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케이 May 05. 2024

남미에서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쓰는 이유 (대항해시대)



지난 영상에서는 콜럼버스의 1차 항해와 그가 저질렀던 만행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 이전 포스팅 보러 가기


 이번에는 콜럼버스의 2차 항해와 그의 인간성을 알 수 있는 내용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콜럼버스의 1차 항해 이후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발견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1,500년).


 그리고는 남미를 두고 스페인과 경쟁이 격화되었는데요.


 1494년, 교황에 의해 구대륙의 끝이라 여겨지던 카보베르데 제도와 신대륙의 시작이라 여겨지던 히스파니올라 섬 (현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사이의  정가운데인 대서양 한가운데 선을 기준으로 서쪽은 스페인, 동쪽은 포르투갈에 귀속되도록 협의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도 브라질은 포르투갈 어를 쓰는 반면  나머지 남미 국가들은 스페인어를 쓰게 된 것입니다. 카보베르데 제도는 아프리카의 서쪽에 있는데, 교황이 지정해 준 선은 카보베르데 제도에서 서쪽으로 약 1,500km 정도입니다.


이후 콜럼버스는 1493년에 2차 항해를 떠납니다 그가 2차 항해를 떠날 수 있도록 지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1차 항해 이후 각종 거짓말을 했기 때문인데요,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 ‘그곳의 땅은 무한에 가깝게 기름지며 (중략) 향신료와 면화는 전하가 요구하는 만큼 얼마든지 있습니다’ 

# ‘각종 희귀한 산물들이 많이 날 뿐 아니라 금광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스페인 국왕은 포르투갈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고, 17척의 배와 1,500명의 선원 등 전폭적인 지원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2차 항해 때도 금을 쉽게 발견하지 못하자 또다시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토레스 보고서’이고 내용은 이렇습니다 


# 이 지역에는 후추나 육두구, 계피 같은 향신료가 많이 생산됩니다 

# 광산에 양질의 금이 훨씬 많이 산출되므로 광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당시 콜럼버스가 금을 찾지 못했던 이유는, 금은 원자번호가 79일 정도로 무거워서 땅 깊숙이 묻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재도 사금 채취로 금을 채취하는 곳이 많은데요.


이 방법은 9세기 전통적 금 채취방식으로 러시아 알타이 지역에서 한 명이 1년에 채취할 수 있던 양은 많으면 50g 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금을 발견하지 못한 채 귀국하게 되었고, 결국 3차 항해 지원을 요청했으나 제대로 된 지원을 받지 못해 선원이 부족해서 살인범 등 죄수까지 동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콜럼버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됩니다.


 To be Continued... (다음 포스팅 보러 가기 클릭!)

매거진의 이전글 대항해시대 2-콜럼버스가 서쪽으로 간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