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것들은 나에게 오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예전에는 끌어당김의 법칙이라고 약간 샤머니즘같은 마음의 어떠한 것들을 좋아해서 많은 것들을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끌고 당기고 자유자재로 했다. 하지만 이젠 안 한다.
안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것들에 만족하면 알아서 많은 것들이 끌어당겨진다. 그래서 내가 그걸 할 필요가 없어졌다. 대신에 많은 떠나가는 것들 또한 받아들이고 감내해야 한다.
나는 아픔을 직시하는 사람이 되고싶다. 마냥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것도 참 좋고 좋아보이지만, 나는 사실 인생이 마냥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언젠간 내가 눈물짓는 날이 있을 수도 있고 너무 행복해서 날아오르는 날도 있을 것이다.
인간이 주름이 지고 언젠간 늙어 죽을 날이 있다는 사실 또한 안다. 하지만 나는 그래도 사랑하고 사랑받고 살고 싶다. 결국엔 사랑한다는 건 누군가를 이해하는 행위와도 비슷하고,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행위는 그 사람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본다는 것일 수도 있다. 그 행위는 고결하고 감사한 것이다. 나는 요즘에 많은 사람들이 이해가 되는데 그 행위 자체가 감사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의 아픔을 알게되면 더 이상 무엇도 밉지가 않아지기 때문이다.
요즘엔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하는데, 내가 무언갈 목표로 해서 이루고 싶다면 이젠 그 끝을 보지 않고 그 시작을 본다. 그 시작에는 아주 작은 행위가 남겨져 있는데, 아주 작은 것들에 정성을 들이면 삶은 그 정성에 언제든 보답한다. 나는 그래서 아주 작은 것들을 제일 소중히 한다. 그것이 쌓이면 큰 것이 되는 것이고 그걸 아는 사람만이 현명한 사람일 것이다.
집 앞에 카페가 망했다. 보자마자 슬펐지만 사실 그럴 것 같았다.
그 카페의 가장 좋은 점은 아주 코딱지 만하다는 사실이었다. 그 코딱지 만한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게 그 카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그러다가 장사가 잘 되었는지 확장이전을 했는데, 궁금해서 그 곳에 가봤는데 예전의 오순도순한 느낌도 없었고 실은 커피 맛이 다른 곳과 차별될 정도로 맛있지도 않았다. 그 작은 것이 그 카페의 명물이었는데 그것이 사라져서 생각보다 더 빨리 망한 것이었다. 그래서 간혹 확장이전을 하지 말고 지점을 여러개 두어서 여러 사업체로 만들라는 것이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말이기도 하다.
나는 그래서 당장 나에게 이득일 것 같은 아주 금은보화의 것들을 요즘 많이 거절중이다.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이득일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신기루 같은 것들 말이다. 그걸 거절하려면 인간 자체에 욕심이 없어야 하고, 욕심이 없으려면 지금 지닌 것들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야 하며, 지금 가진 것들이 충분하려면 더 벌려는 욕심을 부리지 않고 본인의 형편에 맞추어 관리를 잘 하는 측면으로 생활을 바꾸어야 하며, 관리를 잘 하려면 지금 이 순간과 아주 작은 돈 하나에도 감사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소중히 대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더 좋은 것들이 다가오지만 동시에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욕심부리지도 않는다.
나는 여전히 생각보다 안정감있고 감사하다.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지금 가진 것들에 집중하며,
내가 언젠간 죽을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니 사라지는 것에 너무 슬퍼하지 않고 그렇다고 억누르지도 않으며
누군가가 나를 고용해서 외주를 할 때
그 사람이 나에게 돈을 통해 바라는 필요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
내가 누군가의 한 측면을 이해할 수도 있는 사실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게
참 느낌이 묘하다. 그 사람의 한 측면을 안다는 게
어쩌면 그 사람 인생의 역사를 내가 잠깐 방문해서 보듬어주다가 나가는 느낌이라서
그 느낌이 묘하게 인간이라는 것 자체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떠나간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다. 적절한 타이밍에 내 곁을 떠나주어서 더 좋은 것들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삶은 덧없이 변화한다. 내가 잡고 있을 수 있는 건 사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는 나 스스로 한 삶의 약속들을 지키려는 행위와도 마찬가지인데,
그것은 누군가의 것들을 따라하는 게 아니라 나의 소명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