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독일에서는 조용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TV 담화문을 통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위기상황’이라고 경고했다.
독일 전역에서 3명 이상 모임이 금지됐다. 이미 대부분 지역에서는 슈퍼마켓, 약국, 주유소 등 필수 업종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쇄 조치가 내려졌다. 문화 및 종교 등 모든 종류의 공공시설은 물론 학교, 유치원도 문을 닫았다. 독일 주요 도시와 주정부는 유치원과 학교를 닫으면서 ‘긴급돌봄’이 가능한 직종을 함께 명시했다.
아무나 긴급돌봄을 신청할 수 없다. ‘시스템에 중요한(systemrelevant)’, 즉 사회 인프라 유지와 코로나19 위기 대처에 반드시 필요한 직종만 신청할 수 있다. 의료진, 경찰, 소방관, 공무원, 수도 및 전기 공급업체, 쓰레기 처리업체, 물류 및 교통시스템 종사자 등이 이에 속한다. 슈퍼마켓이나 약국 등에서 일하는 노동자,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뉴스와 정보 전달을 담당하는 기자가 포함된다.
현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바이에른주, 작센주, 바덴뷔템베르크주, 베를린 등에서 ‘기자’를 시스템 유지를 위한 중요 직종으로 분류했다.
바이에른주는 지난 18일 미디어 종사자들을 긴급돌봄 대상으로 한다는 별도의 공지를 발표했다. 바이에른주는 “미디어, 특히 뉴스 및 정보 분야와 위기 커뮤니케이션은 중요한 인프라에 속한다. 왜냐하면 지금 시민들은 위기 상황에 있으며, 현재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필요하다”면서 “긴급돌봄이 가능한 미디어 종사자는 기자들 뿐만 아니라 데스크에서 일하는 관리급 또한 포함된다”고 안내했다.
바이에른주는 독일에서 가장 먼저 외출금지 명령을 내린 곳이다. 외출금지는 3월21일부터 4월3일까지 유지되며, 위반시 최대 2만5000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생필품 구입 등 꼭 필요한 이유를 제외하고는 외출할 수 없다. 물론 이 규정에서도 위에 언급한 필수 직종은 제외된다. 기자는 여전히 취재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신문 배달 업무도 허용된다.
각 지역에서 외출금지 명령이 잇따르자 독일기자협회도 ‘기본법(Grundgesetz)’ 조항을 들어 기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독일 기본법 제5조는 언론과 방송 보도의 자유를 보장한다. 독일기자협회는 또한 ‘국가에 조종되거나 검열되지 않는 자유로운 언론은 자유 국가의 기본 요소’라고 명시한 1966년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언급하며 “코로나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매일 상황이 급변하는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정확한 정보 전달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기다. 최근 독일에서도 SNS에 출처가 불분명한 허위 정보가 많이 퍼지면서, 기자들의 팩트체킹 역할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독일 미디어 기업 마드작(Madsack) 소속 언론사들의 네트워크인 RND는 이와 관련 “커뮤니케이션은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다. 왜냐하면 두려움은 무지함 사이를 파고들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가짜뉴스를 가려내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달하며, 끊임없이 보도하고, 분류하고, 설명하며, 찾아낸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자는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없고, 일상의 영웅도 아니다. 하지만 기자는 지금 이 두려움과 맞서기 위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 기자들이 할 수 있는 것. 바로 정보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가짜뉴스가 퍼지고 있는 페이스북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부추기고, 거짓 정보가 관심을 끈다”면서 “시스템에 중요하지 않은(systemirrelevant)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독일 코로나19 정책의 주요 자문을 맡고 있는 베를린 샤리테 대학병원 바이러스 학자 크리스티안 드로스텐 박사도 “학술 저널리즘의 시스템적 기능”에 대해 언급하며 기자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코로나 위기의 시대. 독일 사회가 기자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서 언론의 본질적 기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국가와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직업, 우리는 이 무거운 책임을 잘 수행하고 있는걸까.
2020.03.23. 미디어오늘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