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여행기라기보다, 여행지에서의 철학적 망상에 가까울 것이다.
황량한 사막 위에서 낙타를 탄 멋진 내 모습
인도로 떠나기 전 나의 가장 큰 바람이자 로망이었다. 사막에서의 낙타와 함께 하는 새해맞이, 낭만적이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2015년 12월 31일, 자이살메르 옆에 위치한 자그마한 동네인 쿠리에서 나는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동네 어귀에 있던 이발소에서 인도인 청년의 이발 솜씨는, 내 새해맞이 준비에 완성도를 높였다. 깔끔한 머리, 다가오는 낙타들, 그리고 사막에서의 하룻밤을 함께 보낼 이름 모를 사람들. 나의 29살 맞이는 내 로망을 충족해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낙타를 탄 지 20분 정도 지났을까? 낙타는 생각보다 너무 불편했다. 그리고 엉덩이는 아파왔다.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내 모습은 꽤나 볼썽사나웠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막이 내 앞에 있으니.
그리고 도착한 사막에서, 나의 흥미는 30분 만에 끝나 버렸다.
사막에선 도무지 할 게 없었다.
사진 몇 방, 뛰어다니기 몇 번, 모래와의 촉감 대화를 마치자 정말 할 게 없었다. 준비해온 바비큐를 하려면 해가 져야 했다. 멍하니 해만 바라보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모양새에서 꽤나 멀리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사막에서의 바비큐와 킹피셔 한잔을 기대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바비큐도 금방 끝났다.
그리고 사막에서의 음식 섭취는 꽤나 야생스러웠다. 닭고기 속에 씹히던 모래알, 그리 시원하지 않은 맥주, 금방 어두워져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사막이 내게 적지 않은 당황을 안겨줬다. 그리고 사막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정말 추웠다. 끔찍했다.
그럼에도 난 내가 경험했던 연말 새해맞이 중
최고의 새해맞이로 기억한다.
끔찍함을 덮는 근사함이 온 것은, 사막 위에 누웠을 때였다. 그것은 내가 기대했던 로망 속에선 없었던 별이었다. 2015년 밤, 쿠리 사막의 밤하늘에 펼쳐진 별은 꽤나 예뻤다. 기대했던 로망은 현실 속에 무너졌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별이 내게 기쁨을 안겨준 것이다.
나는 그날 밤하늘 별을 보며, 어린 시절 한국에서의 나를 만난 것으로 기억한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 평상에 누워있는 기억 속 나를 만났다. 장사하던 어머니가 가게 앞에 돗자리를 펴주면, 그 돗자리에 누워 별을 보며 콧노래 부르던 기억 속 나도 만났다.
9살 전후에 나는 별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밤하늘에 떠오르는 별을 보면, 그저 이유 없이 행복해했다. 그러나 29살 전후에 나는 별을 못 본 지 오래됐고, 어느덧 세속적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29살의 내가 낭만성이 부족해진 것도, 세속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한 것도,
순전히 한국 밤하늘에서 별이 사라졌기 때문인 것이다.
쿠리에서 29살인 내가, 밤하늘 별이 풍기는 낭만성에 젖어 있는 것이 근거라 생각한다. 별을 볼 땐 세속적이지 않은 내가 왜 세속적으로 변했겠는가? 그건 별을 숨긴 서울이 잘못한 것이다.
잃었던 낭만과 감성을 찾는 법을 기록해두고자 한다.
내 방 천장에 야광별이라도 붙이자.
9살의 나를 잊었을지라도, 29살의 나는 야광별이 만나게 해주겠지.
- 2016년 1월 어느 날 인도의 어딘가에서 쓰고, 2016년 어느 날 저녁 한국에서 고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