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 '만' 12년 차
17의 나이에 홀로 빨래를 하며 살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홀로' 산 것은 아니지만, 내 빨래는 내가 하고 산 지가 벌써 만 12년이다.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 3년, 군대 2년을 포함해 20대의 9년을 빨래를 하며 살다 보니 빨래는 어렵지 않게 한다.
물론 빨래를 '잘' 하냐고 물으면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빨래를 '잘' 한다는 말에는 '부지런히' 많은 단계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몇 가지의 단계는 아래와 같다.
옷을 잘 벗는 것은 매우 중요한 단계다.
만화에서 왜 짱구 엄마가 왜 짱구 아빠에게 양말을 뒤집어서 벗었냐고 잔소리를 했을까?
잘 벗어놓지 않으면 세탁할 때 제대로 빨아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잘 벗는다'의 단계에서는 잘 분류한다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흰 옷과 청바지는 함께 빨면 안 되고, 소재가 다른 옷도 따로 구분해서 빨아야 한다.
하지만 혼자 사는 나는 그러지 않는다.
굳이 하자면 옷을 제대로 벗어서 흰 옷(셔츠) 정도는 따로 빠는 수고로움을 감수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세탁물을 모아둔다.
옷을 벗어 세탁기에 바로 넣는 사람도 있고, 세탁 바구니에 담아두는 사람도 있다.
어느 방법을 쓰든 지저분한 옷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생각만 해도 불결하다.
벗어둔 속옷, 축축하게 젖은 수건, 땀에 젖은 체육복.. 행여나 과음 후 토사물이 묻은 바지가 함께 있다면...
그곳은 지옥이다, 지옥.
부지런히 빨아야 한다.
빨래가 수북이 쌓이기 전에 자주 빠는 것이 옷도 아끼고, 내 집도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나 나는 빨래를 널면서 행거가 작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정도 빨래통이 차올라야 빨래를 하기에.
물 절약을 핑계로 대지만, 역시나 근본적인 문제는 나의 잘못된 습관과 게으름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3층 기숙사에 살 때 세탁기는 1층에 있었다.
밤낮으로 축구를 하던 남자아이들에게도 그 계단은 너무나도 높고도 험했다.
빨래를 하러 내려가는 것도 귀찮은데, 다시 가지러 내려가는 일이란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게으름으로, 젖은 빨래는 세탁기 안에서 방치되었고, 다른 사람이 세탁기를 쓰려고 빨래를 꺼내 세탁기 위에 올려놓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곤 했다.
깨끗하게 빤 세탁물을 재깍재깍 널지 않으면 세탁물의 상태는 다시 나빠지기 시작한다.
뒤늦게 빨래건조대에 널어 응급처치를 해보지만, 빨래의 맥박은 다시 뛰지 않는다.
역시 건조는 쨍쨍한 햇살 아래에서 산들산들 바람과 함께 말리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팍팍한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햇볕에 옷을 말려본 기억이 없다.
겨우겨우 옷을 건조하는 것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는?
어차피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냐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게으른 사람에게는 옷을 개는 일이 그런 일이다.
내일 다시 꺼내 입을 옷을 왜 개어야 하는가?
바쁘고 귀찮을 때에는 옷을 개는 일이 너무너무너무 귀찮다.
설거지가 귀찮은 것처럼 모든 집안일은 마무리가 제일 귀찮다.
빨래를 '잘' 한다는 것과 옷을 개는 것은 큰 연관이 없는 것 같지만, 빨래의 기승전결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다릴 옷은 다리고, 옷을 차곡차곡 서랍이나 옷장에 넣어야 한다.
그렇다.
빨래의 가장 큰 적은 귀찮음이다.
옷을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 패션 피플이 아닌 이상 빨래는 너무나 귀찮고 복잡한 일이다.
새로 이사를 오면서 세탁기가 바뀌었다.
여전히 빌트인 드럼세탁기지만, 건조 기능이 추가된 녀석이었다.
군 생활 2년 동안 건조기를 사용했지만, 그 효과성에 대한 의문은 계속 가지고 있었다.
예정된 시간이 지났음에도 축축한 빨래를 마주했을 때의 씁쓸함이란...
그래서 건조 기능은 선뜻 이용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 처음으로 꾀를 부렸더니 참사가 일어났다.
작은 원룸에서 세탁기를 돌려 본 사람들은 다 안다. 세탁기 소음이 얼마나 심한지.
소음을 피하고도 싶고, 예정된 회식 때문에 쌓여가는 빨래를 처리할 수 없기도 해서 잔꾀를 부렸다.
출근길에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 기능도 빵빵하게 2시간이나 예약하고 나갔다.
퇴근 후에 뽀송뽀송한 빨래를 기대하며
그런데...
뽀송이는 어디 가고 쭈글이만 나를 기다리고 있니?
마르긴 다 말랐는데, 모양새가 영 엉망이었다. 특히 셔츠가 심했다.
겨울잠을 자던 다리미를 꺼내(스웨터와 니트의 계절이라 셔츠를 한동안 다리지 않았더라는) 응급처치를 해봤지만, 가까스로 생명을 건졌을 뿐 뇌사상태에 빠졌다.
별로 대단찮은 이야기로 너무 긴 글을 썼다.
단지 부지런히 빨래를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P.S. 하지만 여전히 내일 입을 속옷 하나는 식탁 의자에 널브러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