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도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아내는 쇼핑을 좋아한다. 쇼핑의 무엇이 그리도 좋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일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대화를 아내와 나누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한번 정리를 해보기로 했다.
쇼핑은 일이다. 그래서 재밌다. 일과 마찬가지로 목표가 정해져 있다. 시간과 비용도 한정되어 있다. 철저한 사전조사와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거친다. 구매 후에는 피드백 과정을 통해서 금번 프로젝트(?)에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도 파악한다.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규명해 보고, 다음에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복기해 본다. 만약, 성공적인 쇼핑이었다면 만족감은 더할 나위 없다. 나에게 필요한 것, 내 지인에게 필요한 것,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안겨다 준다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만족감이다. 게다가 주변의 칭찬과 인정이 있다면 만족감은 극에 달한다.
다만, 쇼핑은 ‘골디락스 업무’라는 점이 회사 일과 다른 점이다. 회사 일에서 업무 난이도의 한계는 내가 정할 수 없다. 상사가 정한다. 때로는 역량을 벗어나는 수준의 일이 맡겨질 때도 있다.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지만, 본인 뜻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쇼핑은 그렇지 않다. 부담스러운 의사결정이라는 판단이 들면 쇼핑을 포기할 수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도 있으며, 자문을 쉽게 구할 수도 있다.
*골디락스 업무 : 숲 속에서 길을 잃은 금발머리 소녀는 숲 속에서 길을 잃는다. 헤매다가 우연히 빈집을 발견했고, 그곳에는 크기가 각기 다른 의자와 침대, 다양한 온도의 수프가 있다. 골디락스는 그중 자신에게 꼭 맞는 의자와 침대, 수프를 택해서 편안히 그 집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나오게 된다는 영국의 동화 이야기다. 골디락스 업무란 이처럼 자신의 역량에 꼭 맞는 업무를 말한다. 너무 쉽지도 않고, 너무 버겁지도 않아서 재밌는 업무 말이다.
너무 어렵지도 않고, 너무 쉽지도 않은 일. 오롯이 나를 위한 일. 그것이 바로 쇼핑이다. 그래서, 쇼핑은 재밌다. 일이어서 재밌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가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서 결과물을 얻는다. 좋지 않은 결과가 주어진다고 해도 비난이나 질책을 받을 리는 없다. (본인만 속상하면 되니깐 -_-;;)
회사 일도 이렇게 할 순 없을까? 비록 힘들겠지만, 상사가 업무를 지시할 땐, 내가 해야 할 일을 정하는 행위를 누군가 대신 선정해 주는 수고를 해준 것이라 생각해 볼순 없을까. 고민하고 고민해서 앞으로 어떻게 일을 추진해 가야 할지 주도적으로 추진해 가려고 노력하면 달라지지 않을까? 만약, 결과물에 대해 비난이나 질책이 있게 되면, ‘아, 다음번 업무(쇼핑)에선 똑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며 다음번에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반성의 시간을 가져보면 힘든 느낌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을까?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고, 하고 나면 보람도 있고, 보수도 받을 수 있는 게 회사 일이다. 괴롭다고만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는 법. 그런 이유로, 어떻게 하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덜 괴롭게, 좀 더 재밌게 할 수 있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 p.s : 만약 내가 정말 어려운, 큰돈이 걸려있어서 실패하면 큰일이 날지도 모르는, 그런 쇼핑을 매일같이 하고 있다는 것을, 쇼핑을 잘못하면 크게 혼날 수도 있는 (예를 들면, 어버이날 시어머니 선물 고르기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면 아내가 나의 회사 생활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된다.
- p.s (2) : 글을 쓰다 보니 궁금증이 더해진다. 이와 같은 일과 쇼핑의 공통점에 비춰보면 남녀를 불문하고 쇼핑은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물론, 적당한 난이도의 의사결정을 수반해야 하겠지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여자보다 쇼핑을 즐기진 않는다. 여기엔 또 어떤 차이가 작용하고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