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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종구 Dec 09. 2024

꿈꾸는 삶에 대하여

20년 후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내가 정말 이루고픈 바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애꿎은 시간만 흘렀다. 하얀 바탕 위에 까맣게 명멸하는 커서만 좌우로 왔다갔다 하며 애타는 나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듯 했다. 풀리지 않는 생각 타래를 뒤적이다 20년 쯤 흐른 후, 내가 그리는 삶을 그려보는 것으로 오늘의 글감을 매듭지어보려 한다.



  어느새 환갑이 되어버렸다. 도무지 내 품을 떠나지 않을 것만 같던, 얼굴에 솜털이 가득했던 아이들도 훌쩍 자라 어른이 되었다. 이제는 일년에 한 두 번씩만 찾아와 얼굴만 간신히 비춰주는 그들은 홍천의 공동체 학교에서 배우는 바와 삶터에서 일궈지는 일상의 간극에 대해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또 질문하는 이가 되어 버렸다. 젊은시절,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책장에 꽂혀있던 화엄경, 천부경, 화이트헤드의 책을 보며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는 그 속에 새겨져 있던 문장들이 아이들의 입을 통해 재해석되어 듣게 되니 더욱 놀랍다. 비록 개신교의 울타리에서 자라났지만, 앞으로도 특정 종교의 교리에 갖히지 않고 자유롭게 사유를 펼쳐나갈 생명들이 되길 바래본다. 



  다만, 첫째가 학교를 졸업하고 하늘땅살이(농사)를 하며 살고 싶다는데, 나날이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속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이 펼쳐지는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씨앗과 열매만을 나누며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어느덧 한몸살이의 역사가 반세기가 지나고, 한몸살이의 2세대들이 새로운 한몸살이를 일구겠다고 당차게 선포했던 시절로부터도 20여년이 흘러렀으니, 이제는 그들과 함께 어우러져 단순 소박하게 삶을 일굴 그의 삶을 걱정만 하지 말고 응원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나의 밥벌이는 한몸살이와 완전히 섞이지 못했다. 젊은시절, 밖에서 치고박았던 경험들 속에서 밥벌이만큼은 한몸살이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일구고 싶다던 간절함을 끝내 넘어서지 않았음을 담백하게 인정한다. 여러 변화의 시기를 거쳐, 지금 이렇게 건물의 안전을 책임지며 밥벌이를 하는 지금이 좋다. 비록 한몸살이의 중심에서 깃발을 들지 못했고, 또 직업 안에서 큰 흥미나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많지 않았지만, 노동의 강도도 심하지 않고, 일상의 여유도 챙길 수 있는 직업을 선택했기에 주말마다 아이들과 오롯이 함께 할 수 있었고, 또한, 도자기를 빚고, 마음이 아픈 이들을 돌보고 싶어했던 옆지기의 걸음도 마음껏 응원해줄 수 있었지 않았나.



  아이들이 내 품을 떠난 후로 일상의 빈자리에 독서와 운동, 글쓰기를 채우고 있다. 요즘은 젊은날에 그토록 간절하게 꿈꾸었던 한몸살이에 대한 책들을 다시 꺼내 읽고 있다. 그렇게 살지 못했으면서도 여전히 젊은날의 꿈을 다시 끄집어내고야 마는 고약한 나의 인생이 참 철없다 싶다. 요즘은 모세의 삶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고통받던 숱한 동지들의 삶에 공명했고, 그들과 함께 용기있게 이집트를 탈출했지만, 끝내 가나안을 밟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던 그의 삶에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 20년 전부터 꾸준히 성찰하고 기록한 일상들을 몇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기도 했다. 비록 많은 이들에게 읽힐만한 글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도서관 책장의 귀퉁이에 남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할법한 이들의 사유에 공명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난 여전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럼에도 한몸살이에 대한 꿈을 꾸는 이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과 공명하는 언어로 풀어내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삶을 살고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만일 신이 있다면, 나를 이런 삶으로 초대하기 위해 부르지 않았겠나 하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하며 미소를 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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