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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람 Feb 21. 2023

내가 어쩌다 이렇게 살고 있지? 바꿔보자. 우리 집!

  대학에서 한참 기숙사 생활을 했다. 네 명이서 같이 쓰는 방이었는데 그 방을 청소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평생 엄마 밑에서 엄마가 하는 것만 보고 자라온 나에게 '청소 = 걸레질'이었으므로 주말이면 어김없이 걸레를 들었다. 웬 새내기가 침대 밑까지 기어들어가 바닥을 닦고 있으니 선배들은 무슨 저런 애가 있나 처음에는 신기해했다. 여자 기숙사 다른 방에는 방바닥에 머리카락과 먼지가 엉켜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녀도 우리 방은 늘 깨끗했다. 다 쓴 걸레는 깨끗하게 빨아 라디에이터 위에 올려두었다. 20년 동안 엄마 무릎 아래서 자란 나였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친구 자취방에 놀러 갔을 때 비빔국수를 만든 적이 있었다. 오이를 채 썰고, 햄은 얇게 잘라 볶았다. 신김치는 종종 썰어 참기름과 설탕에 살짝 버무려두었다. 고추장, 설탕, 식초, 참기름, 깨소금으로 양념장을 만들었다. 잘 삶은 중면을 찬물에 바락바락 씻어 양푼에 담고 양념장을 넣어 비볐다. 그릇에 면을 담고 준비한 재료들을 가지런히 올렸다. 맨 위에는 반으로 가른 삶은 달걀을 얹어 마무리했다. 친구들 입이 떡 벌어졌다.


  "너 어떻게 이런 거 할 줄 알아?"

  

  글쎄. 내가 왜 이걸 할 줄 알지?




  "수람아, 가스불 약하게"

  "수람아, 방충망 닫고 와라"

  "수람아, 현관 문단속 확인"

  "수람아, 빨래  다됐다. 수건부터 앞쪽으로 널어라"

  "수람아, 시금치 한 단 사와라. 길쭉한 거 말고 노지 거"


  엄마는 내 이름을 참 많이 불렀다.


  여섯 살이나 되었을까. 셋방살이하던 시절의 단칸방은 불문으로 연탄불을 조절해야 했다. 엄마는 나에게 "수람아, 가서 구멍 세 개만 열어놓고 와라" 했고, 방이 절절 끓으면 수람아 "구멍 반 개만 열어 놓고 와라"했다. 세 살 터울의 동생 수발도 들었다. 동생이 쉬가 마려우면 큼지막한 쉬 통을 받쳐 쉬를 받아내고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게 휴지로 마무리했다. 엄마가 골드스타 마우병에 보리차를 끓여놓으면 푸쉭푸쉭 눌러 스스로 따라 마셨다. 입만 댄 물컵은 물로 헹궈 찬장에 엎어두었다.


 아파트로 이사를 오고 나서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엄마가 없을 때는 쌀을 씻어놓으라면서 쌀 씻는 법과 쌀뜨물 받는 법을 알려주었다. "처음 씻은 물은 버리고, 두 번째 씻은 물을 받아" 알려줬다. 그다음 날부터 "쌀뜨물 받아놓아라" 하면 배운 대로 두 번째 쌀 씻은 물을 받아 놓았다.


  어떻게 그런 걸 다 할 줄 아냐는 친구들 물음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냥 하게 되었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단연코 모든 것을 다 해주지 않았다. 하는 방법을 가르쳐줬고, 배우면 어떤 것들은 그냥 내게 맡겼다. 엄마가 하는 모든 것이 나의 생활 방식이 되었고,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안에 옳고 그름은 없었다. 커서는 너무 하기 싫었고, 지겨웠고, 나중에 나를 부르면 '아 또 왜'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지만.




  지금 나는 시골 오래된 주택에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신혼 때는 엄마의 방식 그대로 살았다. 씻고, 닦고, 삶는 것의 반복이었다. 살림은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효율적인 법이라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점점 많아졌고 그 와중에 가족도 늘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날수록 꼭 엄마처럼 하지 않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나는 본래 청결의 역치가 매우 낮은 사람이었고, 사실 그렇게 부지런하지도 않았다. 난장판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무질서 속에 나름의 질서가 있었만 요즘은 그 질서도 큰 의미가 없어 보이는 지경이다.

 

  이제 나의 세상에서 두 아이가 자란다. 요즘 아이들의 생활 습관이 엉망이라는 생각이 들어 남편과 이야기를 했다. 문제의 원인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그 끝에 우리 부부가 있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육아서를 읽다 보면 아이들이 책을 읽게 하려면 부모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책 읽는 모습을 보여주라는데 실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노력하고 꾸며낸 모습보다 우리의 일상 자체를 제대로 꾸려나가야 함을 깨달았다. 부모의 생활 방식은 아이들에게 그대로 대물림되니까.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 보는 데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선풍기를 발로 톡 끄는 모습. 의자에 외투를 걸어두는 모습. 신발 정리 안 하고 뛰어들어가는 것까지. 누구 탓을 할 필요도 없다. 더 늦기 전에 우리 집의 문화를 바꿔보려고 한다. 꽤 장기 프로젝트가 될 것 같다. 기본이지만 일한다는 핑계로 뒤로 미뤄두었던 일을 해보겠다는 다짐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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