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PARK May 28. 2022

부모님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으셨다.

"이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좋은 가정을 만들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어느 밤,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 말을 하는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60대에 접어든 부모님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법적으로 남남이 되었다. 신문 기사에서 보던 '황혼 이혼'이 우리 집에서도 현실이 된 것이다. 사실 법적으로는 부부지만 실질적으로는 남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그다지 충격적인 뉴스는 아니었다. 부모님은 이미 따로 살고 있었고, 관리하는 집, 재산과 연금이 나뉘어 있었기에 이혼 시에 합의할 것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누가 바람을 핀 것도 아니고, 폭력을 휘두른 것도 아니고, 술 및 도박 중독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그들은 물과 기름처럼, 아무리 오랜 시간을 보내도 서로 섞일 여지를 보이지 않았다. 취미 생활, 돈 쓰는 방식, 자식 교육 등 모든 사항에서 충돌해 왔고, 공통점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도대체,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결혼을 결심했는지 궁금할 정도로.




부모님은 결혼 정보 회사를 통해 서로를 만났다고 한다. 아빠는 결혼에 관심이 없었으나, 가족들의 압박이 들어와 결혼을 할 사람을 찾게 되었고, 엄마는 결혼 적령기의 나이여서 회사에 등록했던 것 같다. 그들은 3개월간의 짧은 탐색 기간을 가진 후, 결혼을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급해서 그렇게 빨리 결혼을 했을까 싶다. 3개월이라는 시간은 꽤 짧은 시간인데, 서로를 잘 알고 결혼은 한 것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아마도, 대충 같이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결혼에 뛰어든 게 아닐까 싶다. 그게 불행의 시작이 아니였을까.


물론, 집안에서 정해준 사랑 없는 결혼을 해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고, 서로를 열렬히 사랑해서 결혼을 해도 불행할 수도 있다. 결혼은 알 수 없는 거다. 어쨌든, 부모님은 잘못 걸린 인연이었다.


부모님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였다. 나에게 집이란, 편한 장소가 아니었다. 집에는 늘 싸늘하고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고, 언제 부모 사이에 언성이 터질지 몰라 불안했다. 1년에 딱 한번 가는 여름휴가는 부부싸움으로 마무리되는 때가 대부분이었다. 제발 오늘은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기를 바랐지만, 당장 집을 나갈 수도 없는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하여, 어렸을 때 소원은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다른 집에 살면서 각자의 삶을 살았지만, 이혼은 딱히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이혼을 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세금 문제였다. 부모님이 각자 실거주를 위한 집을 구입하면서, 1가구 2주택이 되어 거액의 세금을 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둘 중에 하나는 집을 포기하거나, 이혼을 선택해야 했다. 아빠가 산 집이 더 쌌기에, 엄마는 그를 설득하려 했다. 생활비를 아낄 수 있고, 아프면 서로를 돌볼 수 있으니 같이 살자고.


현실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아빠는 꽤 고민했다. 나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의견을 물어보았다. 나는 솔직히 말했다.

나라면 더 빨리 헤어졌을 거라고.


그들은 한번 더 만나 최종협상을 하였다. 설득은 실패했고, 그들의 결혼은 끝났다.




부모님이 화목한 가정을 볼 때마다 질투심 및 박탈감을 느낀 때가 있었다. 화목한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한 그들을 오랜 시간 동안 원망하고, 또 원망했었다. 솔직히 그들의 이혼 소식이 반가웠다. 오랫동안 썩고 있었던 이빨을 빼낸 기분이랄까나.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그들도 행복하기 위해서 가정을 이루었지, 불행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으니까. 뜬 마음으로 이룬 인연이 이럴 줄 누가 알았을까.


33년의 결혼 생활. 인생의 반 가량을 차지했던 기나긴 여정이 끝났다. 남은 여생 각자의 삶을 충만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마음의 평화가 그들과 함께 하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