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편하게 쓰려고 한다.
잘 쓰는 글이기보다 기록하고 싶어 쓰는 글이다.
그러니 편하게 읽어주시길.
우리 집 안락한 아암-체어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가족은 노르웨이에서 이사하고, 이사하고, 이사한 끝에 지금 우리 집에 정착했다. 이 집에 이사 올 때 우리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소파와 이별했다. 연두색 소파 세트는 우리 집을 산 새 주인에게 선물로 주었다. 새 주인은 소파를 꽤 마음에 들어 했다. 사실 노르웨이에서는 살 수도 없는 메이드 인 코리아, 코리아 스타일 소파였으니 그분들 커뮤니티에서는 꽤나 핫한 선물이 될 물건이었다.
깔끔하게 통 큰 선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예전 소파가 새 집에 어울리는 소파도 아니었을뿐더러 소파를 가질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파대신 큰 거실 테이블을 두고 다이닝 벤치 의자를 들였다. 그리고 남은 공간에는 암체어를 하나 샀다. 남편이 원한 의자였다. 남편은 소파보다 더 편안하게 앉기 위한 곳이 필요했나 보다. 처음엔 암체어를 두 개 사서 하나씩 쓰자고 했지만, 암체어를 두 개나 사기엔 공간도 좁았고 가격도 부담스러웠다.
몇 번을 보고 또 봐서 고른 밝은 그레이의 암체어. 무료 가구 배달 서비스 따윈 없는 나라여서 남편이랑 끙끙 대면서 매장에서 우리 집 거실까지 옮겨 왔다. 햇볕이 잘 드는 창가. 노르웨이 하늘과 숲이 보이는 거실 오른쪽에 암체어를 놓았다.
가족들이 거실에 모여있으면 암체어엔 남편이 앉고 딸들과 나는 다이닝 벤치에 앉았다. 남편 자리라 생각해서인지 아이들도 잘 앉지 않고, 나도 그랬다. 가끔 남편이 거실 테이블 앞에 앉아 있으면 자기 자리가 아닌 듯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암체어가 지난주부터 내 차지가 되었다.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한쪽 다리를 굽히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에도 봄이 오고 슬며시 바깥 활동을 시작할 참이었다. 봄이 드디어 온다고 기분이 업된 우리 가족이 제일 먼저 시작한 액티비티가 자전거였는데, 그놈의 자전거가 이 사달을 낼 줄은 미처 몰랐다.
노르웨이는 눈이 오고 녹기를 반복하는 긴 겨울을 보낸다. 코뮤네에서는 겨울 내내 얼음길에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잘게 부순 자갈돌을 길 곳곳에 뿌리는데, 4월 중순쯤 눈이 다 녹고 나면 비로소 자갈을 치운다. 길에 깔린 작은 자갈들은 기계로 마구 부순 거라 뾰족뾰족하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들이나 달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잘못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 상처가 난다.
가시같은 자갈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길. 그런 내리막길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이 끝나는 커브 지점에서 자전거와 함께 넘어졌다. 비싸게 주고 산 기능성 바람막이도 다 찢어지고, 바지도 찢어지고. 장갑을 끼지 않은 왼쪽 손에도 상처가 났다. 오른쪽 팔꿈치, 골반, 허벅지까지 상처가 났는데 그만하길 다행이었다. 문제는 무릎이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에 와서 처음으로 응급실에 갔다. 아파서 병원에 간 건 10년 만에 처음이었다. 깊고 길게 피부가 찢어졌으나 다행히 신경과 근육, 뼈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가 예상했던 것보다는 상처가 컸건 모양이다. 두 의료진은 나의 치료에 좀 더 신경을 쓰는 눈치였다.
보통은 응급실 앞에서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데 한 시간 안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었다. 꿰매기 전에 마취도 해주고, 치료 후 항생제도 처방해 주고, 파상풍 주사도 맞았다. 음, 이 정도면 노르웨이 공공 의료 서비스도 괜찮은데? 그 와중에 의사와 간호사의 '노르웨이어' 대화가 다 이해가 돼서 기쁜 마음이 또 스쳤다.
그러나 진료실은 벗어나니 카드 뒤집듯 또 마음이 뒤집혀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섬세한 손길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뭔가 너무 듬성듬성 꿰맨 거 아닌가? 촘촘하게 꿰매달라고 할 걸 그랬나? 혹여나 꿰맨 피부가 찢어지면 안 되니 최대한 무릎을 굽히지 말아야지.
사실 사고가 난 직후 난 병원에 바로 가지 못했다. 지인의 따님이 의사라 그녀가 먼저 달려와 먼저 내 상처를 봐주었다.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아는 의사가 있다는 게 너무 다행이고, 금새 달려와 봐주시니 감사했다. 그녀는 응급실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는 것이 맞겠다고 판단했고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남편과 나는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서비스가 한국처럼 편하지 않아서 일단은 참고, 알아서 어찌 해보려는 경향이 강했던 우리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어쨌거나 열흘 정도는 꼬박 암체어가 내 차지다. 암체어는 허리도 편안하지만 다리가 참 편하다. 암체어를 살 때 세트로 같이 산 발 받침대 덕분이다. 발 받침대 덕분에 암체어가 온전해진다.
욱신대는 온몸에 편안한 휴식을 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남편이 출근한 뒤. 나는 편안하게 암체어에 앉아 본다. 다리를 최대한 쭉 펴고 앉으면 잠도 슬며시 찾아온다. 남편이 퇴근을 하고 암체어에 앉아있다가도 내가 다가오면 후다닥 일어나 자리를 내어준다.
내 자리다. 내 차지다.
남편이 내어준 암체어 덕분에 내 무릎 상처는 잘 아물고 있다. 고마워. 아암~체어.
작가 노트 :
남편과 너무 가까워 살짝 질투가 났던 우리 집 암체어. 그 의자와 혼연일체가 된 이번 주를 기억하고 싶어 이 글을 썼습니다.
오랫동안 노르웨이 의자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이 주제로 첫 번째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쓰고 나니 그동안 꼬여있던 매듭을 풀기 시작한 것 같아 기쁩니다.
작가 소개 :
미니린 (노하Kim) 노르웨이와 한국, 그 중간 어디쯤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어요. 어떤 일을 새롭게 기획하고, 함께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분들을 작가로 만들어 드리는 <작가 크리에이터>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minirin.noha @nohakim.writer
뉴아티 글쓰기 북클럽 : https://naver.me/xuiQO8GZ
블로그 : https://blog.naver.com/norwayfriend
책 : 노르웨이 엄마의 힘(황소북스, 2017)
초보자도 전자책 작가로 만드는 글쓰기 셀프코칭(큐리어스, 2023)
https://curious-500.com/leader/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