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
사실 영화에 큰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영상을 만들어 밥벌이를 하면서도, 영화에 대해 관심이 없는 날 보고 내게 처음 영상일을 가르쳐주었던 형은 몇 번이나 거듭 말했다. "넌 도대체 영상이 왜 좋아?" 영상에 대한 아름다움과, 영상을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의 파급력에 대해 누구보다 공감하면서도, 그 모든 것을 결정체인 영화에 대해 이토록 무심하다니, 난 도대체 왜 이걸 하고 있는지 모르겠더라.
또 혼인한 후로 옆지기와 함께 영화관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어제 옆지기에 물어보니, 연애할 때 영화를 본 적이 있다고 하는데, 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아... 정말 나는 구제불능인가. 도무지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영화를 추천할만한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확인했다.
그렇다고 영화를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저 2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가만히 앉아서 영상을 시청할만큼 일상이 차분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 영상보다 활자를 대하는 것이 더 익숙한 것도 있다. 필요한 지식들은 책을 펼쳐서 보든지, 모니터 너머로 펼쳐지는 활자의 세계속을 헤엄치다보면, 어느새 앎에 대한 욕구가 채워져 더이상 뭔가를 찾아보지 않게 된다.
사족이 참 길었다. 그래도 굳이 영화를 찾아본다면... 옆지기와 함께 가장 최근 - 그것도 몇 달 전-에 집에서 보았던 영화인 '시네마천국'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도 둘 다 깨어있는 아주 특별한 날! 옆지기는 오늘같은 날 영화를 봐야한다며 일사천리로 방구석 영화관을 재현해냈다. 난 그동안 주전부리를 준비해갔다.
1980년대에 개봉한 영화라고는 믿겨지지 않을만큼 마을과 영화관 내부를 비추는 화려한 카메라 무빙이 눈에 들어왔다. - 이건 정말 직업병인것 같다. 왜 그런 것부터 보이는 건지 - 속으로 어떤 장비로 저런 움직임을 구현해냈을지를 상상하며 즐거워 했다가, 이내 영화속에 담겨진 이야기에 풍덩 빠져들었다.
...
영화를 다보고 나서, 저물어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우리네 삶은 반짝거리며 빛날 때가 있고 까맣게 명멸해가며 차츰 저물갈 때가 있다. 반짝일 때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오고 좋아하며 칭찬해주지만, 저물어갈 때에는 관심을 주는 이들이 많지 않다. 그렇기에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을 아릅답다"고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겠는가. 정말 아름다운 것은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물어감을 비껴갈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다. 한 때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던 영화관도, 알프레도도 그렇게 저물어갔다. 나도 이제야 반짝거림을 지나 저물어가는 길 위에 있음을 담담하게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의 시선이 참 아름답다 생각했나보다. 난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묻고 있다.
"저물어가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부분적으로나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난 늙어가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예전같지 않아 조금씩 고장나고 있는 나의 몸뚱이를 사랑한다. 나와 함께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고 있는 옆지기를 사랑한다. 저물어가고 있는 것들 사이에서, 조금씩 자기의 생명의 싹을 틔워가고 있는 어린 생명들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게 되어 무엇보다 고맙다. 이들은 저물어가는 것들에게도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가장 좋은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