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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Feb 21. 2019

첫 인터뷰, 커리어의 시작

외노자의 슬기로운 직장생활-1

3년여의 샌프란시스코 유학생활의 끝자락,

일주일 간의 특별 새벽기도를 참석했던 나는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여전히 꿈나라였고 그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한스, 1시까지 인터뷰 보러 와줄 수 있겠어?
미안한데, 너네 어느 회사인데?

와이프가 전도사로 있었기에 일주일간의 특별 새벽기도 참석은 필수였다. 그 이후 회사를 알아봐야지라고 생각했지만, 괜한 불안감에 중간중간 구글링을 통해 발견한 몇 개의 오프닝에 서류를 넣어놓은 상태였다. 기대도 하고 있지 않았기에 뜻밖에 전화에 당황 아닌 당황으로 반응했다.


응, 갈게. 1시까지 어디로 가면 되지?? 너네 홈페이지 좀 알 수 있을까??
응, 여기로 오면 돼. 1시까지 4층으로 오렴.

부리나케 언뜻 들었던 회사 이름을 주소창에 넣고 회사 홈페이지를 들여다보았다.

언제 지원했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소한 이름의 회사였는데 다행스러운 건 회사의 위치는 내가 다니던 학교 바로 옆 건물이었다.


현정아, 인터뷰 보러 오래.
뭐?? 무슨 말이야? 언제 지원했었어? 뭐하는 회산데?
응, 아마도 페이스북 게임을 만드는 회사인 것 같아. 학교 바로 옆 건물이라 가볼라고.. 혹시 모르잖아.

와이프도 잠에서 덜 깬 눈으로 황당한 듯 물었고, 인터뷰 연습으로라도 좋은 기회일 수 있어라고 불안감을 애써 담담함으로 가리고 나갈 채비를 갖춘다. 한국이었다면 고민할 필요조차 없이 양복에 넥타이 었겠지만, 미국, 특히나 게임회사라는 특성을 생각할 때 무엇을 입을까도 나에게 큰 고민거리였다.

고민될 땐 퓨전이 진리지. 캐주얼한 복장에 세미 정장 느낌의 재킷을 걸치고 가기로 결정.

항상 학교로 향하던 언덕의 내리막길을 오늘 처음으로 긴장감 반, 기대감 반을 발걸음에 싣고 걸음을 재촉한다.



첫 인터뷰,

'Lolapps'라고 쓰여있는 문을 노크하고 들어간 회사의 로비 정면에는 노랑머리에 환하게 웃는 리셉셔니스트가 앉아서 맞아주었다.

... 하.. 한스 팍이라고 해.
응 거기 소파에 앉아서 기다릴래?

처음 가본 게임회사이기도 했고, 분위기는 건물의 구조 탓인지 여느 IT회사 같은 다소 딱딱한 느낌이었다. 멀뚱히 앉아서 주변을 두리번대고 있을 때 내 이름이 불리어졌고, 이끄는 방으로 향했다.

중간에 일반 오피스에서 볼 수 있는 회의 테이블이 놓여있었고 테이블 중앙에는 티브이에서 보던 회의용 전화기가 놓여있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덩치가 좀 있고 빨간 곱슬머리를 한 50대 중반 쯤되어보이는 여자분이 들어오셨다.

네가 한스지? 나는 마리나라고 해. 난 이 회사에서 아트 디렉터 겸 아트 프로듀서로 있어. 반가워.
어. 반가워.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고, 긴장된 첫 대면의 순간이었다.

나는 성격 탓, 환경 탓으로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오는 집돌이형 인간이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주로 마주치는 사람들도 기껏해야 한국 유학생들이었고, 사실 유학생활 3년 동안 외국인과 가까이 지내본 기억이 많지 않았다. 자연스레 영어를 구사하는 수준도 엉망이었다. 이 첫 대면의 순간, 내 커리어의 시작을 알리는 이 순간, '영어 좀 잘해놓을걸'이라는 후회가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까. 누굴 탓하랴.

우리 회사에 아트 디렉터가 한 명 더 있는데 그 친구가 곧 올 거니까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봐.
알겠어.
심심하면 여기 그림 그리고 있어도 되고:)

마리나와의 몇 분의 형식적인 질의문답 시간을 마치고, 마리나는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온다며 회의실을 나섰다. 시간이 좀 걸릴 것을 예상했는지 종이 한 장을 주며 그림을 그리고 있으란다. 잘 그려야 하나? 아님 편안하게 생각해도 되는 건가?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안녕, 나는 글렌이라고 해. 반가워.
안녕.

잠시 후 마리나와 함께 회의실에 들어온 머리는 스포츠머리에 얼굴색이 붉은 50대 정도의 동양인 남자. 본인이 글렌 킴이라고 소개한 그 남자는 한국인이었다. 물론 한국말을 잘 못하는 한국계 미국인.

언어는 정서라고 했던가. 인터뷰하는 언어가 바뀐 것도 아닌데.. 그저 익숙한 얼굴색을 가진 미국인과 대화한다는 것만으로 많은 위안에 되고 긴장감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글렌은 베이 지역에 위치한 픽사라는 유명 애니메이션 회사에서 15년간 콘셉트 아티스트로 근무한 베테랑 아티스트였다. '니모를 찾아서'에 참여했을 정도니 얼마나 오래전부터 애니메이션 업계에 몸담았는지 알만하다.

인터뷰 도중 글렌의 팀에서 콘셉트 아티스트를 구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트 테스트를 보기로 결정하고 1시간 남짓의 인터뷰를 마쳤다. 얼마나 어버버 댔을지 생각해보면 지금도 손발이 오그러 든다. 누군가는 잘 준비된 멋진 모습으로 커리어의 첫 인터뷰를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 경우는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아트 테스트를 보낸 지 3일 후, 특별 새벽기도 마지막 날,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뷰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던 터라 크게 기대하지 않았었는데...

 한스! 축하해. 우리가 너한테 오퍼를 주려고 해. 오퍼를 확인하고 받아들일 건지 아닌지 알려주길 바래!
엇!! 고마워! 이메일 확인하고 연락 줄게!!

그렇게 첫 번째 인터뷰가 첫 번째 오퍼로 이어졌다. 그 순간 나에겐 연봉의 많고 적음, 회사의 가치 등등은 고려조차 되지 않았다. 평생을 그려왔던 그림. 내 그림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어 넘어온 이국땅. 누군가 내 그림의 가치를 알아주겠다고 하는 그 사실 자체로 너무나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외국인 노동자는 첫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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