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라 Aug 16. 2016

치타의 독박 육아

치타는 고독하다. 시속 120km로 달릴 때도. 새끼를 키울 때도.

매혹적으로 움직이는 꼬리, 반질반질 윤이 나는 털, 날렵한 곡선을 그리는 어깨 근육. 런웨이 모델처럼 걸어온 치타가 나무를 향해 누군가를 부른다. "꺙! 꺙!" 삐죽삐죽 제멋대로 뻗은 나뭇가지 속에서 작고 검은 동물이 부시럭거린다. 새끼 치타 한 마리가 나온다. 아직 정수리부터 뒷목까지 긴 털이 남아있는 ‘베컴 헤어’인걸 보니 태어난 지 1년도 안된 것 같다. 새끼 치타들은 갓 태어났을 땐 털도 까맣고 길어서 치타 새끼가 아닌 몽구스 새끼 같아 보인다. 점점 자라면서 긴 털도 없어지고 무늬가 넓어지면서 못생김을 벗고 비로소 치타가 된다.


못생긴 새끼 치타 한 마리가 쫄래쫄래 엄마를 따라 초원으로 향한다. 나무에 남은 새끼 치타가 "꺙" 하고 더 놀자고 부르자, 부리나케 달려가 다시 나무를 타며 논다. 엄마 치타는 나무에 가서 새끼를 부르고, 이번엔 두 마리가 다 따라 나오다가 둘 다 나무로 도망친다. 오고 가기를 수차례... 어두워지기 전에 더 안전한 장소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엄마 치타는 속이 탄다.





치타는 혼자 사는 동물이다. 일 년 반이 되면 독립을 하고 짝찟기할때만 잠시 둘이 지낸다. 암컷은 임신을 하면 바로 수컷을 떠나 혼자 새끼를 낳는다. 태교여행도 산후조리원도 없는 이 거친 야생의 세계에서 치타의 독박 육아를 보면 정말 안쓰럽기 짝이 없다. 시도 때도 없이 젖 달라 보채는 새끼들 때문에 엄마는 갈비뼈가 다 보이도록 홀쭉해졌는데, 사냥을 나갈라 치면 새끼들이 신나서 졸졸졸 따라나간다. 부비고 달려들고, 온갖 귀여운 짓을 하며 끼웅끼웅 소리를 낸다. "우리 엄마 치타야! 너를 물 거야" 동네방네 알리는 프로 훼방꾼이다.

따라 나오는 새끼 한 마리를 물고 덤불에 넣어 놓고 돌아서면 다른 한 마리가 이미 저 앞에 나가 있고, 다시 잡으러 가면 다른 한 마리가 또 같이 따라 나오고...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다.


겨우 새끼를 덤불 속에 넣어두고 톰슨가젤을 잡아왔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난 엄마 치타는 새액새액 가쁜 숨을 쉬는데, 새끼들은 앞다퉈 나와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여기도 물어보고 저기도 물어보고 엄마는 안중에도 없다. 새끼들의 이빨은 아직 강하지 않아 가죽도 못 뜯는다. 살을 씹지도 못한다. 내장을 겨우 먹을 수 있을 뿐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이유식’ 기간이다. 안 그래도 힘든데 빨리 뜯어달라고 보채는 새끼들. 사냥 전에도 사냥 후에도 엄마 치타는 고달프다. 빨리 고기 맛을 알아야 사냥갈때라도 엄마 말을 들을 텐데.




엄마 바라기인 새끼 치타들을 물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따라다니다 보니 하루가 다 갔다. 치타의 푸석푸석 해진 얼굴, 치타의 트레이드마크인 눈물자국이 다크서클처럼 보인다. 일 년 반이나 엄마 속도 모르는 애들을 혼자 키워야 한다. 우리 엄마는 어떻게 날 20년 넘게 키운 걸까. 내일은 서울에 전화 한 통 해야지.



커버이미지 : 타랑기레 치타 @2014

사진 1 : 응고롱고로 마쉬 은도고 지역 @2016

사진 2 : 치타와 새끼 치타 @2014


매거진의 이전글 잠자는 사자의 비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