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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스박씨 Feb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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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통해 낯선 세상을 읽다 - 9

팔로우 수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증명하고, 내 관심사, 감정 등에 대한 보다 많은 리엑션이 내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가로 연결되는 시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더니 불과 몇 년여 만에 강산이 몇 번은 변한 듯하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벗'라고 하던데... 40년의 시간을 걸어온 이 시점에서 내 맘 언저리에 남아있는 친구의 이름은 몇 명이나 될까.

내가 나고 자라온 곳. 재개발을 기다리던 그 동네에는 몇 명의 친구들이 내 어린 시절을 함께 했다. 서로 싸울 때도 있고 라이벌이 되기도 하며 마음에서 잠시 미뤄놓기도 하지만 베프인 것에 일말의 의심이 없는 그런 친구들.


곧 이뤄질 것 같았던 재개발이 계속해서 미뤄지는 바람에 부모들의 얼굴엔 어둠움이 드리워졌지만, 우리는 '동네 친구'란 이름으로 성인이 된 후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내 미국에서의 시간을 공허하지만은 않게 채워준 것도 어쩌면 30년의 시간을 촘촘히 채워준 그들과의 시간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첫 컨퍼런스

재하를 프리스쿨에 맞긴 후 머지않아 컨퍼런스 기간을 맞았다.  컨퍼런스란 학부모와 교사가 만나 학생에 관한 정보를 교환하고 문제가 있을 시 문제를 해결하는 개인 면담을 말한다. 그 시간을 통해 부모와 교사가 관계를 형성하고 아이가 성공적으로 학교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목적이다. 주로 1년에 2번, 10월과 2,3월에 컨퍼런스 기간을 갖는다. 컨퍼런스 기간에는 학교가 쉬고 사인 업한 시간에 학교를 찾아가 선생님과 1 대 1 면담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낯선 이름이 등장한다.


'언더스'

제나의 설명대로라면 재하가 언제부터인지 언더스라는 남자아이와 함께 노는 시간이 늘어났고, 이제는 항상 서로를 찾으며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언더스는 나이에 비해 약간 표현이 서툴렀고 그런 답답함이 서로의 교감으로 연결된 듯했다.


언더스와 재하

갈등의 의미

모든 관계가 그렇듯 4년 된 작은 가슴을 가진 재하에게도 갈등의 시간은 있었다.

언더스가 자꾸 침 뱉어!
다른 애들이랑 놀고 싶은데 언더스가 자꾸 방해해!
언더스가 팔을 세게 잡아당겨서 기분이 나빴어!

아이의 타인과의 갈등을 처음 직면한 우리에겐 적지 않은 고민거리였다. 3살 아이의 갈등의 이유를 모두 믿어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제나한테 물어봐야 하나?
재하가 괜히 상처가 되는 건 아닐까?
괜히 이야기했다가 친구 잃는건 아닐까?

특히나 아직 언더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재하와 친한 아이'정도였던 우리에게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는 재하를 알지 못했고, 재하의 친구 역시 알지 못했다. 우리는 섣부른 행동보다 재하를 믿어보기로 결정했다. 어쩌면 영어에 대한 부담이 작용할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후로도 그렇게 작고 큰 갈등들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정을 바꿀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다. 갈등의 개수만큼이나 둘에게 서로는 큰 의미가 되어갔다.


생일에 초대받다

어느 날 재하의 가방에 그림이 그려진 작은 카드가 들어있었다.

재하야. 이 카드 뭐야?
응. 언더스가 줬어.

언더스의 생일 초대 카드였다. 미국에서의 생일 초대는 마치 한국의 경조사 참석처럼 주말을 가득 채운다. 특히나 새학기가 시작되면 새친구들과 가깝게 해 주고자 하는 부모들의 노력으로 더 많은 생일 초대장을 받는다. 언더스가 재하를 생일에 초대했다. 재하에게도 즐거운 시간이 될테고, 우리에게도 언더스의 부모를 알아갈 좋은 시간이 될 듯하다.

언더스의 생일 이틀여 전부터 재하가 열이 있고 기침을 한다. 아마도 다른 친구의 생일이었다면 양해를 구하고 집에서 쉬게 했을 테지만 재하에게 언더스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있었기에 재하를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아픈 아이의 채비를 갖추고 나오느라 조금은 늦게 도착한 언더스의 집 앞. 뒷마당으로 연결된 문으로 들어가자 언더스가 뛰어나와 재하를 꽉 안아준다. 그리곤 볼에 뽀뽀세례를 퍼붓는다. 언더스에겐 초등학교 4, 5학년 쯤되어 보이는 누나, '이바'와 2살 남짓의 동생, '소린'이 있었는데 모두가 이미 재하를 아는 듯하다. 이바는 언더스를 데리러 학교에 갔다가 생겼던 재하와의 에피소드를 늘어놓는다. 몸이 좋지 않지만 언더스와의 만남이 좋은지 재하는 언더스의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언더스는 재하에게 본인의 방을 보여주고 싶다면서 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올라간다. 둘의 뒷모습에는 언어의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 여러 아이들이 있었지만 서로에게 둘이 중요했고, 한동안 둘만의 비밀스러운 대화는 지속되었다.


아이가 갈등의 순간을 만나면 부모는 개입할 것인지 지켜볼 것인지 고민 가운데 놓인다. 특히 3살이 갖 넘은 아이가 그 갈등을 넘어설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은 더 빠른 선택을 요구한다. 모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에서라면 우리도 빠른 대응들을 해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면 외국이라는 특성과 외국인으로서의 대표성 때문에 3번 할 말을 1번 하고 나쁜 감정을 섞을 말도 좋은 쪽으로 돌려하게 된다. 그것이 아이의 관계에는 쉼표가 되고, 공간이 되었다. 그렇게 작은 갈등의 무게를 스스로 이겨낸 재하에게 프리스쿨 시절 2년을 함께하게 될 친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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