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에게 있어 특별한 장소라는 곳이 과연 있나 싶다. 생각해보면 비행기를 타고 우리나라 밖으로다녀본 횟수도 8번이나 되었는데, 그곳에서의 기억들 가운데 특별하다고 느끼는 것들도 많지 않다. 무엇을 하든 내 몸뚱이가 경험하는 것들은 다 거기서 거기지... 라고 생각하는걸까?
2. 그럼에도 머릿속에 오랫동안 기억되는 여행의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스물 한 살 여름, 당시 열심을 내어 불던 대금 하나를 들쳐매고 호기롭게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남 신안군의 외딴 섬에 놀러간 일이다. 군 입대를 앞두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야겠다는 막연한 생각 하나가 나를 그곳까지 안내한 셈이다.
3. 열차의 종착역인 목포항에서도 2시간 넘게 뱃길을 타고 들어가야 했던 작은 섬. 그곳엔 그 흔한 슈퍼마켓도, 여관도 없었다. 느긋한 걸음으로 한시간만에 섬 외곽을 다 둘러보고는 방파제에 걸터앉아 바다를 보며 대금을 불어제꼈다. 바닷바람이 거세어 손도 떨리고 입도 잘 풀어지지 않았지만, 뭐 보는 사람도 없는데 무슨 대수냐 싶었다. 그리곤 마을 어귀에 서성이는 할아버지 한 분을 만나 갈 곳이 없으니 다짜고짜 재워달라고 졸랐다. 그는 잠시 멈춰서 동그래진 눈으로 날 보더니 대뜸
4. "허허, 손주 하나가 생겼네 그려"
라는 대답을 허공에 날리곤 덤덤하게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 그 날 밤, 술취한 이웃집 할아버지가 찾아와 너 혹시 북에서 온 간첩이 아니냐 -그러지 않고는 이 외딴 섬에 젊은이가 찾아올 이유가 없다고 하시더라- 며 취조를 하시긴 했지만, 날 데려온 그는 한사코 이를 부정하며 내 편을 들어줬다. 이 낯선 곳에서 이런 환대를 받아보다니,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졌다.
5. 그는 매번 밥상을 차려주었다. 어쩔줄 몰라하는 내게, '수저만 하나 더 올리면 되는데 뭐가 힘드냐'며 한사코 주방을 사수하셨다. 개다리밥상에는 한결같이 쌀밥과 미역국, 갈치속젓만 올라왔다. 매번 직접 수확해 말린 미역이라 자랑하셨는데, 정말이지 이후로도 그런 미역국을 만나보지 못할 정도로 진하고 맛있었다. 다만 갈치속젓의 비린내는 끝내 익숙해지지 않아서 민망했다. 단촐한 밥상에 그는 매번 댓고리 소주를 꺼내 세잔 씩을 마셨다.
6. 낮에는 그와 함께 다녔다. TV를 못본지 몇 달 되셨다길래, 지붕에 걸려있는 안테나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밑에서 티비를 틀어놓고 있는 그에게 '보여요? 보여요?'를 연달아 외치기도 했고, 시멘트를 개어 무너진 담벼락을 메꾸기도 했다. 하루는 그가 짓고 있는 논에 찾아가 쓰러진 벼들을 묶기도 했다. 가끔 시간이 남으면 섬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렸다. 모래사장 귀퉁이에, 섬이 다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앉아 수첩을 꺼내 글을 적었고, 대금을 꺼내 소리를 지었다.
7. 밤에는 그와 함께 방구석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자식들도 다 키워 밖으로 보내고, 혼자 산지도 20년이 넘었다던 손주같은 내 이야기도 무척 귀담아 들어주셨다. 대금을 불땐 주름이 가득한 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해졌다. 다음엔 이웃들도 다 불러다놓고 또 해달라 하셨는데, 그런 기회는 다시 찾아오진 않았다.
8. 떠나는 날 아침, 마당에 있는 플라스틱 의자에 그를 앉혀놓고 이발을 했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잦아들 무렵, 저 멀리 배의 기적소리가 들렸다. 그 날 따라 말수가 유독 없었던 그는, 간만에 입을 열어 다 갈라지는 목소리로 "다음에 가면 안되니"라고 했다. 차마 그 말에 대답을 바로 못하고, 스폰지로 그의 어깨에 묻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그는 대답없는 대답의 의미를 알아채곤 더 채근하지 않았다. 주름 사이로 깊게 파인 눈매가 젖어있는게 슬쩍 보였다. 머리를 감겨드리고, 아침에 미리 싸두었던 짐들을 메고 나왔다. 애써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배에 올랐고,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난간으로 뛰어가 방파제를 돌아봤다. 작아지는 방파제 풍경 사이로 마른나뭇가지 같이 흔들리는 그가 보였다. 있는 힘껏 손을 들어 흔들었다. 그게 내가 보일 수 있는 정성의 최선이었다.
9. 스물 넷 여름, 군 복무를 갈무리하고 다시 그 곳을 찾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그는 없었다. 삼년 전, 떠나는 배의 꽁무니에 서서 그에게 손을 흔들었던 게, 그에게 남긴 나의 마지막 추억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다음 배가 찾아올 때까지, 섬을 서성이며 나는 끝내 먹기를 망설여했던 갈치속젓을 떠올렸다. 매서운 섬바람도 갈치속젓에 대한 미련을 씻어주지 못했다.
10. 이제는 한 편의 영화같은 추억이 되어버린 그 기억들을 떠올리며 새삼 무뎌진 마음이 간질여진다. 이제는 그 섬을 생각하면 그의 이름 석자가 먼저 떠오른다. 내게는 장소와 사람이 나뉘어지지 않는다. 그 이후로도 이런 습관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11.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행정상으로 서울시 강북구 안에 있다. 한국에서 제일 사람이 많이 모여있는 동네이면서도, 정작 사람냄새는 맡기 어려운 동네인 이 곳에서, 나는 옆지기와, 두 아이를 만나 함께 지지고 볶으며 살고 있다. 나에게 이곳은 몸뚱이가 지내고 있는 삶터일 뿐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진 추억이 담긴 곳이다. 그리고 이 둘은 쉽게 나뉘어지지 않는다.
12. 만일 먼 훗날, 가족들도 모두 떠나보낸 노인이 되었을 때, 나는 외딴 섬과 할아버지 이름 석자를 함께 기억하듯, 이곳과 함께 가족의 이름을 함께 기억할 것이다. 내게는 이 모두가 함께다. 내게 있어 특별한 여행의 순간은 바로 지금이고, 이들과 만들어가는 일상이 바로 이곳에서의 특별한 경험과 다른 말이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