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두리로 밀려나는 삶
올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꼽아보면, 꼭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합격자 발표일에 컴퓨터를 켜고 끝내 찾을 수 없는 나의 합격번호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왜, 나의 번호가 보이지 않는거지? 보고, 또 보고, 그래도 믿을 수 없어 옆지기를 불러 내 번호가 보이지 않는 게 맞는지 확인했던 시간들... 이 날을 기다리는 동안, 만일 여기에 붙으면 출근은 어떻게 할지,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지 옆지기와 나눴던 숱한 이야기들이 바람결에 흩어지는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고야 마는 그 순간을...
첫 시작은 올 봄이었다. 한 때는 회사의 선임이었던 그로부터 다짜고짜 전화가 왔다. "곧 00에 자리가 날 건데, 한 번 넣어봐요. 지자체 영상도 많이 만들어 보고, 또 시장 따라다니며 촬영도 많이 해본 종구씨가 딱 적임자야" 한창 내 사업을 키워보고 싶은 청운의 꿈에 가득 부풀어있던 당시의 내 귀엔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한 때는 내가 믿고 따랐던 선임의 말을 대놓고 거절할 수 없어서 지원서를 냈다. "지원서 처음 내보셨어요?" 서류를 제출하러 간 자리에서 서류를 받아본 담당자의 첫 질문부터, 여러 명의 면접관들이 나의 신상을 캐묻는 면접자리까지,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보면 정말 낯 부끄러운 상황들이 많았다. 내가 이런 자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말 모르고 살았다는 걸 너무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다. 결과는 뻔했다. 합격자란에 내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떨어지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사실 지원서와 면접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거지, 그 역할에 대한 이해와 기량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지원하는 자리의 sns채널을 미리 살펴보고, 맞춤형으로 준비를 했고, 첨삭지도도 받았다.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아니, 하나 다르긴 했다. 합격자 아래에 '예비합격자 1번'으로 내 번호가 적혀져 있기는 했다. 그 뒤로도 지원하는 족족 떨어졌다. 면접일정과 촬영일정이 겹칠 땐 촬영을 다른 이에게 맡겨서라도 갔는데, 그 자리도 떨어진 걸 확인하고선, 아이씨, 그럴거면 그때 촬영이나 나갈껄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더 보았던 '예비합격자 1번'은 이제 아무런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불러주지 않을꺼면서, 왜 예비합격자에 넣어서 사람을 더 감질나게 하는지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면접 자리에 갈 때마다 느껴지는 삼엄한 기운은 매번 적응하기 어려웠다. 나를 포함해 하나같이 까만양복에 흰 와이셔츠, 넥타이까지 곱게 차려입었음에도 한껏 긴장된 몸짓까지는 감추지 못했던 그들. 애써 모른척 하지만 서로를 힐끗거리며, 서로의 능력치를 스캔하는 눈빛들. 첫 만남부터 면접실을 떠나는 순간까지 서로에게 목례조차 하지 않는 차가운 순간들. 이 곳에 모인 사람들 중 단 한 명만 통과할 수 있다는 규칙 하나가 이렇게나 우리들을 냉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걸, 나는 이제야 몸으로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올 봄부터 가을까지, 지원한 모든 곳에서 떨어졌음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 시간을 통해 내 자신이 생각했던 것 만큼, 내가 그렇게 쓸모있고, 유능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담담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한 때는 정말 반짝거렸고, 남들과 같은 삶을 살지 않겠노라 떵떵거렸으며, 또 나름 내가 뜻한대로 걸음을 옮겼던 적도 있었지만, 어쩌면 남들이 다 겪어온 고개를 애써 외면하여 돌아갔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기도 했다. 마흔이 다되어서야, 내가 가진 능력이 보잘것없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다니.
덕분에 나는 한정된 나의 재주를 가지고 나의 욕망을 채우는 삶에서, 여전히 남아있는 한 줌의 기회를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의 삶을 보듬어가는데 쓰겠다 다짐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 변두리로 자꾸 밀려나는 경험을 통해 내가 배운 소중한 자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