수 있는 타임라인이 되어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정형이라서 아쉬움이 남네요.


조금 더 큰 틀에서 바라보면, '인터뷰 외에도 그 동안 매거진 콘텐츠를 제작하며 크고 작게 관여해 온 프로젝트에 대한 기록도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인스타그램에 보여주기 식의 소감, 인증샷 정도만 남길 게 아니라 어떤 콘텐츠를 담당했고, 무엇이 즐거웠고 힘들었는지, 피드백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기록하는 거죠. 지난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들여다보는 것과 프로젝트에 대한 기획단계부터 피드백까지 적어둔 기록물을 보는 것의 차이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어지간히 강렬하지 않은 이상, 기억이나 생각은 휘발성이 강하다는 걸 새삼 체감하고 있어요. 


꾸준함, '나'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이 있다면, 아마 저를 비웃거나 당연한 걸 하지 않고 있었냐고 욕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할 말이 없긴 합니다. 업무를 일상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으려는 생각이 강했는데, 너무 일차원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특히 지금 같은 시기에는 유연한 사고가 오히려 스스로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텐데 말이죠.


이와 관련되어 한 가지 또 이 꾸준한 기록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전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좋은 대학을 가고, 업무에서는 멀티플레이어가 주목을 받는 것이 성공이라고 여기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여전히 그런 시선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지배적이었던 인식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다채로워진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다양하고 꾸준하게 시도하는 이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세상이 되었으니까요. 유튜버나 스트리머, SNS 인플루언서 등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죠. 

"옛날에는 대단한 사람이 대단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오랫동안 꾸준한 사람이 너무너무 대단해 보이는거예요"

나영석 PD가 <유퀴즈>(40화 That's Life)에서 한 말인데요. 꾸준함에 대한 정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속적으로 한 가지에 몰두해온 이들에게서는 남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요즘 유행어 중에는 '~에 진심인 편'이라는 말도 있죠. 흔히 덕질이라고도 하는데, 과거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취향을, 이 덕질을 여러 채널을 통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가 그 사람만의 고유한 개성, 콘텐츠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끌어당기면서 개인이 하나의 기업이나 브랜드처럼 영향력이 생기게 된거죠. 콘텐츠 주제마다의 차이는 분명히 있겠지만, 결국 이들을 그 자리로 이끈 것도 그 진심과 꾸준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패러다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기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시리즈인 a.c.o.t(a cookie of trend)에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떻게 기록해볼까?

기록하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방법 또한 지금처럼 다양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나 일기를 몇줄로 끄적이는 것부터 낙서로 보이는 그림을 그리거나,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을 찍어 남기는 것도 훌륭한 방법일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 낙서로 밖에 보이지 않는 그림을 그려오다 이모티콘부터 책까지 출판해 스타작가가 되었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모두 한 번씩 들어봤을 이야기죠. 그럼 의미에서는 브런치도 실제 출간 사례가 수두룩할 정도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으며, 실제로 이용하는 플랫폼 서비스겠네요. 물론 영상을 활용한다면 유튜브는 말할 것도 없이 매력적인 플랫폼이고요.

중요한 것은 일단 시작해보는 것, 꾸준히 이어가는 것, 그러기 위해 너무 거창하게 계획을 세우거나 어렵게 생각하지는 않기, 하지만 기왕이면 심플하지만 기초적인 양식으로 기록을 해보는 것. 이 정도일 것 같아요. 유경험자는 아니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항상 와닿는 말이고, 시작은 린(Lean)하게 하는 것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거든요.




잠깐 생각이 든 것을 정리할 생각으로 시작한 것에 비해 글이 길어졌지만, 정리하자면 결국 제가 놓친 기록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이를 계기로 새로운 인사이트를 쌓아 나가기 위한 기록입니다. 당장은 업무상의 인터뷰를 단편적으로나마 기록하고,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점차 자신의 인사이트와 인풋을 좀 더 현명하게 아웃풋하기 위한 과정의 시작인 셈이죠. 


올해 연말에는 조금 촌스럽기도, 어색하기도 하지만 주변 이들과 이렇게 닿게 된 인연들에게 연하장이라도 보내볼까 합니다. 가능한 한 명 한 명을 떠올리며, 다르게 말이죠. 1년에 한 번, 자신의 인간관계를 돌아보는 것이라 해도 좋을 것 같아요. 지루한 연말 잔업이 되버릴 가능성도 있지만, 뜻밖의 반가움이나 설렘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요. 몇 장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연하장들을 적어나가면서 후회나 반성보다는 고마움과 그리움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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