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직장생활은 그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한 번은 해봐야 하지 않겠나?' 라고 말을 하고, 그런 책들과 그런 말을 하는 강연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하다 보면 14년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어떤 이들에겐 지루하고, 판에 박혀 보이진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을 느낄 때도 있다.
어느 심리학 법칙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의 첫 선택이 옳다고 믿고 싶어하며, 끝까지 그 선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내겐 직장생활이 그렇다. 비록 여느 사람들과 비슷한 길을 간다는 불안감이 있다하더라도 내 선택이 틀렸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누가 뭐라해도 내 회사 생활은 남들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같은 월급쟁이 주제에 뭐가 그렇게 다를 수 있다고?' 라고 비웃을 테지만 나는 일에 대한 디테일이 그런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늘상 해오던 일이지만 (내 일의 결과물에 대한) 고객들이 원하는 것을 더 깊이 고민해 보고, 그들이 불편하게 생각해 오던 것, 그들조차도 '아,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 수준까지 일을 처리하는 디테일 말이다.
요즘 '도쿄의 디테일'이란 책을 읽고 있다. 저자인 '생각노트(필명)' 는 도쿄 여행길의 첫 단계에서부터 디테일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다. 첫번째 이야기는 도쿄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비행기 안에서 그는 한 번도 집중해서 듣지 않던 '항공기 기내안전수칙' 방송에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 그것이 늘상 보아오던 승무원들의 무미 건조한 시범이 아니라, 네이버 웹툰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애니메이션 영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오렌지 마말레이드>, <마음의 소리>, <하나의 하루>의 주인공들이 등장해 기내안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생각노트' 는 저가 항공사의 차별화 전략이 이러한 디테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생각노트'는 도쿄 시내로 진입하는 열차 '도쿄 익스프레스' 에서 또 하나의 디테일을 발견한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라면 특히 더 염려스러운 것이 바로 '내가 지금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열차를 제대로 타고 있는 것인지' 이다. 그런데, 도쿄 익스프레스 열차는 디스플레이 화면을 통해 여행객이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정차하는지를 포함해서, 지금 위치는 어디인지에 대한 'You are here' 란 표시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이 또한 고객이 미처 기대해 보지 않았던 디테일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그는 소개한다.
비슷한 공간, 비슷한 조직문화, 비슷한 일을 하는 직장인들에게도 디테일은 너무나 중요한 것 같다. 비록 비슷한 일이지만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고, 그것을 보여줄 수 있는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한 직장생활이라면 더욱 그렇다. 대개 일이 편해지고 익숙해 질수록 '내가 해봐서 아는데' 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래왔던 것 같다. 적당한 수준에서, 기존에 해왔던 선에서 일을 마무리 해버렸던 것 같다. 여지껏 해왔던 일들을 되돌아보니 '왜 그게 그렇게 밖에 안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무수히도 많은 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선대인 경제연구소 소장 선대인은 그의 책(일의 미래 :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오는가)에서 우리가 약자의 전략의 중요성에 집중하고, 어떻게 약자로서의 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이든 개인이든지간에 말이다. 기존에 시장이 포화상태이기 이전엔 없던 것을 만들어 내고, 규모를 키워 흥하던 강자의 전략이 통하던 시대라면 지금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약자의 전략은 쉽게 말하자면 차별화 전략이다. 이미 판이 깔린 상태에서 그 판을 지배하는 자들이 주지 못하는 가치를 찾아내는 전략 말이다.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디테일'이 필요하다. 쉽게 지나쳐 왔던 것들의 더 깊숙한 속으로 들어가 차이를 만들어내는 디테일 말이다.
그렇기에 직장 생활에서의 디테일이란 그저 '나는 남들과 달라' 라는 자기 만족감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직장인으로서 차별화 전략이다. 직장 안에서 차별화된 회사원이 되도록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디테일의 수준이 임계점을 넘어섰을 때, 실행력이 그에 더해 진다면, 남들이 한 번도 시도해 보지 못했던 스타트업의 단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