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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아 Mar 29. 2016

로봇 407의 여름 (17화)

8. 빗속에서(2)


힘겹게 수문 옆에 붙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물속이 아니라면 몇 발자국 떼고 훌쩍 뛰어내렸겠지만, 물에 떠밀려가지 않으려고 한발 한발 조심히 움직였다. 물속에는 커다란 문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수문 한가운데 꽤 큰 홈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박사님이 건네준 기계가 꼭 들어갈만한 모양이었다. 


“역시, 다 생각이 있었어. 괴짜지만 날 만든 박사님 다워.”


잠깐 박사님을 칭찬했지만, 역시 그 꼴을 못 본다. 누가? 박사님이. 

분명한 건 내 잘못은 아니라는 거다. 기계를 수문에 파인 홈에 쏙 집어넣었니 몇 초 못 가서 떨어졌다.


“어어.”


문에 붙어있지 못하고 냉큼 떨어져 버린 기계를 놀라서 잡았다. 완벽하다더니!


“큰일 날뻔했네. 어쩌지?”


난 급하게 수문을 살폈다. 다행히 홈 옆에 작은 손잡이가 있었다. 수리를 하러 내려올 일이 있다면 사용하기 위해 댐 곳곳에 손잡이나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 로봇인 내가 쓰기엔 불편하지만, 지금 사용상 편의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비상사태였다. 한 손은 손잡이를 잡고, 한속에 든 기계를 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몸으로 기계를 고정시켰다. 


나는 순식간에 수동 접착기계가 된 셈이다.


절대로 움직이지 않겠다. 나는 다짐했다. 기계가 수문에 붙어서 무언가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콰과광!


거대한 소리를 내면서 수문이 움직였다. 세상이 멈출 것 같이 커다랗고 무서운 소리였다. 문에 딱 붙어있으니 소리가 더 크게 전달되는 것 같다. 댐 안에서 물이 쏟아져서 물살이 더 거세졌다. 나는 손잡이를 더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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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는 열흘 동안 이어졌다. 간혹 물줄기가 약해지거나 멈추기도 했지만, 꾸준히 내려서 그 양이 어마어마했다. 사람들은 내가 물살에 쓸려간 줄 알겠지?


수문에 매달려있는 일은 닭장을 청소하는 것보다는 힘든 일이 분명했다. 내 몸만 아니라 기계까지 받치고 있어야 하니 당연했다.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연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아니면 세찬 물살에 연료통이 구멍이 났을지도 모른다. 가슴에 빨간불이 들어올 때마다 연료를 주입해주었지만 그 간격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았다. 


몸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생겼다. 물살에 같이 떠내려온 돌멩이나 나뭇가지에 찍힌 상처들이었다. 


“박사님이 돌아오면 고쳐주실 거야.”


나는 아픔을 느끼진 못하지만 외모엔 꽤 신경 쓰는 로봇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날 보지 못하니 참기로 하자. 박사님이 고칠 수 없을 정도로 고장 난다면 물 찬 깡통으로 마을 앞에 비석처럼 세워달라 해야지. 그 정도 말은 하고 멈출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최초로 유언을 남긴 로봇이 되는 거다. 마을 사람들이 널리 알려줬으면 좋겠다. 미로가 우려나?


너무 긴 시간 혼자서 고된 노동을 하고 있으니 로봇의 정신도 조금씩 이상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면 나도 대짝이처럼 메모리에 이상이 생긴 걸까? 물살에 정신이 희미해질 때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깡통아!”


박사님이었다. 여전히 웃기게 생긴 지팡이를 짚고 있었지만, 싱글거리는 표정에 연료 뚜껑이 열리는 것 같았다. 뭐가 저렇게 신나는 거야? 


아, 난 물 밖으로 나왔구나.


“박사님!”

“깡통아, 정말 수고했어. 이제 다 괜찮을 거야. 정말 고맙다.”


감동한 표정의 긴 아저씨도 보였다. 화가 누그러졌다. 모두들 무사한 것 같았다. 


“비가 많이 그쳤어. 대짝이 말로는 내일이면 장마가 완전히 끝날 거래.”


박사님과 긴 아저씨 너머로 대짝이가 보였다. 대짝이의 얼굴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반가움이 서려있었다.


아저씨와 박사님, 대짝이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나는 긴 잠에 빠졌다. 아무래도 깡통 주제에 힘을 너무 쓴 모양이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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