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유 Mar 05. 2023

좋아해도 괜찮아

가해자를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기

나와 오빠는 바쁜 엄마아빠에 의해 자주 제주도 이모집에 맡겨졌는데, 6살이었던 나와 8살이었던 오빠 둘이서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날아가곤 했다. 나는 한 손에는 인형을, 한 손은 오빠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그 온기에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그때의 오빠는 어떤 마음이었을지,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두려웠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부담스러웠을까? 아마 내가 부담감을 주었을 것 같다. 귀찮았을까? 그것도 맞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오빠의 손과 친절했던 승무원의 모습만이 기억난다. 그들을 따라서 공항으로 나섰을 때 마중나와 있던 이모의 얼굴도. 이모는 찡찡거리는 나를 먼저 안았을 것이다. 그리고 오빠는 이모를 통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딸래미 좀 강하게 키워라!” 그때 오빠는 8살이었고, 온 힘을 다해 센척을 했을 것이다. 사실은 뒤에서 안도의 눈물 찔끔 흘렸을지도.

이모네 집에는 사촌오빠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무려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오빠의 눈에 고학년이었던 사촌오빠가 어떻게 보였을지 상상이 된다. 오빠는 그를 무척 잘 따랐다. 나를 빼놓고 그와 노는 것을 좋아했다. 아마 자신보다 더 나이가 많은 형이 무척 반가웠을지 모르겠다. 나는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였지만 어쨌든 막내였으므로 이모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다. 오빠는 사이에 끼여서 나름의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다. 형에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기. 그는 나를 따돌리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듯 했다. 그때만 겨우 맏이 노릇을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내가 10살이 되고 오빠가 12살이 되었을 때 우리는 아빠와 함께 필리핀에서 두 달동안 살았다. 주중에는 영어 공부를 위해 학교를 다녔고 주말에는 아빠를 따라 이리저리 여행을 다녔다. 하루는 만원인 지하철을 타고 어딘가로 가는 중이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하철 안에서 아빠와 떨어지게 되었고 아빠는 사람들에 떠밀려 열차에서 내려지게 되었다. 나는 그때도 오빠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오빠도 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기억이 미화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런 기억이 남아있다. 오빠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다. 오빠는 내 손을 더 꽉 잡았고 내게 말했다.


“괜찮아. 다음 역에 내려서 기다리면 아빠가 다음 열차를 타고 올거야. 그럼 거기서 아빠를 만나면 돼. 그냥 아빠가 내린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면 돼.”


우리는 지갑도, 여권도, 아무것도 없고 영어도 할 줄 모르는 상태였다. 오빠는 분명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빠를 믿었다. 우리는 다음 역에 내렸고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나는 초조해서 손과 다리를 달달달 떨었는데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플랫폼만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다음 열차가 도착하고 멈추자 아빠가 언뜻 보였다. 아빠는 열차에서 급하게 내렸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그제서야 나는 오빠의 손을 놓고 아빠에게 안겨 쪼잘쪼잘 얼마나 무서웠는지 떠들어댔다. 오빠가 그 뒤에서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나는 보지 못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까? 내가 놓아버린 손이 아쉽지는 않았을까? 손을 계속 잡고 있어야 했을까? 그는 12살이었다.


아빠는 늘 자신이 ROTC출신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러니까, 한 때는 군인 장교였던 시절이 있었고 그 시간은 그의 폭력성을 한껏 끌어내기에 충분했던 것 같다. 그때는 훈육이라는 이름 하에 폭력이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맞았는데 특히나 오빠가 자주 맞았다. 오빠는 왜 그렇게 자주 맞았던 걸까? 그 기억은 내게 없다. 그의 기억 안에만 남아있을 것이다. 그때부터 오빠는 나를 조금씩 미워했던 것 같다.

그는 자주 말했다. “아빠는 너만 좋아해.” “내가 너였으면 인생 진짜 편하게 살았다.”


그치만 인생을 편하게 살지는 못했다. 세상이 그리 다정한 곳은 아니었으므로. 우울했고, 불행했고, 매일 밤마다 눈이 뜨지 않기를 기도하며 잠드는 아이로 오랫동안 살았다. 하지만 나는 글을 읽었고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이 되었다. 글을 쓰면서 생을 견디고 견뎌서 드디어 어른이 되어 생의 한 단계를 겨우 넘어왔다. 하지만 내 불행이었던 나의 친형제는 그곳에서 벗어나왔을까? 언젠가 봤던 타로에서 그는 내게 배신감을 느낀다고 했다. 자신을 놔두고 나혼자만 가버렸다고.


이제 그와 나는 방향이 달라서 그가 어디를 걷고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때 손을 꼭 잡고 서로만을 의지하던 날들도 있었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날도 함께 기억한다. 그리고 계속 걷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악몽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