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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세계

우치다 다쓰루의《무지의 즐거움》

by islander


2025. 2. 6. 낭의 날.


몇 개월에 걸쳐 예약한 책들을 며칠 간격으로 받고 있다. 처음 한두번이야 설렜지 알림톡이 이어지니 당황스럽다. 이래선 2주안에 소화하기 힘들다. 더욱이 인기 있는 예약도서들의 특징이 뭐겠는가. 책을 기다리는 다음 주자들이 줄지었다는 거다. 쫓기는 기분이 들 수밖에. 결국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하면, 듬성듬성 읽다 덮었다. 읽을 게 줄고 있다는 안도감마저 들었다. 농축된 사유의 문장들을 허겁지겁 읽어치울 때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현타가... 이 정도면 병렬독서가 아니라 날림독서 아닌가. 아니, 독서라기보다는 찍먹과 분류 작업 같기도. 좋은 책은 좋아서 이건 소장각이네, 기쁜 마음으로 중도하차했다...


그 와중에 작년에 예약한 우치다 다쓰루의《무지의 즐거움》마저 도착하고 말았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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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 왜 이 책을 읽고 싶었는지 잊지 않고 있었다.


“독서에는 세 단계가 있지요. 난독 -> 체계적 독서 -> 자신을 내려놓는 독서, 즉 무방비 독서.” p55


누군가의 발췌문에서 본 ‘난독’과 ‘건너뛰며 읽기’라는 말이 뼈아팠다. 나야말로 손에 잡히는 대로 마구 대충 읽어대지 않나, 부끄러운 마음에 이 책을 예약해뒀는데 하필 난독의 난장판 속에서 받아든 것이다. 숙연해진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책은 어림짐작했던 것과 달랐다. 독서생활보다는 배움과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고, 책의 메시지에 아프게 휘둘릴 줄 알았는데 기분좋은 에너지에 휩쓸려 그가 저자로서 바라는 바대로 “무심코 끝까지 읽어버렸다.” 그는 어렵고 복잡한 내용일수록 읽기 쉬운 구어체를, 독자의 소매를 붙잡고 이야기 들어달라 간청하는 문체를 구사한다 했다. 이 책은 주제만 보면 고리타분하고 지루할 것 같지만 그의 가독성 좋은 구어체 문장과 곳곳에 포진한 흥미로운 이야기 덕에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우치다 다쓰루는《하류지향》으로 오래전 그 이름을 접했으나 각잡고 읽은 책이 없어서 그가 어떤 작가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일본에서 그는 사상가로 알려져 있다지만, 자신을 프랑스 문학·철학, 특히 까뮈와 레비나스 등의 ‘전도자’라고, 본업인 학술연구는 일종의 ‘전도’ 활동이며 다양한 장르를 횡단하는 연구는 그저 ‘팬 활동’이라 표현한다. 그의 이런 태도가 담백하고 신선하다. (이 또한 덕업일치의 삶..)


가장 인상깊은 점은, 읽고(배움), 쓰고(전도), 사는(무도) 일이 모두 합치된 듯 보였다는 것이다. 인터뷰 형식을 취한 책은 질문들이 배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그의 답변들은 다양한 갈래로 뻗어간다. (일종의 관계 망상(!)을 깊이 내면화한 주권자를 일정 수 포함해야 민주제 국가가 성립한다든지 ㅎㅎ, 과학과 종교 지성의 본질, 그리고 무도 수련과 학술 연구의 마음 자세는 같다든지 하는 주장들은 신박하다.) 그의 이야기들은 결국 ‘연속적 자기 쇄신’이라는 기치 아래 모아지는 것 같다.


그는 무지와 미지에 열려 있다. 자신의 기억 저장소는 ‘이해할 수 없어 소화하지 못한 것, 설명할 수 없어 마음에 걸려 있는 것’으로 채워져 있으며, 지적 성장은 완성된 형태의 지식 축적이 아니라 (스스로) 반증하고 수정해야 하는 지식들이 일궈낸다고 그는 말한다.




내게 무지는 드러내기 부끄러운 것, 앎은 성취하여 뿌듯한 것이었다. ‘무지’란 섣부른 형태의 불완전한 지식으로라도 덮고 넘어서야 할 상태였고, 내 기억저장소에는 그런 지식들로 가득할 터였다. 그러다 배움의 오만에 빠지곤 했다. 대체로 빠르게 익히는 편이라 알겠다 싶으면 쉬이 지루해졌다. 그 탓에 앎의 외연이 확장되지도, 위로 향하지도, 그래서 깊이를 더하지도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무얼 해도 설레지 않는다. 이게 다 배우려는 노력을 멈춰서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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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작가는 《고요한 읽기》에서 우리는 마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는 걸 모른 채, 모르니까 멈춘다고 했다. 교만은 멈춤의 다른 말이며, 더 가야 해서 멈추지 못한 사람은 교만할 수 없다고. ‘설렘’을 유지하려면 모르는 사람으로 있어야 하며 무지의 영역을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고도 했다. (p65)


‘무지의 즐거움’과 공명하는 말들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이고 분명한 세계 너머 구체적이지도 감각적이지도 분명하지도 않은 세계를 지향하게 하는 열망이 인간을 다른 존재가 되게 한다. 그리움이 하는 일이다. 그것은 현실 속으로 다른 차원을 초대하는 것과 같다. 초대된 다른 차원이 우리를 끌어 올린다. 바깥으로, 위로. 말하자면 초월. 레비나스는 초월을 횡단하는 운동이자 상승하는 운동이라고 했다.

가로질러 올라가는, 가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 이승우,《고요한 읽기》, p 71


"분명하지도 않은 세계를 지향하게 하는 열망이 인간을 다른 존재가 되게 한다."

"가로질러 올라가는, 가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배움의 세계에서는 특히, 그리고 언제나 그렇다.


birmingham-museums-trust-TWavMkqC_cc-unsplash.jpg 이미지 출처: Birmingham Museums Trust




“독서에는 세 단계가 있지요. 난독 -> 체계적 독서 -> 자신을 내려놓는 독서, 즉 무방비 독서. 무방비 독서는 난독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체계적 독서 단계를 거치고 나면 읽을 가치가 있는 책과 읽을 가치 없는 책을 구별할 만큼의 안목은 생깁니다. 그 덕에 난독이 되지는 않습니다.” p55
“‘진정한 나’를 찾아서 평생 그것을 ‘연기’演技하는 것은 저에게는 좀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진정한 나’ 같은 것에 아무런 흥미가 없거든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똑같은 인간이라면 외려 살아갈 보람이 없지 않을까요?” p117
“‘개성’ ‘자기다움’’캐릭터’는 어디까지나 편의적인 개념입니다. 잠정적인 것이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그것 없이는 자기가 있을 곳을 마련하지 못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없습니다. ‘틀’과 ‘캐릭터’는 아이들의 자기방어를 위한 중요한 도구이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 안에 계속 틀어박혀 있는 한 그 이상 성장할 수 없습니다.” p119
“교사의 역할은 바로 이때, 성장하고자 오래된 껍질을 벗어 던지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는 ‘상처받기 쉽고 부서지기 쉬운 상태’의 아이들에게 “네가 결코 상처받지 않도록 지켜주겠다”고 다짐하고 “나는 네 성장을 축복한다”라고 말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p120
“지성을 개발하려면 뭔가를 ‘알았다’고 생각하고 안주하기보다 뭔가를 ‘모르는’ 불안 속에서 사고하는 부담을 견디는 것이 효과가 있습니다.” p158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미숙하다고 여기는 것을 오히려 기쁨으로 삼습니다. 앞으로 답파해야 할 끝없는 길을 목표로 “아, 계속 걷지 않으면 안 되는구나. 괴롭다, 힘들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끝없는 길을 걷는 것을 자신의 영광이라고 느끼는 것, 그것이 수행자의 자세입니다.”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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