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네모난 칠판을 보며 지내던 시절, 단짝 친구가 있었다. 학교 매점에서는 뭐든 하나만 사서 반으로 나눠 먹었고 서로의 삐삐에 남겨진 음성 메시지까지 들려주며 깔깔거리던 사이였다. 그런 단짝에게도 털어 내기 힘든 속내가 많았다. 복잡한 감정과 헛헛한 생각들이 뭉쳐서 스스로는 풀 수 없을 만큼 단단해진 것들을 각자의 가슴에 박고 살았다. 말로는 풀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어느 날부터 우리는 교환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만나면 다시 이야기할 테지만 잊으면 안 될 거 같아 미리 써두는 소소한 것들도 많았고, 고마웠는데 말하지 못했거나 서운했는데 말하지 못한 것도 썼다. 그리고 가슴에 단단하게 박힌 고민들도 털어놓았다.
무거운 주제들을 말로 꺼내는 것에 서툴렀던 나는 교환 편지를 쓰면서 나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그 자체로 위로가 되고 때로 용기를 내는데 도움이 되었다. 친구와 교환 편지를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을 무렵부터는 흘러나오는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거나 화를 참을 수 없을 때마다 글을 끄적거렸다. 누군가에게 보여 줄 글이 아니었기에 쓸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노르웨이에 살기 시작했다. 북유럽이란 나라에서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경험한 것들을 기록하는 글을 썼다. 그 기록은 책이 되었고 책을 출간한 덕분에 브런치 작가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5년 동안 브런치에 글을 하나도 발행하지 못했다. 브런치에는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이 너무 많았고, 부지런히 글을 쓰는 작가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브런치를
열어 볼 때마다 질투가 났고, 글을 쓰지 못하는 나를 질책하는 마음만 커졌다. 그러나 글을 쓰지 못하는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브런치에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속마음을 터놓는 글, 진심을 담은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 안의 것들을 드러내는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여러 날을 고민하면서 자문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가장 진심을 전하고 싶을까? 무엇을 전하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문득 마지막으로 담임을 했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고3이 된 아이들에게 응원의 편지글을 써보기로 했다. 편지글이라면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드러내며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부터 수능 전까지 매주 한 편씩 30주 동안 편지를 썼다. 노르웨이에서 겪은 일상과 교육 관련 이야기들을 엮어서 위로와 응원을 보냈다. 외국에 살고 있는 옛 담임 선생님에게 편지를 받은 아이들은 직접 브런치에 찾아와 로그인을 한 후 하트를 눌러주기도 했고 힘이 되었다는 메시지를 따로 보내주기도 했다. 브런치북을 발간한 경험은 나에게 글을 꾸준히 쓰는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쓴다는 것이 보람 있는 일이며 동시에 선한 영향력도 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0편의 편지글로 나의 첫 브런치북이 완성된 후 나는 장롱 작가를 탈출했다. 글을 쓰기 위해서 매일 더 열심히 보고, 묻고, 들으며 지낸다. 해외 생활이 외롭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이 또한 글로 남길 경험 중 하나라는 작가의 마인드를 되새긴다. 내가 브런치에 남기고 싶은 글들은 나만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다.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살아있는 감각으로 삶을 기록하는 글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역사와 사회의 일각을 바꿀 수 있는 창조야말로 의미 있는 창조라고 하셨다. 거시적인 창조는 하지 못할지라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상의 창의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북유럽에서 겪은 낯선 문화와 엄마이자 교육자로서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하는 역사가로서의 글쓰기’ 이것이 브런치 작가로서 내가 꿀 수 있는 꿈 중에 가장 크고 의미 있는 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