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쌍둥이 분리수거해!
#동생의 존재가 불편한 첫째. 다둥이 가정의 숙명.
빨강, 노랑, 초록, 파랑, 하양. 다섯 개의 색으로 구성된 와플 블록이 집에 참 많다. 삼 남매가 처음 코로나에 걸렸을 때 구입했는데, 수년째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이다. 아이들이 와플 블록으로 주로 하는 놀이는 '자동차 만들기', '탑 쌓기', '로봇 만들기' 등이다. 등원 준비를 마친 세 아이가 모여 앉아 탑을 쌓았다. 빨강을 쌓아둔 바다, 좋아하는 노랑을 한 무더기 모은 알송이, 딱히 선호하는 색이 없어 남은 블록을 집어 든 달송이. 그러다 다툼이 시작됐다.
블록이 모자란 바다가 달송이 곁으로 와서 다른 색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달송이는 자신의 블록들이 모두 자기 몫이라며 거절했다. 바다는 알송이에게 노랑 블록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알송이 역시 고개를 저었다.
화가 난 바다가 발을 쿵쿵 구르며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엄마, 쌍둥이 분리수거해!"
어안이 벙벙했다.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 나는 왜 동생이 두 명이나 있느냐는 말, 내가 있는데 왜 알송이와 달송이를 낳았냐는 말은 자주 들었다. 하지만 '분리수거해!'라는 말은 무섭고도 슬펐다. 바다를 안고 위로하면서도 마음의 시곗바늘은 거꾸로 돌아갔다.
#원하지 않았지만, 오빠가 되다. 엄마가 미안해.
바다와 쌍둥이는 12개월 10일 차이로 태어났다. 이미 조기 진통으로 장기 입원 중이던 나를 대신해 시부모님이 바다를 돌봐 주셨다. 완벽하게 사랑을 쏟아주는 조부모님 슬하에서 지낸 덕분에 바다는 잘 자랐지만, 그만큼 동생의 탄생을 예견하지 못했다. 바다의 눈에는 점점 뚱뚱해지던 엄마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조부모님이 채웠을 것이다. 그렇게 익숙해진 생활 속에서 갑자기 등장한 두 명의 아기와 엄마. 질투보다는 당혹감이 더 컸으리라 생각한다.
어린이집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배밀이하는 동생들이 있었다. 마음껏 뛰어놀지도 못하게 하면서, 엄마는 원하는 만큼 안아주지도 않았다. 저녁을 차려주고 먹는 모습을 지켜보다가도 동생이 울면 달려가는 엄마. 바다는 늘 내 뒷모습을 보고 있었으리라. 어린이집에서의 바다는 나무랄 데 없이 밝은 아이였지만, 집에서는 나를 많이 울렸다. 두 돌이 지나고 언어가 눈부시게 성장하면서 자기주장이 강해졌다.
바다는 그 작고 예쁜 입으로 너무나도 솔직한 말을 뱉었다.
"엄마 싫어. 아빠 좋아."
바다의 과도한 떼쓰기와 공격적인 행동은 24개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나와 삼 남매까지 넷이서 부대끼면서 바다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이 시기에 바다는 바닥에 머리를 찧고, 자신의 팔뚝을 깨물고, 쌍둥이를 때리고 밀고 할퀴고 꼬집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건 할머니, 그다음은 할아버지, 세 번째는 아빠였다. 당시에 푹 빠져 있던 아기상어보다도 나의 계급은 낮았다.
필요할 때를 빼고는 나를 철저히 외면했다. 위험한 장난을 제지하거나 쌍둥이를 다치게 하는 행동을 훈육하면, 할머니네로 가겠다며 통곡했다. 바다의 행동을 그대로 닮아 갈 쌍둥이 때문에,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끝까지 밀어붙였던 내 모습이 바다에게는 너무 냉정했을 것이다. 급기야 나를 때리는 육탄전도 서슴지 않았다. 힘으로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일부러 방바닥에 용변을 보기도 했다. 대소변을 치우면서 눈물을 삼켰다. 바다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동생들과, 그 동생들을 낳은 나를 어떻게든 밀어내려 했다. 방바닥을 닦으며 현실에도 무릎을 꿇었다.
설상가상으로 1년 동안 다닌 어린이집을 마치고 쌍둥이와 함께 새로운 곳으로 옮기자, 바다는 야경증을 앓기 시작했다. 밤잠을 자다가 새벽에 깨서 울었다. 25개월부터 3~4개월간 고통스러운 밤을 보냈다. 집에서만 보이던 쌍둥이가 어린이집에서도 함께하니, 바다는 더 낯설고 답답했을 것이다. 비명을 지르며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고, 미지근한 물을 먹이고, 다시 재우기를 반복했다.
내가 매일 울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래서 남편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계획을 세웠다.
훈육의 주도권은 부모에게 있어야 한다. 훈육은 전적으로 내가 맡았다. 알송이와 달송이가 모멸감을 느끼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바다가 보는 앞에서 훈육했다.
"이런 행동은 위험해. 너희가 다칠 수도 있어. 알송이와 달송이, 그리고 바다도 안 돼."
일관된 기준으로 훈육한다는 걸 느낀 바다는 서서히 나를 따르기 시작했다.
바다가 네 살, 쌍둥이가 세 살이 되던 2월, 우리는 남편의 회사 근처로 이사를 감행했다. 어린이집에서 서로밖에 아는 얼굴이 없었기에 아이들은 더욱 의지했다. 바다는 드디어 쌍둥이를 놀이 상대로 인정했다. 그리고 거실에 모든 장난감을 모아두고 아이들을 같은 방에서 재웠다. 서로의 살냄새를 맡으며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환경을 완성했다. 그러자 뜻밖의 이사는 오히려 좋은 선택이 됐다.
또래보다 훌쩍 큰 바다와 몸으로 놀아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신 간지럼 공격, 종이접기, 책 읽기, 블록 놀이, 퍼즐 맞추기 등으로 놀이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대화에 정성을 쏟았다.
무작정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는 대신, 바다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표현을 고민했다.
ⓐ 엄마는 나를 왜 예뻐해?
ⓑ 엄마에게 처음으로 '엄마'라고 불러준 특별한 아이니까.
단순히 "엄마 아이니까"가 아니라, 첫째로 태어난 바다의 의미를 담았다.
ⓐ 엄마는 나를 사랑하는데 왜 동생을 두 개나 낳았어?
ⓑ 바다가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그런 아기를 더 만나고 싶었어. 쌍둥이는 바다 덕분에 세상에 올 수 있었지.
정말이다. 바다가 까다롭고 예민한 기질의 아이였다면 연년생을 각오하고 시험관 시술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 엄마는 나랑 알송이랑 달송이를 다 똑같이 사랑해?
ⓑ 사랑의 크기는 같아. 하지만 바다는 엄마의 첫사랑이야.
바다는 종종 "다음에는 쌍둥이를 낳지 말라"거나, "쌍둥이 다음에 자기를 낳아야 했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첫사랑이라는 표현을 통해, 바다가 쌍둥이보다 엄마 아빠의 사랑을 1년 더 받았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남긴 육아일기를 자주 보여주었다. 한글을 읽지는 못했지만, 초음파 사진부터 현재까지의 기록을 보며 바다는 몹시 기뻐했다. 열 번도 넘게 보여줬는데, 항상 "내 사진이 더 많아!"라며 즐거워했다. 바다의 마음이 움직인 순간이었다.
남편과 육아의 방향을 잡을 때 했던 말은 현실이 됐다. 아이를 끝까지 기다리겠다는 다짐이었을 뿐, 세밀한 예측이 뒷받침된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진짜 ‘장기전’이 됐다. 나를 향한 공격 성향은 눈에 띄게 줄었지만 동생들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바다의 거친 행동과 말이 다듬어지는 듯하다가도, 자아가 단단해지는 쌍둥이와 부딪히면 다시 도루묵이 됐다.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이젠 논리 비슷한 걸 갖추고 따박따박 대꾸하는 동생들을 밀거나 때렸다. 그런 바다를 훈육하면 나는 다시 죄인이 됐고, 결국 아이도 나도 울었다. 제법 어린이처럼 소리치고 서로를 다치게 해도, 10분 뒤엔 유아답게 셋이 노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온몸의 진이 빠졌다. "그렇게 싸울 거면 따로 놀아!"라고 해도 꼭 둘, 셋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또 싸우고, 다치고, 혼나고, 울고… 무한 굴레였다.
아이들끼리의 관계에 대한 글도 따로 쓸 예정이지만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칭찬 포도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하니 조금 나아졌고, 똑같은 장난감을 세 개씩 사주면서 더 나아졌다. 이제 서로에게 위해를 가하거나 가하려는 신호를 포착하면, 내게 달려와 고자질하는 ‘고자질쟁이들’이 됐다. (글을 쓰는 오늘 아침에도 싸우고 등원했다.)
바다와 나의 관계는 느리고 묵직하게 변했다. 이사 후 반년, 바다는 내게 다정하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머니네 갈 거야!'라는 말이 점점 사라졌다. 두 달이 더 흐른 뒤, 바다가 먼저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홉 달이 지나자, 바다가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스킨십을 하기 전에 꼭 의사를 묻는데, 바다가 내 스킨십을 매번 거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먼저 나를 안아준 것은 큰 울림이었다.
바다가 천천히 걸어온 이유가 무엇일지 오래 고민했다. 아이는 내가 보여주는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수도 있고, 두 명의 동생에게 여전히 내 애정이 분산되는 일상이 싫었을 수도 있다. 만약 바다의 동생이 쌍둥이가 아니라 한 명이었다면, 더 빨리 관계가 회복됐을까? 조리원에서 나올 때 바다의 선물을 사 오지 않아서 긴 시간이 걸렸을까? 아마 끝내 대답을 듣지 못하겠지만, 이제는 바다에게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바다는 동생이 태어나면서 처음으로 큰 충격을 받은 첫째였다. 게다가 한 번에 두 명이라니. 상실감과 두려움도 배가 되었을 것이다. 첫째로서 겪은 성장통을 지켜보니, 아이는 동생을 마주한 순간 본능적으로 부모의 사랑이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갈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바다는 자신을 향한 사랑의 크기나 방향이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원했다.
원치 않았던 오빠라는 역할 속에서, 바다가 흔들리지 않도록 나는 확신을 주려했다. 때로는 엄마를 독점하기 위해 순서를 기다려야 하는 바다에게, 나는 짧은 순간에 커다란 사랑을 깊게 표현했다.
"넌 정말 특별한 아이라는 걸 꼭 기억해 줘."
"엄마, 아빠는 너를 기다리고 만나고 키운 모든 순간이 행복했어."
"너 같은 천사를 또 만나고 싶어서 쌍둥이를 낳았어."
"그러니까 너희 셋은 한없이 소중하고 유일무이한 보물이야."
이렇게 멈춰버린 마음의 톱니바퀴를 다시 돌리려고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가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다시 마음을 열어준 아이 덕분에 우리 다섯 가족의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다시 와플 블록 앞.
어린이집 수료 이후, 열흘이 넘는 가정보육기간이 생겼다. 그래서 3주에 걸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 아침, 바다가 조심스럽게 탑을 쌓고 있었다. 그런데 알송이와 장난을 치던 달송이가 블록을 건드렸다. 쌓아 올리던 탑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 진짜!"
바다가 화를 내려다 잠시 멈췄다. 그리고 무너진 블록을 하나 움켜쥐었다. 달송이가 겁먹은 얼굴로 바라봤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소리를 지르거나, '쌍둥이 분리수거해!'라고 했겠지. 하지만 바다가 블록을 만지며 툭 내뱉었다.
"시간이 좀 걸려도 다시 쌓으면 돼. 대신 너희도 도와."
알송이와 달송이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바다 옆에 앉아 블록을 하나씩 쌓아 올렸다. 나는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바다는 변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다둥이네 시계는 하나의 톱니로만 돌지 않는다. 아이들과 부모가 저마다의 애정을 품고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비로소 멈추지 않고 흐른다. 가끔은 어느 하나가 어긋나 흔들릴 수도 있지만, 나머지가 힘을 보태면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 톱니바퀴가 부드럽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윤활유는 오직 한 가지, 꾸준하고 진심 어린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