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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Jan 05. 2023

두 번째 스무 살, 나 잘 살고 있니?

나이가 든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

  얼마 전 학과 창립 40주년 기념행사에 동문들을 초대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03학번이던 신입생 때 20주년 행사를 했으니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났다. 20주년 행사에 참석했던 고학번 선배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그렇게 나이가 많이 차이 나는 것도 아니었는데 결혼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왔던 그분들이 왜 그렇게 커 보였는지 모르겠다. 자세히 말하면 우리는 서로 속해 있는 세계가 달랐고, 나의 젊음과 그들의 젊음에는 차이가 있었다. 솔직히 서른이 훌쩍 넘은 그분들은 ‘선배’라기보다 아줌마 아저씨에 가까웠다. 그리고 내가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가 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논스톱 속 대학생들처럼 지내지는 못했지만 열심히 놀고 열심히 공부했다. 졸업했고 직업을 가졌다. 월급을 받았고, 금요일 밤마다 친구들과 단골 맥줏집에 모였다. 버스 노선만큼만 살던 세계에서 벗어나 난생처음 재산이라고 불릴만한 차도 다. 경제적 독립도 하고, 온전히 혼자 유용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 있어 좋았지만 계속되는 선택과 변화의 파도에 늘 마음 한구석은 불안했다. ‘나 잘하고 있는 거지?’ ‘잘살고 있는 거지?’ 반복해서 물으며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이십 대의 끝자락에 질문의 답을 찾았다.

  

  내가 찾은 답은 ‘결혼’이었다. 남편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미래가 그려졌다. 결혼을 선택한 순간 늘 흔들리는 것 같았던 불안이 씻기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보통’의 삶에 들어서는 듯한 느낌이 꽤 만족스러웠다. 하나의 반전이 있다면 결혼이라는 열차에는 정거장이 없다는 점이었다. 탑승한 순간부터 방향 전환 없이 하나의 선로만을 따라 내달렸다. 이 열차는 임신, 출산, 육아까지 최소 30년은 멈출 수도 내릴 수도 없이 내달리는 설국열차였다.


  아이 둘을 키우느라 꽤 오랫동안 직장을 쉬었다. 휴직하는 동안 동기들과 동료들은 앞서 나가 듯했고, 집에 있는 나는 도태되는 것 같았다. 과연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 게 맞는지 또다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양육의 가치가 포기한 나의 사회생활과 등가교환이 되는 건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감사하게도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복직하고 워킹맘으로 또 한참을 헤맸다.




  삼십 대가 되면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처럼 예쁜 구두를 신고, 명품 가방을 들고 커리어 우먼으로 살 줄 알았다. 내가 세상 변화시킬 줄 알았는데 변화는 그저 내 일신에만 있을 뿐이었다. 소비요정이면서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월급통장 하나 적금통장 하나뿐인 내가 재테크로 큰 부를 얻기는 어려웠고, 그래서 파이어족이 되는 꿈은 꿀 수조차 없었다. 소심한 데다가 별다른 자격이나 능력도 없어서 이직을 꾀할 수 있는 사람도 못된다. 토요일 오후가 되면 로또 명당 가게를 찾아 로또를 사보지만 토요일 밤 9시가 되면 다시 안분지족 하고는 한다. 일주일 뒤에 그만 잊어버리고 말지만.


  매번 그 나이는 처음이고, 새롭게 해내야 하는 역할이 생길 때마다 당황했지만 어찌어찌해냈다. 엄마로서는 잘 모르겠지만 사회인으로서는 레벨 업했다. 눈치가 생겼고, 맡겨지는 일이 많아질수록 업무 능력이 높아졌다. 여기저기서 헤헤거리고 ‘예스, 예스’하던 지난날과 달리 제법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기도 하다. 사람 보는 눈도 생겨서 인관관계에서 상처를 덜 받고, 오래가지 않을 인연에 연연하지 않는다.


  가진 것이 많아질수록 책임감이 커졌고, 나이가 들수록 선택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흐르는 세월에 절로 많아지는 숫자가 그저 어른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20년 동안 흔들린 것만 같은데 여기까지 온 나는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되고 있는 걸까?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질문을 하는 동안에도 오늘 하루만큼 늙었다는 것. 가만 보면 나이도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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