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피부에 늘 분홍조개를 배위에 얹고 지내는 사나이(?)를 좋아했다. 주변에서 어떤 다급한 일들이 펼쳐져도 그들과 난 어떤 관계도 없다는 듯 느긋하게 걷는 걸음도, 애먼 속이 탈 때면 그 분홍조개를 살살 만지작 거리며 불안을 달래는 귀여운 구석도, 무엇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해질녘 석양을 넋빠진듯 바라보는동안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려 평화를 되찾게 되는 요상한 마무리도 좋았다.
또한 매사에 느긋한 그의 곁을 맴도는, 오만 군상을 가진 이웃들의 설레발 + 유우머를 좋아했다. 작은 일에도 호들갑을 떨며 그의 주변을 뱅뱅 맴도는 다람쥐와 그런 모습을 시끄럽다며 발로 뻥! 차는 걸로 일축해버리는 너구리의 레파토리는 깔깔거리게 되는 웃음포인트였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들이 내 안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이야기 곳곳에 숨겨져 있는 '명대사' 덕분이었다.
'큰일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어. 다만 우리가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야'
'즐거운 일은 반드시 끝이 있고, 괴로운 일도 반드시 끝이 있어'
'없어도 곤란하지 않은 것이라면 분명 가질 필요도 없는 것이에요'
'슬픔은 병이잖아. 분명, 살아가는 게 낫게 해줄거야'
이제는 흐릿해진 기억을 더듬느라 위키백과에 적힌 명대사를 다시 찾아보는데, 글귀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와 얽혀있는 이야기들이 손에 잡힐 듯 다시 떠오른다. 떠오르는 상념들 사이를 거닐다 사람(?)들이 겪는 일상과 아픔의 결은 새삼 비슷한 구석들이 참 많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옆지기를 처음으로 본 날, 희안하게도 푸른 피부와 분홍조개의 사나이를 다시 떠올렸다. 주변 사람들과 확연한 차이가 느껴질 정도의 느긋한 몸짓, 작고 여린듯 하나 또렷하게 표현한 그의 담백한 문장들이 그와 헤어지고 난 후에도 오랫동안 머릿 속을 떠나지 못했다. 매사에 나를 오롯이 쏟아부어야만 다음에 디뎌야할 길이 간신히 보였던 당시의 내 삶에서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그가 다가와 준다면, 그는 내게 푸른피부의 사나이처럼 '천천히가도 괜찮아요'라고 말해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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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사는 게 어느 덧 삶이 되어버린 내게, 그는 정말 느긋하게 살아도 괜찮다는 것을 삶으로 가르쳐주고 있다. 그의 여유는 늘 어린 생명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배어나온다. 늘 해야할 일들이 떠나지 않아 아이들을 다그치게 되는 내 앞에, 그는 어느새 아이의 시간에 맞춰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덕분에 첫째는 엄마를 늘 먼저 찾는다. 오늘도 첫째가 "엄마 오늘 어디 안가?"를 왜 날보며 말하는 건지... 속이 부글부글 끓지만, 그래도 괜찮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이 길을 걷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