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라 Aug 19. 2016

세렝게티 힙스터, 기린에 대하여

진정한 힙스터는 자신이 힙스터인지 모른다

기린은 아무 풀이나 먹지 않는다. 아카시아 나무만 먹는다. 힙스터의 기본은 채식이다. 그중에서 달걀도 안 먹고 생선도 안 먹는 ‘비건'은 그 정점이라 할 수 있겠다. 기린이 먹는 아카시아 나무는 푸른 풀에 길쭉한 가시가 삐죽삐죽 돋아있다. 힙스터를 따라가려면 맛없는 케일을 필수로 넣고 스무디를 갈아먹어야 하는 것처럼, 기린처럼 아카시아 나뭇잎을 먹는 것엔 고통이 따른다. 아카시아 나무의 가시는 타이어도 뚫어버릴 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낙담은 말자. 아카시아 나무의 가장 위, 이슬만 먹고자란 새순을 만져 보면 가시가 손으로 구부러 질만큼 야들야들하다. 기린이 나무에 풀이 남아도 떠났던 이유는 분명 이것이다. 야들야들한 것만 먹고 떠난다. 힙스터들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가서 요즘 제일 맛있는 걸 먹는다. 


기린은 기린이다. 특별한 것이 없는 특별함, 기린은 그냥 서 있어도 힙스럽다. 아무런 포즈를 취하지 않는, 태어날 때부터 거기 서 있었던 듯, 그런 자연스럽고 당당한 에티튜드는 기린을 빼고 말할 수가 없다. 매번 무표정한 얼굴도 단연 힙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풍성한 속눈썹이 달린 커다란 눈을 한번 꿈뻑, 턱관절을 시계방향으로 한번 크게 돌려 남은 풀을 씹는다. 이런 힙스러움은 기린이 달릴 때도 마찬가지다. 사자에 놀라 도망칠 때조차, 원래 뛰려고 했었던 양 기다란 다리와 더 기다란 목이 우아하게 움직인다.


힙스터 기린이 인스타그램을 하면 이런걸 올리지 않을까


기린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아프리카에 있는 마사이 기린은 독특한 무늬를 자랑한다. 옛날 향수를 자극하는 쨍한 노란색 바탕에 끝이 자연스럽게 갈라진 초콜릿 브라운 컬러의 패턴. 다른 기린들이 매끈한 테두리를 입을 때 마사이 기린은 후줄근 하지만 자유로운 패션을 고수했다. 후줄근하다고 해서 위생에 관심 없는 건 아니다. 기린의 몸은 정말 매끈하고 깨끗하다. 사자나 코끼리들은 가죽의 주름이나 상처 자국으로 나이를 가늠할 수 있지만, 기린은 정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동안’ 동물로 꼽힌다. 항상 새가 몸의 벌레를 잡아주고, 싸워도 다른 동물처럼 발톱으로 긁거나 이빨로 물지 않는다. 카페테라스에서 마주친 힙스터들이 서로를 고요히 스캔하듯, 기린은 목으로 부딪히거나 감싸서 밀어 버리는 것이 싸움의 전부다.




초원에 있다 보면 동물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우아하고 조용하다고만 생각했던 기린이 힙스터로 보인 것이 그 시작이었다. 동물에 대한 내 마음이 달라지고, 광활한 초원에서 내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 생기고, 어제와 다른 초원이 눈에 들어올 때, 세렝게티 초원은 내 것이 된다.



커버 이미지 : 힙스터 기린 @2015

큰 사진 : 기린이 인스타그램을 한다면 올릴듯한 사진 @2015

작은 사진 1 : 목으로 싸우는 기린들 @2016

작은 사진 2 : 기린이 인스타그램을 한다면 올릴듯한 사진 @2015

작은 사진 3 : 왠지 모르게 힙한 기린 칫솔 @2016


매거진의 이전글 치타의 독박 육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