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이야기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초급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두 사람은 캄보디아에서 세 사람은 라오스에서 왔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E와 S는 라오스 북부에서 온 몽족이다. 소수민족인 몽족은 라오어가 아니라 몽어를 쓴다고 했다. 나는 이 사실을 E에게서 들었다. 첫날 그의 이름을 발음하던 중이었다. 이름의 첫음절은 [니]와 [이] 사이 어딘가에서 들려왔다. E는 내 서툰 발음을 몇 차례 고쳐주다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라오스 사람도 못해요.
얼마 전에는 고유어 숫자와 한자 숫자의 쓰임새를 익히고 소리의 연음과 예외를 연습했다. "6월 6일 6시 6분에 닭 한 마리와 과일 대여섯 개를 샀다." 이 문장을 외국인이 (실상 말할 일은 없겠지만) 말하기 위해서는, 도대체 몇 개의 장애물을 넘어서야 하는지. 먼저 날짜를 말하기 위해 여섯이 아닌 육을 선택한다. 하지만 6월은 [유궐]이 아닌 [유월]로 읽고, 6일은 [유길]로 연음시킨다. 6시는 육 시가 아닌 여섯 시이며, 6분은 여섯 분이 아닌 육 분이다. 물건을 셀 때는 고유어 숫자를 쓰며, 단위 의존명사 '마리'와 '개'를 선택하고, 수사 '하나'를 관형사 '한'으로 바꾼다. 마지막으로 오육 개도, 다섯여섯 개도 아닌 대망의 '대여섯' 개. 이건 정확히 몇 개일까 하는 고민은 일단 접어두고.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에 나오는 ‘Bird by Bird' 원칙은 언어 학습에서야말로 필수적이다. 이 모든 어려움을 단박에 풀 수 없으니, 한번에 하나씩.
그날 우리는 날짜 묻고 답하기만 집중적으로 연습했다. 그 수업의 빌런은 11월 21일이었다. 내가 외국인이라면 이날 보자는 한국인이 싫어질 듯. [시비뤌 이시비리 아니에요. 시비뤌 이시비리리에요. 시비뤌 이시비리레 만나요.] 음절을 하나하나 의식하며 연음하자니 혀가 꼬여든다. 저벽에걸린기린그린기린그림도 아닌 날짜 하나 말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일인가. 우리는 머쓱한 웃음을 주고받았다. 한국어 어려워요. 그래요. 나도 어려워요...
조 모란은 《단어 옆에 서기》에서 "나이팅게일은 자기 목청에서 어떻게 그런 황홀한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지만, 나이팅게일을 흉내 내는 인간은 모든 음을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소리 내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모든 음을 분석하다 보면 모국어가 낯설어지는 순간이 온다. 불수의근인 양 움직이던 언어의 근육이 일순 위축된다. "단어를 살아 있는 선으로 만드는" 규칙과 불규칙, 규범과 현실 들. 그 사이를 머뭇대고 방황하며 의심한다. 이게 맞나(혹시 사투리)? 이게 원래 이랬나(직관 불신)? 김훈은 《칼의 노래》의 첫문장을 두고 담배 한 갑을 다 태우며 고심했다지.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나, 꽃이 피었나. E는 첫날부터 바로 그 조사 문제로 내 말문을 막히게 했다. “‘직업은 뭐예요’, ‘직업이 뭐예요’, 이거 달라요?” 다르지요. 작가의 말마따나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지요. 하지만 이걸 초급어 화자에게 어떻게 쉽게 설명하나. 결국 나는 그날 이후로 곧잘 하게 될 대답을 내주었다. "좋은 질문이에요! 다음 시간에 꼭 말해줄게요." 그렇게 혹시 모를 질문을 준비하다 보면 엉뚱한 물음에 사로잡힌다. 일주일의 시작은 일요일일까, 월요일일까. 토요일 자정은 토요일의 시작일까, 끝일까. 일요일에 말하는 다음주 목요일은 정확히 며칠 후일까. 이제와 지금, 방금과 금방의 차이는? 그리고 종종 소리내어보는 [이시비리리에요]와 [민주주이에 으이이].
이러한 낯섦과 모호함과 무한하게 생성되는 물음의 증식이야말로 언어의 "종잡을 수 없이 아름답고 혼란스러운 난장"이라 나는 생각했다.
★ 이런 난장 속에서 재미있게 읽고 있는 책:
1. 이창덕 ·조형일 ·강남욱의《궁금하고 알아보면 재미있는 한국어 이야기》
우리의 전통적 ‘시간’ 관념은 ‘지점(刻)’이 아니라 ‘간격(間)’에 가깝다는 설명이 흥미롭다. 해와 하루에 십이지간을 배치하기(올해는 뱀의 해, 9시-11시는 사시로 뱀이 잠들어 사람을 해치지 않는 시간), '현재 시각'이 아니라 '현재 시간'이라 말하는 언어 습관, 절기·띠·나이를 헤아리는 방식 등등, 은연중에 드러나는 시간에 대한 시각이 새삼스럽다. 시간을 순간이 아닌 지속으로 본다니... 삶이 여유로워지는 기분. 문득 ‘미미식 나이 소개’가 떠오르기도(천재아님?)!
2. 조 모란,《단어 옆에 서기》
이 땅 어딘가에 조씨 성을 가진 모란님도 있을 법한데. 알랭 드 보통을 닮은 영국 작가의 책이다. 문장 쓰기의 본질을 깊게 파고들어 새롭게 이야기한다. 고요한 선사에 앉아 독경 듣는 기분. '쇠귀에 경읽기' 되지 않도록 열심히 읽어보자.
3. 이진민, 《모든 단어에는 이야기가 있다》
‘독일어’라는 창으로 바라보는 또 다른 세계! 새로운 풍경이 넘쳐나지만('내던져진 존재들'), 익숙한 풍경은 한 발짝 더 들어가서 보여준다('아르바이트, 이렇게 슬픈 단어였어?'). 이 한 걸음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덧: 이진민 작가는 뉴필로소퍼에 수록된 철학자 인터뷰 편에서 알게 되었다. 인터뷰를 읽다 말고 바로 작가의 철학 에세이를 대여했다. 이번 호도 에세이도 모두 좋았다.
“어떤 선택이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리는 것 같아도, 그건 내 삶의 편집권을 가진 상태에서 어느 쪽에 초점을 두고 어느 쪽을 아웃포커싱 하는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는 대체로 시간이 지나서 그 방향으로 다시 갈 수 있어요.”
- 이진민, ‘내 삶의 편집권을 쥐고 있다면’, 《뉴필로소퍼》<vol.30: 내가 한 선택이 내가 된다>, p152
나는 처음에 이것을 "꽃은 피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러고 며칠 있다가 담배를 한 갑 피면서 고민고민 끝에 "꽃이 피었다"라고 고쳐놨어요. 그러면 "꽃은 피었다"와 "꽃이 피었다"는 어떻게 다른가.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입니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이죠.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입니다. (…) 나는 사실 만을 가지런히 챙기는 문장이 마음에 듭니다. 나는 이런 문장을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서 읽었습니다.”
- 김훈, 『바다의 기별』, p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