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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유 Sep 21. 2016

[인도여행기 2] 난 주인공이다

이것은 여행기라기보다, 여행지에서의 철학적 망상에 가까울 것이다.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은 말하기를 참으로 좋아했다. 한국 사람들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무뚝뚝하다는 것은, 적어도 해외 여행지에선 사실이 아니다. 그 어떤 여행가도 여행지에선 수다쟁이가 된다.


특히나 여행 중에 일어난 자신들의 스토리를 말할 때면 모두가 활기가 넘친다. 그러나 자세히 들어보자면, 말하는 사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말하는 화자 그 자체라는 점이다. 다들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신나게 자신의 여행지 스토리를 말하는 것이다.


각자의 여행 이야기에서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다.


모두의 이야기에선, 동료 여행자나, 그곳에서 만난 사람이나, 독특한 유적지는 결코 주인공이 아니다. 그곳에 간 '내'가 주인공이었다. 내가 주인공이니 저마다 독특한 경험 속에 자신만의 감정을 곁들여 말하게 된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을 읽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사실 우리는 모두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게 아닐까?


인생에 있어 조연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우리는 모두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삶은 우리를 주연이 아닌 조연의 자리에 위치시킨다. 게다가 단조로운 삶에선 어떠한 흥미로운 사건도 쉬이 발생하지 않고, 내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가 내 삶의 내러티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이를 벗어나고자 드라마, 영화, 소설 들을 소비하면서 스토리의 주인공에 나를 투사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스토리가 막을 내릴 때면 항상 우리는 가상현실에서 현실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주한다.


현실 속에서 철저하게 조연이 된 나를 마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행 중의 나는 다르다. 일상적 맥락이 아닌, 낯선 맥락에 떨어진 내게 흥미로운 사건은 계속해서 발생하고, 사건을 경험하는 주체는 나 자신이다. 예상할 수 없는 낯선 환경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내러티브를 만들고, 그 속에 주인공이 나라는 스토리의 완성. 이는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여행 중 사건이 항상 좋은 사건인 것은 아니다. 사기도 당하고, 불쾌한 일도 당한다. 그러나 사건의 긍부정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주인공이면 그만이다. 그래서 여행자의 이야기가 희극일 때만 여행자의 표정이 밝은 것이 아니라, 비극일 때도 결코 슬퍼 보이지 않는 여행자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밝고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말하는 비극적 여행기, 이는 분명 긍정적 아이러니이다.


그들에게 '비극'의 주인공이 내가 된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비극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가들도 나도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시 조연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여행이 남긴 것은 주인공으로서의 이야기이다. 한국에서 내가 인도 여행기를 말할 때면, 난 아마 행복한 얼굴을 띌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주인공이었으니까.


일평생 주인공이면 좋겠지만, 그게 쉬울까? 그래도 괜찮다. 


여행을 가면 난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남는다.


- 2016년 1월 어느 날 인도의 어딘가에서 쓰고, 2016년 9월 17일 저녁 한국에서 고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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