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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라 Sep 12. 2016

대보름 맞이 ‘사탕수수 주스'

외국인 노동자의 명절증후군 달래기

추석이 성큼 다가왔다. 사자를 쫓아다니면서부터는 한 번도 명절에 한국을 가본 적이 없다. 처음엔 어른들 잔소리도 없고 새벽같이 성묘를 가지 않아도 되니 좋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명절만 되면 마음이 허해지는 것 같다. 설날은 나이도 먹고 새해 목표도 세우니까 명절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는데 추석은 정말 아무 느낌이 안 난다. 괜히 추석 특선영화는 뭘 하나, 날씨는 어떤가 인터넷 기사를 클릭해보지만, 그러다 보면 왠지 소외되는 느낌도 들어 마음이 더 헛헛하다.



싱숭생숭한 기분을 떨칠 겸 '피피스(fifi’s)’ 카페를 찾았다. 피피스 카페는 아루샤에서 가장 한국 카페랑 비슷하다. 시내 중심에 있고 온갖 베이커리류가 가득하며 테이블도 많다. 반은 카페이고 반은 음식점이라 카페 바로 앞 찻길을 달리는 차 소리와 그릇 부딪히는 소리 등이 복합적으로 울려 시끌벅적한 한국 카페에 있는 느낌이다. 


'Sugar cane juice Tshs.2500.' 앗, 바뀌는 것 정말 없는 아루샤에서 신메뉴라니! 테이블 위의 광고종이를 보고 웨이터가 메뉴를 주기도 전에 '사탕수수 주스' 달라고 외쳤다. 사탕수수 나무는 먹어본 적 있는데 주스도 같은 맛일까. 사탕수수 나무는 얇은 대나무처럼 생겼는데, 아루샤엔 사탕수수 나무를 싣고 다니는 리어카가 있다. 껍질을 깎고 속살을 깍두기 모양으로 잘라 판다. 전혀 씹을 수 있을 거 같지 않게 생겼지만, 입안에 넣고 야금야금 씹으면 조금씩 즙이 배어 나온다. 단물이 다 빠지면 최대한 불량스럽게 퉤엣-퉤- 하고 뱉는 게 매력인 간식이다. 질겅질겅 열심히 씹어야 하는 수고에 비해 단물이 너무 조금 빠지는 게 항상 아쉬웠는데 주스면 한 번에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으니 기대가 된다.



역시 피피스는 한국처럼 빠르다. 10분도 안되어 주스가 나왔다. 기다란 유리잔에 담긴 꿀색의 음료. 거기에 패스트푸드점에서나 볼 수 있는 빨대를 꽂아 소박한 생김새가 더 강화됐다. 주스는 먹어본 적 없는데 괜찮을까? 약간 걱정을 하며 한 모금을 마셨다. 으잉? 낯선 음료수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맛! 그것도 엄청 토속적인 맛... 사탕수수 주스에서는 ‘식혜 맛'이 난다. 그것도 비락식혜 같이 어디서나 파는 하얀 식혜가 아닌 외할머니가 직접 고아주신 노란빛이 살짝 도는 전통 식혜의 맛이다. 어릴 적 강원도 철원 외가에 가면 외할머니께서 항상 ‘감주’를 주셨다. 커다란 가마솥 하나 가득 끊여내 항아리에 담아두셨는데 삼시 세 끼마다 후식으로 마시고, 간식으로도 마시고, 계속 마셔도 줄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너무 단 걸 먹으면 목이 따갑고 입안도 텁텁하기 마련인데, 마지막에 살짝 후르츠 칵테일 같은 과일맛이 감돌아 입안이 산뜻하게 마무리된다. 조청 같이 달디 단 맛인데도 개운한 끝 맛에 주스가 연달아 쭉쭉 넘어간다. 아마 조청을 이만큼이나 마시라고 하면 절대 못 마실 거다. 


추석을 앞두고 식혜 맛도 봤으니 마음에 위로가 되어야 할 텐데. 같이 먹던 송편도 생각나고 고기산적도 생각나고… 이상하게 마음도 배도 더 허해지는 건 왜일까.



커버 이미지 : 피피스 카페 @2015

작은 사진 1 : 그날 그날 다르지만 베이커리류가 다른 카페보다 많은 피피스. @2016

작은 사진 2 : 피피스의 빼곡한 테이블이 한국스럽다. @2016

작은 사진 3 : 피피스는 기념품 코너를 중심으로 카페와 음식점으로 나뉘어져있다. @2016

작은 사진 4 : 여러 잡곡과 씨앗을 넣어 만들어 더 맛있는 피피스의 빵. @2016

사진5 : 꿀색 사탕수수 주스와 테이블마다 놓인 신메뉴를 홍보 종이.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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