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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원 Jul 08. 2017

나는 매번 길을 잃는다

어쩌면 아마도

 

특별하지 않은 날들과의 이별은 그리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녀는 떠났고 나는 그 자리에서 서서 한 참을 멍하니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순간이다.

오랫동안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하고 또 기억했다.

사실 그 기억의 주인공은 그녀였다.

하지만 하루가 가고 또 다른 하루가 셀 수 없지 지났을 즈음 그녀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 기억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였다.

단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사람,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아팠고 쓸쓸했으며 외로웠다.

마음에 큰 상처가 남았다.

떠난 그녀만을 바라보며  남겨진 나를 나는 위로하지 않았다.

분명 아프고 불쌍했던 사람은 그때의 나였을 텐데 나의 기억은 온통 내 시선에 비친 그녀였고 기억에 맺힌 그녀와의 이야기였다.

충분히 위로받을 자격이 있던 나를 나조차 위로하지 않은 것이다.

나는 철저히 방치되었고 치료되지 못한 아픔은 아무도 모르게 마음속의 깊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았다.

3년 하고도 9개월이 흘렀을 때 문득 나는 깨달았다.

"나는 지금 어디로 표류하고 있는 거지?"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암흑이었고 나는 그 안에 둥둥 떠 있는 이상하고 기묘한 존재였다.

그동안 나는 그녀에게서 나를 찾으려고 했다.

그녀는 과거의 나와 사라졌고 당연히 나를 찾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생각했다.

정말 그리운 것은 그녀일까, 아니면 그때의 나일까.

물론 그때의 내가 그녀로 인해 행복했으니 그리움의 주체가 그녀일 가능성도 있다.

그것은 한 10년 혹은 20년이 지난 뒤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오래전 첫 해외여행을 유럽여행으로 간 적이 있었다.

물론 첫날부터 침대에서 이불을 덮어쓰고 울기도 했고 음식은 입에 맞지 않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진지하게 했던 그때 나는 여자 친구의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녔다.

그녀가 없으면 나는 거리의 미아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를 놓치지 않으려고 엄마를 따라다니는 아이처럼 그렇게 그녀 옆에 늘 붙어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은 일어났고 그녀는 오랫동안 펜팔을 했던 독일 친구를 찾아갔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녀를 기다릴까도 생각했다.

그녀는 이틀 후에 돌아올 테니까.

어차피 누구도 알 수 없으니까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바보가 될 수는 없었다. 최소한...

무작정 길을 나섰고 나는 내가 걷는 길을 외우며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거리가 늘어날수록 모든 길을 다 기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늦은 오후 해가 질 무렵 골목을 수없이 방황하다 마침내 하이델베르크성에 다다랐다.

밤이 찾아오고 성을 내려와 다시 숙소를 찾아가야 했다.

또다시 골목을 헤쳐 나가야 했다.

길을 찾지 못한다고 삶이 끝나거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순간 나는 간절히 한 가지를 소망했다.

그저 숙소를 찾게 해 달라고…….

하지만 또다시 똑같은 골목에서 헤맸고 버스를 잘못 타기도 했다.

혼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성의 모습, 그리고 그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은 지금까지의 느꼈던 것과 많이도 달랐다.

바로 나, 나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 혹은 사람들 속에서 그들에게 맞춰 살아가며 정작 내가 원하는 것, 생각하는 것들을 시작해보지도 못한 모습.

철학자의 길을 걷는 괴테처럼 깊이 있는 나만의 삶을 갈망했다.

그리고 12년 정도가 흘렀을 때 그 골목을 방황하는 나를 또다시 발견했다.

그 시절 나는 10년 정도가 흐르면 나의 인생은 모든 것이 완벽해질 줄 알았다.

무작정 말이다.

하지만 변한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나이만 먹었고 고난의 상황만이 달라졌을 뿐 모든 것이 그때와 같다.

발전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변명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여전히 나를 발견하려 헤매고 있고 길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온갖 비난과 무시에도 나에게 큰 실망을 해도 버티고 버틴다.

이제 나는 내일 그리고 10년 후에 내 인생이 완벽하거나 좋아질 거라고 더 이상 믿지 않는다.

나는 또다시 그 골목에서 방황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삶의 꽃 봉오리는 그곳에서 피어난다.


"고난이 있을 때마다 그것이 참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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